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아 ‘영욕의 50년’ 총정리

2009.06.23 10:26:15 호수 0호


60∼90년대 제화시장 싹쓸이…지금은 ‘풍전등화’
무리한 투자·상품권 남발 “2세 행태 엎친데 덮쳐”

국내 대표 제화업체 에스콰이아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최근 회사 설립 때부터 운영해온 명동 본점의 간판을 내린 것. 업계에선 사실상 ‘그로기’ 상태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만큼 사정이 어렵다는 얘기다. 한때 제화시장을 싹쓸이했던 에스콰이아가 어쩌다 이런 처지로 전락한 것일까. 에스콰이아가 겪은 ‘영욕의 50년’을 총정리 해봤다.



에스콰이아는 고 이인표 창업주가 1961년 서울 명동에 차린 10평 남짓의 작은 구둣방이 모태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상공실업학교를 졸업한 이 창업주는 마흔이 넘어 제화사업을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최고급 수제화’ 생산에 매달렸다. 사명을 ‘귀하’란 뜻을 지닌 에스콰이아로 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로기’ 상태?

이 창업주는 1966년 국내 최초로 수제화 자동화 공정을 도입했고 시대를 앞서는 디자인과 철저한 품질관리로 ‘명품구두’를 만들어냈다. 먹고 살기에 바빴던 당시로선 명품 이미지가 다소 생소했지만 ‘대통령이 신는 구두’ ‘장교들이 신는 구두’로 유명세를 타면서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에스콰이아는 1970년대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해 1980년대 ‘1등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라이벌 금강제화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제화업계의 ‘양대산맥’을 형성했다.

몸집도 불어났다. 1981년 영에이지와 1988년 미스미스터 등을 설립한 데 이어 1990년대 들어선 패션사업에 진출해 굴지의 종합패션전문기업으로 거듭났다. 제품 역시 구두에서 핸드백, 가방, 잡화류, 의류 등으로 자연스럽게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에스콰이아는 다른 기업에 비해 일찌감치 사회공헌활동을 시작했다. ‘기업이윤은 반드시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경영이념에 따라 1981년 이 창업주가 사재를 털어 공익재단 에스콰이아문화재단을 설립, 현재 한국사회과학도서관과 인표어린이도서관 등을 운영 중이다.

평소 ‘어린이가 나라의 기둥’이라고 생각한 이 창업주의 이름을 딴 인표어린이도서관은 국내 14곳, 중국 6곳,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에 각각 1곳씩 개관했다. 문화재단은 여기에 매년 10억원 이상 운영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에스콰이아의 질주는 2000년대 들어 서서히 감속한 후 급격한 내리막을 걸었다. 공교롭게도 이 창업주가 2000년 장남 이범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2002년 노환으로 별세한 시점이 회사의 하향세와 맞물린다.

에스콰이아는 IMF 외환위기 때만 해도 잘 버텼다. 매출이 1999년 1045억원에서 2000년 2180억원, 2001년 2254억원, 2002년 2376억원으로 상승한 것.

그러나 2003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서 지난해 1209억원으로 곤두박질쳤다. 9명의 직원과 3명의 판매원으로 출발한 종업원도 2002년 1600여 명에 달하다가 현재 8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최근에도 유동성 위기를 겪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급기야 부도설과 매각설 등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고 실제 지난해 말엔 패션·유통업체인 이랜드와 인수·합병(M&A)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전면 백지화되기도 했다.

이 창업주의 혼이 깃든 에스콰이아 명동 본점이 이달 초 간판을 내린 것도 경영난과 무관치 않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50년 역사의 명동점은 에스콰이아의 자존심이었다. 그만큼 다급했다는 얘기다. 에스콰이아는 본점 4층 건물을 일본계 신발유통업체 ABC마트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콰이아 한 관계자는 “매각 조건과 이유를 밝힐 수 없지만 회사 역사의 산물인 명동점을 눈물을 머금고 팔 수밖에 없었다. 달리 대안이 없었다”고 녹록지 않은 사정을 우회적으로 털어놨다.

제화명가로 이름을 날리던 에스콰이아가 위기를 맞은 이유는 경기판단 착오에 따른 무리한 투자였다. 에스콰이아는 IMF가 거의 마무리됐다고 판단한 2003년부터 호경기를 예상, 제화는 물론 패션부문에 투자를 늘렸지만 곧바로 터진 ‘카드대란’폭탄을 맞고 풍전등화의 처지에 내몰렸다.

자존심 명동점 폐업


무엇보다 상품권 남발은 품질 저하로 이어져 기존의 명품 이미지를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싸구려’로 인식된 것. 한때 에스콰이아의 상품권 발행은 매출 60%선까지 육박했고 시중엔 최대 반값에 상품권이 거래되기도 했다.

2005년엔 신뢰감과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는 사건이 일어났다. 상품권 판매를 일반상품 판매로 위장해 신용카드 영수증을 조작하는 방법으로 거액을 탈세했다는 내부 직원들의 폭로가 잇따라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조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

게다가 오너 2세가 각종 구설수에 올라 이 창업주가 40년 가까이 어렵게 쌓아올린 깨끗한 기업 이미지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이 창업주의 아들 이모씨는 1980년대 중반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미모의 인기탤런트 H씨와 결혼했다가 9개월 만에 이혼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개인사업을 하던 이씨는 또 지난해 1월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동업자를 폭행하고 돈을 갈취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에스콰이아 한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유동성 위기 등 어려움을 겪은 기업이 비단 에스콰이아만이 아니다”라며 “명동 본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전국 150여 개 매장을 중심으로 제품 고급화,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 등 대대적인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조만간 옛 영광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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