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한국서 쪽박 찬 글로벌기업

2009.06.02 09:27:38 호수 0호


글로벌시대답게 다국적 기업들의 국내 노크가 줄을 잇고 있다. 세계 경제가 급속도로 개방되면서 1996년 무역장벽을 허문 지 13년이 흘렀다. 그동안 한국 시장을 만만하게 봤다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줄행랑을 친 세계적인 브랜드가 한둘이 아니다. 또 지금까지 근근이 버티며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 뺨 맞은 외국 기업들을 추려봤다.



세계 1위 글로벌 건축자재 기업인 프랑스 ‘라파즈그룹’의 국내 사업 철수설이 나돌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지 10년 만이다. 라파즈그룹은 2000년 부도난 한라시멘트를 2억 달러(약 2260억원·지분 71.5%)에 사들였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영업적자가 확대되는 등 실적이 부진하자 한라시멘트 지분을 다시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회사 측은 “지분 매각 계획이 전혀 없다”며 발뺌하고 있지만, 이미 매각주간사를 선정하고 내부 실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외국사 무덤’

라파즈그룹은 앞서 2001년 1375억원에 인수한 동양시멘트 지분 25%를 2년 만인 2003년 동양메이저에 재매각(1643억원)하기도 했다.

이처럼 야심차게 한국 시장을 노크했다가 허무하게 손을 뗀 외국기업이 적지 않다. M&A시장에선 외국기업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IMF 전후 싼값이 사들였던 국내 알짜 매물을 속속 재매각할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세게 뺨을 맞은 글로벌그룹은 세계적인 유통기업인 미국 ‘월마트’와 프랑스 ‘까르푸’다. 이들 ‘유통공룡’은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IMF 당시 대한민국 유통시장을 단숨에 집어삼킬 기세로 달려들었지만, 토종업체와의 경쟁에서 ‘완패’했고 결국 서둘러 보따리를 쌌다. 한국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치 못한 결과다.
세계 1위 월마트는 1998년 국내 유통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8년 만인 2006년 신세계에 유통망을 넘기고 한국을 떠났다. 같은 해 세계 4위 까르푸도 한국 진출 10년 만에 이랜드에 알토란같은 매장을 넘기는 수모를 당했다.

이때부터 ‘한국은 글로벌 브랜드의 무덤’이란 표현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해외에서 잘나가던 글로벌 기업들은 유독 한국에만 들어오면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코카콜라’다. 미국의 자존심인 코카콜라도 한국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 두 손을 들었다.

콜라 원액을 판매하는 한국코카콜라(CCKC)는 1997년 두산, 우성식품, 호남식품 등 3개사가 나눠 하던 보틀링 사업을 1조2000억원에 인수한 뒤 한국코카콜라보틀링을 설립했으나 이듬해 호주 최대 음료업체인 코카콜라 아마틸(CCA)에 지분 100%를 매각했다.

그러나 독극물 사건과 유해성 논란 등 대내외 악재가 터지면서 2003년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선 뒤 2007년까지 순손실을 기록하며 음료시장 1위 자리를 롯데칠성 사이다에 내주는 굴욕을 당했다. 아마틸은 결국 투자 대비 수익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보틀링 지분 매각에 나섰고, 2007년 LG생활건강이 3853억원에 인수했다.

사정은 전자업계도 마찬가지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 진출한 중국 가전업체들이 ‘저가 공세’로 밀어붙이고 있으나 소비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중국 최대 백색 가전업체인 ‘하이얼’과 중국 굴지의 TV 생산업체인 ‘TCL’이 국내에 상륙할 때만 해도 한국산 제품보다 30%가량 저렴해 국내 가전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됐다. 이도 잠시. 현재까지 삼성전자, LG전자 등 ‘메이드 인 코리아’에 밀려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노트북 등 IT 제품을 갖고 한국에 입성한 중국 최대의 IT업체 ‘레노버’역시 ‘중국산’티를 벗지 못하고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다. 세계 PC 1, 2위인 ‘HP’와 ‘델’도 국내에선 토종 브랜드에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다.

글로벌 시장에서 펄펄 나는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 검색엔진 ‘구글’, 식품업체 ‘네슬레’와 ‘하인즈’등도 한국시장에서 맥을 못 추고 있다.

툭 하면 ‘철수설’

세계 1위 휴대전화업체인 핀란드 노키아는 2001년 한국 내수시장에 본격 진출했지만, 2년을 채우지 못하고 2003년 CDMA(북미·한국식 이동전화) 단말기 사업을 총괄하는 서울 CDMA R&D(연구개발) 센터를 폐쇄하는 등 사실상 철수했다. 통신업계에선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통신업체들에 밀려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보고 노키아가 사업을 접은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전세계 인터넷 검색시장을 석권한 미국의 검색사이트 구글 또한 ‘한국 철수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6년 한국에 법인을 설립해 공격적 마케팅에 나섰지만, 토종 포털업체 네이버와 다음에 치여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형국이다.

세계 식품업계에서 글로벌 강자인 스위스 네슬레와 미국 하인즈도 이름값을 못하고 있다. 두 기업은 각각 동서식품과 오뚜기란 벽에 막혀 ‘제 맛’을 잃어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이 개방된 이후 해외 다국적 기업들이 대거 국내에 진출했지만 ‘먹튀’기업을 뺀 나머지 글로벌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서 살아남은 사례가 드물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며 “이는 해외 경험과 인지도만 앞세운 채 한국 소비자 특성과 시장 환경, 토종업체 아성 등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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