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 김성수 기자가 파헤친 비밀 [제5탄] 토종 애니메이션 ‘뽀로로’

2009.06.02 10:28:37 호수 0호

동심 습격 사건…아기들 홀린‘국민 캐릭터’

[일요시사=경제1팀] 총체적 불황 속에서도 유독 잘나가는 ‘절대 강자’가 있다. 막강 브랜드를 앞세운 기업들이다. 기업 수익과 직결되는 브랜드 경쟁력으로 확보한 아성은 어느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하지만 ‘1등 브랜드’에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분명 존재한다. 소비자 눈을 가린 ‘구멍’이 그것이다. 
<일요시사>는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 방향 모색과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리 차원에서 히트상품의 허점과 맹점, 그리고 전문가 및 업계 우려 등을 연속시리즈로 파헤쳐 보기로 했다.




불법 유통 영상물 극성
유아용 한계 ‘넘을 산’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구로구 한 대형마트. 주말을 맞아 냉장고를 채우려는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가운데 유독 유아 매장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장난감 쇼핑에 나선 어린 고객들과 이를 지켜보는 보호자들간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한창이다.



“TV로 접한 만큼
쉽게 손 간다”

이 코너에선 부모들을 난처하게 하는 어린이(초등학생 미만)들의 ‘생떼’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게 매장 직원들의 한결같은 전언. 한마디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란다.

결국 자녀에게 백기를 든 부모들이 계산대로 가져가는 품목은 십중팔구 각종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새겨진 장난감이다. 그중에서도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뽀롱뽀롱 뽀로로>의 캐릭터들이 동심을 사로잡고 있다. 

주인공 뽀로로(펭귄)를 비롯해 에디(사막여우), 루피(비버), 크롱(공룡), 패티(펭귄), 포비(북극곰), 해리(벌새) 등이 그들(?)이다. 최근엔 뽀뽀와 삐삐(외계인), 로디(로봇), 통통이(용), 야옹이(고양이) 등이 새롭게 등장해 어린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들을 ‘친구’라 부른다.

마트 판매원은 “유아를 포함한 어린이용 장난감 진열대에는 모두 4개의 라인이 있는데 이중 1개의 라인이 몽땅 뽀로로 캐릭터의 완구로 채워져 있다”며 “7세 이상 상품과 직수입한 상품 등을 제외하면 거의 다 뽀로로 그림이 있다”고 말했다.

사정은 영등포구 한 장난감 전문매장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완구를 판매하는 이 매장에서 뽀로로 캐릭터를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능에 맞게 종류별로 장난감을 진열하고 있지만, 어느 한 코너 뽀로로가 없는 구석이 없을 정도다.

매장 직원은 “장난감과 놀이기구 등 총 1000여 종의 어린이용품 중 뽀로로가 들어간 제품은 100여 가지가 넘는다”며 “평소 TV로 보고 있는 어린이들이 그만큼 친숙하기 때문에 쉽게 손이 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어린이용품 시장은 지금 ‘뽀로로 전성시대’다. 동심을 파고든 토종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가 캐릭터상품을 거의 싹쓸이하고 있는 것. 실제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집안 한켠에 수북이 쌓인 뽀로로 상품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고만고만한 또래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하루 종일 뽀로로와 산다” “아기와 같이 뽀로로도 키운다” “떼쓰고 우는 아이에게 뽀로로만 한 약이 없다”등의 푸념을 늘어놓기 일쑤다. ‘뽀로로를 떼야 비로소 유아티를 벗는다’는 우스개도 있으며, ‘노는 게 제일 좋아∼’로 시작되는 로고송도 어른들 사이에서 익숙하다.

애니메이션으로 출발한 뽀로로 캐릭터는 완구, 문구, 생활용품, 식음료, 패션, 게임, 자전거, 신발, 교재, 뮤지컬 등 200여 종의 콘텐츠로 재생산되고 있다. 캐릭터상품으로 따지면 무려 2000가지에 이른다. 

심지어 행정안전부의 통합전자민원서비스와 환경부의 기후변화대응, 국제기아대책, 한국환경자원공사 등의 홍보대사로 위촉된 상태며 지난해 9월엔 뽀로로가 그려진 어린이용 ‘키즈(KIDS)통장’이 선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EBS TV를 통해 65편의 에피소드가 추가된 <뽀로로 시즌3>이 방영되면서(매주 월·화요일 오전 9시) ‘물 만난’ 캐릭터업체들이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2003년 11월 EBS에서 첫 선을 보인 뽀로로는 현재까지 총 130편이 제작돼 2005년부터 4년간 국내 애니메이션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콘텐츠가 한 장르에만 머물러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는 탓에 장르 경계가 사실상 무의미해진 상황”이라며 “뽀로로는 하나의 소재가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원소스 멀티유스(one source multi-use)’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어린이 시청률 1위…캐릭터상품 시장 거의 싹쓸이

‘완구, 문구, 식음료, 패션…’200종 콘텐츠 재생산

이쯤 되면 뽀로로가 ‘국민 캐릭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대한민국 캐릭터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3∼7세 유아용 애니메이션인 뽀로로는 아이코닉스·오콘·SK브로드밴드·EBS가 공동 투자해 만든 순수 국산 캐릭터로 눈으로 덮인 상상 속의 숲속 마을에서 벌어지는 장난꾸러기들의 좌충우돌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뽀로로의 브랜드 가치는 3700억원에 육박한다. 일본의 ‘키티’(4000억원), 미국의 ‘푸우’(3400억원) 등 세계적인 캐릭터와 맞먹는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게 진흥원 측의 분석이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난 5년간 국내에서만 1조2000억원 이상의 뽀로로 관련 상품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매년 2400억원의 매출이 발생한 것. 

지난 5월 현재 통계청 집계에 따른 3∼7세(▲3세 43만7000여 명 ▲4세 44만7000여 명 ▲5세 47만4000여 명 ▲6세 48만8000여 명 ▲7세 52만5000여 명)의 어린이들이 237만1000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 세대 1인당 1년에 10만원어치의 뽀로로 상품을 구입한 셈이다.

뽀로로는 해외에서도 국내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일본, 인도, 멕시코 등 세계 90여 개국에 수출됐다. 2004년 프랑스 국영방송 TF1에서 매일 아침 7시에 방영될 때 시청률 50%를 넘나드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해외 매출이 연간 2000억원에 달해 한해 로열티(5%)만 100억원대다.


진흥원 측은 “잘 만들어진 ‘돈 되는’콘텐츠 하나가 국민 수천, 수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된 지 오래”라며 “뽀로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 수출돼 많은 외화를 벌어주는 효자상품으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키티’ ‘푸우’ 맞먹는
3700억원 브랜드 가치

아이코닉스 한 관계자는 뽀로로의 대박 비결에 대해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탄생한 캐릭터들의 친근한 이미지가 아이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며 “이들의 기발한 모험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일어나지만 매번 해결은 등장 캐릭터들이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하는 등 어린이를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교육 효과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뽀로로가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도 있다. 바로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는 복제품이다. 이들 짝퉁 제품은 길거리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영상물 불법 복제 단속 실적에 따르면 1위가 5156건이 적발된 뽀로로였다.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2168건)의 2배가 넘는 수치다. 국민 드라마 <대장금>(749건)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하루 종일 뽀로로와 산다…아기와 같이 뽀로로도 키운다…떼쓰고 우는 아이에게 뽀로로 만한 약이 없다…뽀로로를 띠어야 비로소 유아티를 벗는다…“‘노는 게 제일 좋아∼’로고송 귓가에 맴돈다….”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생긴 부작용으로 회사는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브랜드 관리에 비상이 걸릴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회사 측은 불법 유통 언급 자체를 꺼리는 입장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이 자칫 짝퉁으로 비춰질까하는 우려에서다. 그래서인지 내부에선 ‘쉬쉬’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회사 한 관계자는 “아무데서나 마구잡이로 찍는 저가의 상품이 없고 부모들이 직접 구입하는 유아용품 특성상 전체적으로 봤을 때 불법 유통이 극히 드물다”며 “대부분의 제품과 국내를 포함한 다른 나라에선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영상물과 중국에 국한돼 불법으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나마 양이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조심스런 분석을 내놓았다.


유아용이란 한계도 뽀로로로선 언젠간 넘어야 할 산이다. 뽀로로가 탄생한 지 6년이 채 안 됐다는 점에서 아직 이르지만 진정한 국민 캐릭터로 거듭나고 전세계에서 지속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선 꼭 짚고 넘어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아 코드 콘텐츠에서
거대 브랜드로 도약해야”

세계 최장수 캐릭터로 알려진 미국 월트디즈니의 ‘미키마우스’의 경우 한 해 수익이 6조원이나 된다. 그래서 ‘억만장자 캐릭터’라고 불린다. 미키마우스는 1928년 탄생 이후 80년이 흐른 지금도 전세계 어린이는 물론 성인들에게 인기가 여전하다. 곰돌이 푸우, 뽀빠이, 도날드 덕 등도 어른들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오랜 친구로 남아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캐릭터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세계 캐릭터 시장을 90% 이상 점유하고 있는 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엔 미치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수십년 동안 이어 온 이들 캐릭터는 유아코드의 콘텐츠에서 거대의 브랜드로 도약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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