빨간 장화

2010.04.06 11:25:18 호수 0호

에쿠니 가오리가 그려내는 결혼에 대한 진실!


에쿠니 가오리 저, 신유희 역 / 소담출판사 펴냄 / 1만원



말이 통하지 않는 사이인데도 부부,
결혼이라는 불가사의한 풍경

2009년 겨울을 장식했던 에쿠니 가오리가 결혼이라는 불가사의한 풍경을 특유의 청아한 문체와 잔잔하고 나긋나긋한 화법으로 그려내는 연작소설 <빨간 장화>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홀리 가든>, <장미 비파 레몬>, <좌안> 이후, 가장 에쿠니 가오리다운 소설이다. 일본에서는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두고 ‘무섭다’고 표현한다.

소리를 내지를 만한 무서움이 아니라 오싹하고, 절절하게, 미지의 것들과 잘 알고 있지만 눈치 채지 못했던것들을 들춰내어 정곡을 찌르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10년, 아이가 없는 히와코와 쇼조의 일상을 단편의 형식을 빌려 에피소드 형식으로 그린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능숙한 심리 묘사와 날카로운 관찰력이 생생하게 연출되고 있는 작품이다.
 
미세한 마음의 변화나 희미한 빛의 반사와 같은 결코 밸런스을 잃지 않는 마음의 요동을 정확한 표현으로 빗댄다.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읽고 있는 동안 독자들은 주인공의 심리, 주변의 소품들을 표현하는 문장 속에서 품격과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결혼이라는 주제를 두고 있지만 결혼을 했던 하지 않았던, 결혼이라는 현실세계에서 두 주인공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모습은 그 어떤 연애소설보다 현실적이고 냉혹하게, 때로는 너무나 사랑스럽게 독자들의 가슴에 다가올 것이다.

남편 쇼조와 아내 히와코는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아이가 없다. 그래서인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이 부부에게 특별히 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두 사람의 일상이 각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질 뿐이다. 어느 스토리에서도 두 사람의 대화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서로 맞지 않는다.

히와코는 일상에서 자신이 보는 세상의 모습을 쇼조에게 풀어놓지만 언제나 “응.”이라는 무심한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히와코는 항상 상실감을 느끼고 쇼조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지만, 쇼조와의 연애시절을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히와코는 그런 자신이 의심스럽기만 하다.

한편 쇼조는 아내를 세상으로부터 지켜주려 하고 아내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선물도 사주지만 쇼조의 의식 속에 깔려있는 것은 히와코에 대한 가벼운 모멸이다. 하지만 그에게 히와코는 자신의 곁에 있기에, 자신이 모르는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아내를 상상하지도 못하기에, 그리고 아내를 경시하기 때문에 비로소 사랑과 가까운 존재이다.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독특하고 알 수 없는 쇼조의 행동과 히와코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는 부부라는 영역을 통해 무엇보다 리얼하게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며 결혼생활의 ‘진실’은 바로 체념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표현하지 않지만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는 역시 당신’이라는 것이 전체적인 스토리 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소설을 읽고 있는 내내 쇼조의 태도와 히와코의 심정을 가슴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책을 덮는 순간 밀물처럼 잔잔한 행복이 밀려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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