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부당지원’공정위 타깃 블랙리스트

2010.03.30 09:31:49 호수 0호

‘과징금 폭탄’ 투하 작전 시작됐다

잠시 숨을 고르던 공정거래위원회가 드디어 칼을 뽑았다. 주요 타깃은 대기업. 계열사를 포함해 무려 1000여개에 달하는 굵직한 회사가 조사 대상이다. 공정위는 이들 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여부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이번 조사는 전방위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어 재계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과연 어떤 기업들이 도마에 오를까. 부당지원 논란과 내부거래 의혹에 휩싸인 기업을 중심으로 공정위 칼날이 닿을 만한 기업들을 추려봤다.


국세청은 지난해 말부터 대기업 계열사들에 대한 주식거래를 조사 중이다. 정상적인 상속·증여세를 부담하지 않고 2·3세에게 지분을 넘겨준 혐의가 있는 대기업 오너들의 증여세 포탈 여부가 그 대상이다. 국세청은 ‘실질과세 원칙’(법적 실질보다 경제적 실질에 따라 과세하는 규정)과 ‘포괄주의 과세’(법률에 규정돼 있지 않더라도 편법과 유사한 증여 또는 상속 행위 발생시 과세하는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물량 몰아주기’내부거래 조사 착수…1000여곳 대상
보험, 건설, 광고, 정보 등 ‘몰빵 수주’집중 점검


원활하고 체계적인 주식이동 조사를 진행하기 위해 재계순위 별로 각 부서가 업무를 분장하는가 하면 관련 자료를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도 구축했다. 이 결과 현재까지 증여세 포탈 혐의가 포착돼 수십∼수백억원대의 세금이 부과 예정인 오너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재벌그룹은 모조리”
전방위 확산 기미



국세청 한 소식통은 “재벌가의 편법 상속·증여 행태가 교묘해지고 다양한 수법이 동원되면서 국세청의 과세 기준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며 “그동안 경기침체로 인한 세수 부족을 대기업 주식이동 조사를 통해 확보하려 눈에 불을 켜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런 와중에 공정위까지 대기업 압박에 나섰다. 공정위가 자사 계열사에 물량을 몰아주고 있는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것.

공정위는 최근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1000여개 기업에 계열사 간 상품·용역 거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표를 발송했다. 이번 조사는 재계 전방위로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어 결과에 따라 천문학적인 과징금이 예상된다. 공정위가 대기업 부당 내부거래에 대해 직권조사를 벌이기는 2007년 이후 3년 만으로, 여러 업종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조사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공정위는 “3월 초부터 계열사에 대한 물량 몰아주기 등 빈번하게 제기된 부당지원의 유형을 밝혀내기 위해 관련기업에 대한 서면 조사를 시작했다”며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계열사 전체가 조사 대상으로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내부거래 부당성 판단기준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상반기 중 각 기업들로부터 지난 몇 년간 계열사와의 거래에 대한 기초 자료를 제출받을 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혐의가 드러난 기업에 대해선 올 하반기부터 금융거래 정보를 파악하는 등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갈 방침이다. 그동안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지적은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이에 공정위는 지난해 말 2010년 주요 업무 중 하나로 이번 조사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바 있다. 공정위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되면서 대기업들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졌다는 지적에 따라 부당 내부거래 조사 방침을 세웠다”고 설명했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은 계열사에 부당하게 과다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며 “다만 공정한 입찰과정을 거쳤거나 경쟁업체와 거래 가격이 비슷한 경우 부당지원행위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워 이번에 그 유형과 범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우선 타깃은 보험업이 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퇴직연금에 집중 포화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같은 그룹 금융회사를 통해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보고 지난해부터 사실 관계를 확인해 왔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14개월 동안 대기업 계열사들이 같은 계열 금융회사에 퇴직연금 운용을 맡긴 총액은 1조9450억원에 달한다.

삼성생명은 지난 1월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13개 삼성그룹 계열사로부터 1조5000억원 규모의 퇴직금 운용 계약을 맺었다. 삼성화재도 지난 1월 삼성중공업 등 5개 계열사로부터 1270억원 규모의 퇴직금을 유치했다. 동부생명은 지난해 4월 동부화재의 퇴직금 14억원을 위탁받는 것과 동시에 소속 근로자 퇴직금 14억원을 동부화재에 위탁했다. HMC투자증권 역시 지난 1월 현대차그룹이 출자한 자동차부품업체 카네스와 퇴직연금 계약을 맺었다.

공정위는 대기업 계열사 간 퇴직연금 몰아주기가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반면 해당 금융회사들은 계열사들의 퇴직연금 유치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상희 민주당 의원은 최근 계열사간 퇴직연금 위탁을 총액의 50%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천문학적 과징금 예상
동시다발 조사 최초

퇴직연금뿐만 아니라 ‘보험 밀어주기’도 조사 대상이다. 과거 부당지원 의혹에 휩싸였던 삼성화재, 한화손해보험, 동부화재 등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은 2006년 기준으로 계열사의 보험료 중 97%인 4099억원을 삼성화재에 납입했다. 삼성화재는 2007년 계열사와의 보험거래로 얻은 보험료 수익이 4185억원에 달했다. 한화그룹은 그룹 계열사 기업보험의 70%를 한화손보에, 동부그룹도 90%를 동부화재에 몰아줬다.

공정위는 대기업 집단이 계열 손해보험사에 기업보험 물량을 몰아주는 과정에서 부당 지원이 있었는지, 또 계약과정에서 보험료를 비싸게 책정했는지 여부 등을 검토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극심한 부당 내부거래 사례로 지적된 건설, 광고, 정보·기술(IT) 분야의 계열사 간 거래 동향도 분석 중이다. 이는 정기적으로 재벌그룹의 ‘문제성 거래’를 고발하고 있는 경제개혁연대의 보고서와 맞물린다.

경제개혁연대는 일감 몰아주기로 지배주주의 안정된 부의 축적을 실현시킨 사례들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제개혁연대가 2008년 55개 그룹의 계열사 418곳에 대해 조사한 결과 26.6%인 111건이 지원성 거래·회사기회 유용의심 사례 등 문제성 거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물량 몰아주기는 건설, 광고, 정보·기술(IT) 분야에 집중돼 있다.

“과다 이익 제공 위법”
글로비스 판결로 탄력

현대차그룹의 건설 계열사인 현대엠코는 관계사 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설립 첫해인 2002년 매출 100%(94억8000만원)가 기아차와 현대차 등 계열사와의 거래에서 발생했다. 2004년 관계사 매출의 비중은 98%에 이른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외아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최대주주(25.06%)로 있다. 오너일가의 지분이 50%에 육박하는 효성건설의 매출은 그룹 지주회사 격인 (주)효성과의 거래에 의해 채워지고 있다.

오너일가가 대주주로 있는 STX건설과 웅진건설도 각각 STX그룹, 웅진그룹 계열사 공사 수주로 유지되고 있다. 광고 분야는 지원성 거래가 흔한 사례로 꼽힌다. 현대차그룹 계열의 광고대행사인 이노션의 주요 고객은 현대차, 기아차, 모비스, 현대해상, KCC, 현대카드,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기업이다. 정몽구 회장 20%, 정 부회장 40%, 장녀 정성이씨 40% 등 100% 오너일가가 지배하고 있다.

지배주주 일가가 5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농심그룹의 광고대행사 농심기획도 계열사로부터 수주한 광고 매출이 50% 정도에 이른다. 이밖에 ▲삼성그룹의 제일기획 ▲LG그룹의 엘베스트 ▲한화그룹의 한컴 ▲롯데그룹의 대홍기획 ▲두산그룹의 오리콤 ▲대상그룹의 상암커뮤니케이션스 ▲보광그룹의 휘닉스커뮤니케이션스 등 또한 그룹 계열사를 등에 업고 국내 광고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사정은 정보·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은 대부분 그룹 내 시스템 통합·관리 등 정보통신업무를 수행하는 IT기업을 두고 있다. 김준기 회장을 비롯해 친인척이 지배하고 있는 동부그룹의 동부CNI는 계열사 시스템 통합 등 관계사 거래를 통해 취득한 매출이 상당하다. 김승연 회장의 아들들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그룹의 한화S&C와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등이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대림I&S도 관계사 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국세청에 공정위까지…’
압박 가중 재계 초긴장


또 LG그룹의 LG CNS, 롯데그룹의 롯데정보통신, 신세계그룹의 신세계I&C, 효성그룹의 노틸러스효성, 한국타이어그룹의 엠프론티어 등도 오너일가가 지배하면서 계열사들의 몰아주기 거래를 통해 수익을 얻는 전형적인 지원성 거래로 의심받고 있다. 하이트·진로그룹과 대한전선그룹은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단골’기업이다.

하이트·진로그룹의 삼진이엔지는 부당 내부거래로 지배주주의 안정된 부의 축적을 실현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된다. 실제 박문덕 회장 일가가 지분을 100% 보유한 삼진이엔지의 자생 능력은 떨어진다. 그룹 계열사들은 자사에 필요한 물량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삼진이엔지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2008년 4월 공시한 계열사와의 거래내역만 봐도 매출액 대비 98%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삼진이엔지로선 대부분의 실적을 그룹에 절대적으로 기대는 셈이다.

경제개혁연대는 “하이트맥주가 삼진이엔지에 몰아주기식 거래를 통해 높은 매출과 영업이익을 확보해 줘 지배주주에게 지원성 거래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한전선그룹의 삼양금속은 양귀애 명예회장 일가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삼양금속이 그룹 계열사를 통해 올린 매출 비중은 1999년 99.81%, 2000년 99.76%, 2001년 99.67%, 2002년 99.06%, 2003년 75.30%, 2004년 99.16% 등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특정 업종에 대해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실태 조사는 특정 업종을 정해 조사하는 게 아닌 계열사간 상품·용역 거래의 일반적인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라며 “현재 일부 내사에 착수했으나 아직 대상 기업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지난해 8월 현대차그룹이 물류업무를 글로비스에 몰아줬던 부당지원 행위가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탄력을 받았다. 공정위는 2007년 10월 현대차·기아차 등 현대차그룹 7개 계열사들이 글로비스에 4814억원 규모의 물량을 몰아줘 481억원의 금액을 부당 지원한 사실을 적발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62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역시 경제개혁연대가 꾸준히 문제를 삼았던 부분이다.

이에 현대차와 4개 계열사는 공정위의 조치에 반발해 서울고법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계열사에 과다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한 것은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한다”며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는 당시 “재벌그룹 소속이라는 이유로 기업의 성패가 결정되는 부당지원 행위에 대해 지속적으로 제재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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