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핏줄' 동양-오리온 이상기류 내막

2013.09.23 10:51:50 호수 0호

현재현 최후의 선택…담철곤 위험한 딜레마

[일요시사=경제1팀] 자금난에 몰린 동양그룹의 현재현 회장이 오리온 담철곤 회장에게 SOS를 쳤다. 동서지간인 두 사람은 서울 성북동에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사촌. 동양과 오리온은 계열분리 전 하나의 기업이었다는 깊은 인연도 있다. 관심은 담 회장이 과연 팔을 걷어 부칠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재계 30위권인 동양그룹. 주력 계열사인 레미콘 등 건자재 부문이 건설경기 불황에 적자 폭이 늘면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장 기업어음(CP) 상환을 앞두고 ‘10월 위기설’이 돌고 있다. 금융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동양시멘트ㆍ동양증권ㆍ동양파워 등 동양그룹 5개 계열사가 발행한 CP는 총 1조1100억원 수준으로,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줄줄이 만기가 돌아온다.

그간은 만기가 돌아오면 동양증권이 CP나 회사채를 새로 발행하는 방식으로 빚을 갚아 왔다. ㈜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이 발행한 5000억원 규모의 CP도 동양증권 창구를 통해 7∼8%의 고금리로 개인투자자에게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동서 도와줘

하지만 ‘계열사 채권을 계열 증권사 창구를 통해 판매할 수 없다’는 금융투자업법 개정이 올 10월부터 시행됨에 따라, 동양증권은 더 이상 계열사 CP를 일반 투자자에게 팔 수 없게 된다.

다른 증권사를 통해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할 상황이지만,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이 이미 크게 떨어져 동양증권 외에는 취급이 힘든 형편이다. 이 경우 개인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궁지에 몰린 동양그룹은 계열사 보유 자산들을 기초로 하는 자산유동화증권(ABS)을 최대 1조원 가량 발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동양그룹의 신용등급이 낮아 독자발행은 힘든 상황이다. 결국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그의 부인이 보유한 오리온주식(각각 12.91%, 14.49%)을 담보로 신용을 보강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오리온그룹이 신용보증을 해준다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을 하는 등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이후 동양매직 등 계열사 매각을 성사시키면 유동성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동양그룹은 동양파워 일부 지분(5000억원)과 동양매직(2500억원) 등의 매각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1조원 가량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와 관련,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현 회장을 만나 “개인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너 일가가 사재 출연 등을 통해 만기 도래하는 CP 상환 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문했다.

현 회장도 오리온의 지원 없이는 ABS발행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보고, 담 회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지난 13일 이른 아침 담 회장 자택에서 회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사위들이다. 이 창업주는 생전 두 딸을 두었는데 장녀가 현 회장의 부인인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 둘째 딸이 담 회장의 부인인 이화경 부회장이다. 일종의 ‘자매 그룹’인 셈. 창업주의 부인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도 담 회장 부부에게 동양그룹을 지원해줄 것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너몰린 현 회장 결국 담 회장에 ‘SOS’
이럴수도 저럴수도…돕자니 경영권 위험

하지만 담 회장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너가의 일원이 총수로 있는 그룹은 맞지만 오리온은 지난 2001년 동양그룹에서 계열분리 했고 사실상 남과 다름없다. 더욱이 지난해 지분관계도 완벽하게 정리된 터라 지원을 해주고 말고 할 처지도 아니다.

오리온도 곳간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성사 가능성은 두고봐야한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올 상반기 말 계열사를 포함한 오리온의 연결기준 자산총액은 2조8129억원이고, 이 가운데 유동자산은 1조168억원으로 분석됐다. 이 중 보유현금과 곧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상품만 놓고 본다면 4000억원 수준이다.

게다가 오리온은 현재 국내 제과부분 신규라인 강화 등 여기저기 돈 쓸 곳이 많다. 중국시장 판매확대를 위한 선양공장 신축을 진행 중인데, 내년까지 총 1억달러가 소요된다.

실탄이 충분치 않은 오리온이 동양그룹 지원에 나선다고 가정할 경우, 외부차입금을 늘려야 하는 구조라 두 그룹이 동반부실화 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만일 향후 동양그룹이 기초자산으로 맡긴 계열사 자산 등의 매각에 어려움을 겪어 ABS 등 상환이 어려워질 경우 담 회장과 이 부회장은 맡긴 주식을 팔아 대지급에 나서야 하는 경우가 발생 할 수도 있다.

YES? NO?


이 외에도 담 회장이 지난 4월 대법원에서 횡령·배임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던 터라 회사 차원에서의 지원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때문에 오리온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지원이 아닌 담 회장과 이 부회장의 개인 지분을 바탕으로 한 신용도 보강 요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담 회장이 현 회장의 부탁을 아예 뿌리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간 오너 일가가 동양을 지원해 준 사례가 전혀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창업주 부인인 이 이사장은 자신이 보유한 오리온 주식을 동양에 무상 대여했고, 동양은 이를 바탕으로 1600억원을 확보했다. 이 여사가 동양그룹을 살리기 위해 뛰고 있고 동서 간이면서 이웃사촌인 것이 현재 두 회장의 관계다. 동양그룹의 미래에 담 회장의 결단만 남은 셈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동양-오리온 관계는?

동양그룹은 국내 재벌가에서 최초로 사위가 승계한 그룹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고 이양구 창업주의 맏사위 현 회장은 동양그룹을, 둘째 사위 담 회장은 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오리온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고 이양구 창업주가 슬하에 딸만 둔 탓이다. 북한에서 홀로 월남해 가족이 단출한 이 창업주는 6·25전쟁통에 만난 교사출신 이관희씨와 사이에서 혜경-화경 딸만 둘을 뒀다. 장녀 혜경씨는 1976년 현 회장과 결혼했다. 고려대 초대총장을 역임하고 6·25전쟁 때 납북된 현상윤 박사가 그의 조부다. 현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대학 3학년 때 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77년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혜경씨와 결혼, 경영수업을 위해 미국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갔다온 뒤 곧바로 동양시멘트 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차녀 화경씨는 1980년 담 회장과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고조부가 한국으로 건너온 화교 집안 출신인 담 회장은 서울외국인학교를 나와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마케팅을 공부했다. 그의 부친은 한의사였다. 담 회장은 외국인학교 재학 시절 화경씨를 만나 10년 열애 끝에 결혼,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1981년 동양제과에서 일을 시작했다. 혜경씨와 화경씨는 일찍이 경영에 참여했지만 ‘대권’은 두 사위인 현 회장과 담 회장에게 돌아갔다. 이 창업자는 생전에 사위들을 후계자로 키우기 위해 혹독한 경영수업을 시켰다. 


현 회장은 외환위기로 심각한 부채에 시달릴 당시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내실을 다져 회사를 안정시켰고 담 회장은 식품과 유통사업에 그치지 않고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사업군을 확대시키며 저돌적인 경영수완을 발휘해 이 창업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989년 이 창업주가 별세한 이후 동양의 경영권은 가족 간 협의를 통해 맏사위인 현 회장이 승계했고, 둘째 사위인 담 회장은 오리온을 맡았다. 두 사위는 10여 년 동안 두 그룹을 한지붕 아래에서 이끌다가 2001년 각자의 길을 떠났다. 분가 이후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은 나름대로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독자행보를 걸었지만, 예전의 화려했던 영광을 되찾지는 못하고 있다. 담 회장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됐고, 현 회장은 채무상환압박에 그룹 골간이 흔들리고 있다. 난국을 맞이하고 있는 동양가의 위기탈출 해법이 주목된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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