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총수가 역술인 찾는 이유

2009.06.23 10:40:08 호수 0호

사업·개인 고민 자문…아예 ‘책사’ 역할도
특히 풍수에 관심 “좋은 터 잡아야 번창”



총수와 역술인. 얼핏 보기엔 전혀 상관없는 조합으로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악어와 악어새’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물론 이들의 만남은 ‘백이면 백’ 비밀리에 이뤄진다. 쥐도 새도 모르게 접촉하기 때문에 외부로 쉽게 노출이 되지 않는다. 총수는 왜 역술인을 찾는 것일까. 그 이유를 캐봤다.

재벌그룹 총수가 역술인을 찾는 이유는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업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개인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집안 대소사를 치를 때도 그렇다. 아예 역술인을 곁에 끼고 ‘책사’ 역할을 맡긴 총수도 있다.

‘악어와 악어새’

역술인 입장에서도 총수의 호출이 여간 반가운 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꼭 돈을 떠나 유명세를 탈 수 있는 기회인 탓이다. 이들로선 총수와의 인연이 하나의 마케팅 전략인 셈이다.
최근 모 그룹 C회장은 해외에 머물고 있는 C법사를 극비리 호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안팎에선 C회장이 주변에 말 못할 개인 사정을 털어놓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C법사를 불러들였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
C회장을 둘러싸고 이혼설 등 스캔들이 무성한 점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 예지력이 뛰어난 영능력자로 유명한 C법사는 대통령 당선자와 한반도 정세 등을 정확히 예견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다른 그룹 L회장은 선대회장의 타계 당시 영혼구명 의식을 집도한 M스님과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때 M스님이 영혼구명 대가로 L회장 일가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았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후 L회장은 조상들의 묏자리 등 집안 대소사 때마다 항상 M스님을 대동한다는 후문이다. M스님도 평소 L회장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중견그룹 K회장의 경우 자문 무속인을 두고 수시로 사업의 진출 방향을 상의한다. “이쪽으로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저 회사를 인수하려 하는데…”식이다. 그러면 무속인이 “된다, 안 된다”를 분명히 가늠해 주고 K회장이 최종 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대기업 K회장은 알게 모르게 ‘비밀 책사’를 동원, 자신의 ‘천운’을 미리 점쳐본다. 비서실 임원이 족집게로 소문난 ‘점쟁이’들을 찾아다니며 회장의 ‘운’을 묻고 보고하는 방식이다.
한 명만으론 미덥지 않아 최소 두어 명을 방문한다. 그중 역술인 P씨가 K회장의 단골로 전해진다. P씨는 재계 인사들이 각자 자신의 ‘앞날’을 묻기 위해 자주 찾는 역술인으로 정평이 나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업을 하는 기업인과 역술·무속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미신 따위로 치부해 운이 기업 운명을 좌지우지한다고 할 수 없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돌다리도 두드리는 심정과 ‘혹시나’하는 우려 때문에 오너가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특히 ‘풍수’에 민감한 총수들이 많다. ‘좋은 자리에 터를 잡아야 사업이 번창한다’는 믿음이 밑바탕이다.
선영은 기본. 그룹 사옥과 자택도 마찬가지다. 총수들은 위치와 방향 등을 정할 때 명당을 염두에 두고 ‘옥석 고르기’에 부심한다. 터가 길흉화복의 원천지라고 판단하는 이유에서다. 하다못해 ‘뒷간’ 위치까지 풍수에 의존하기도 한다. 풍수가 일종의 경영 지침서로 활용되는 것이다.
실제 사세가 기우뚱한 기업이 사옥을 이전하거나 새로 건립하면서 풍수학자를 앞세우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일부 오너들은 ‘사옥이 반드시 명당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풍수론을 병적(?)으로 고집하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L그룹의 본사 이전설이 최근 몇 년간 재계에 끊이지 않고 있다. 이 그룹 고위 임원이 전국의 유명 풍수학자들을 접촉하면서 불거진 ‘설’이다.
사세가 더 이상 확장 기미를 보이지 않자 항간에서 ‘터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풍수론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여기에 터를 두고 풍수학자들의 ‘끌끌’ 혀 차는 소리가 맞물리면서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그룹 쪽에서 ‘길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다.
풍수가 P씨는 “L그룹 임원이 찾아와 기존 사옥에 대해 꼼꼼히 캐물었고 적당한 자리를 알아보고 갔다”며 “본사 사옥 이전을 확신할 수 없지만 도심 쪽 ‘최고의 명당’을 조언해줬다”고 귀띔했다.
풍수를 무시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도 있다. C그룹은 풍수가들의 의견을 귀담아 듣지 않고 섣불리 사옥을 옮겼다가 우연찮게 공중분해 될 위기에 놓였고, E그룹 역시 지관의 지적을 묵살한 채 한 빌딩을 매입했지만 각종 사고가 잇달아 터지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서로 ‘상부상조’


본사를 이전한 S그룹도 “옛 사옥이 현 사옥보다 터가 좋다”는 풍수가들의 진단이 나오기 무섭게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총수들의 자택도 풍수와 연관이 깊다. 대한민국 최대 부촌인 서울 한남동이 대표적이다. 대기업 총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으로 꼽히는 한남동은 남산을 뒤로 하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명당 중 명당’이란 게 풍수가들의 이구동성이다.
모 그룹 관계자는 “거의 모든 재벌그룹 총수가 집이나 사옥을 옮길 때 명당자리를 알아보는 것으로 안다”며 “대내외적으로 시치미를 뚝 떼지만 사실 여간 신경 쓰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 명당은?
대한민국의 ‘최고 명당’은 어디일까.
예로부터 전해오는 구전에 따르면 ‘자미원(紫微垣)’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에 묘를 쓰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를 다스릴 지도자가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칭기즈칸이나 알렉산더보다 더 막강한 지도자를 잉태할 수 있는 명당 중의 명당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미원의 정확한 위치는 밝혀진 바 없다. 일제 강점기를 비롯해 해방 이후에도 자미원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자미원을 찾았다는 사람은 없다. 다만 풍수학자들은 충청도 지역을 주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예산군 가야산 자락을 지목한다. 이 지역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력 정치인들의 선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미원에 얽힌 일화도 이를 뒷받침한다. 조선말 대원군이 자미원에 묘를 쓰면 ‘천자(天子)’가 나온다는 말을 들은 뒤 경기 연천에 있던 아버지 남연군 묘를 지금의 예산군 가야산 자락으로 이장했고, 곧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올라 권세를 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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