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5년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설계하는 시간은 100년이다. 우리는 5년을 말하지만 실제는 1년도 설계하지 못한다. 이 차이가 오늘의 격차를 만들고 있다.
중국의 5개년 계획은 1953년 제1차 계획으로 시작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산업 기반을 세우기 위한 국가 설계였다. 계획경제에서 개혁 개방으로, 고속성장에서 기술 자립으로 내용은 바뀌었지만, 형식은 단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다.
5년 단위 설계라는 틀은 국가 운영의 뼈대가 됐다. 중국은 정책을 바꿔도 프레임은 바꾸지 않았다.
제1차부터 제5차까지는 중공업과 국유 산업 중심 체제 구축이었다. 제6차부터 제10차까지는 수출과 제조업 확장을 통한 세계 시장 진입이었다. 제11차부터 제13차까지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전환으로 이동했다. 단순한 GDP 증가가 아니라 산업 고도화와 기술 축적이 목표가 됐다.
그 축적이 오늘의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경쟁력으로 이어졌다.
제14차(2021~2025)는 기술 자립, 공급망 안정, 탄소중립 준비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그리고 지금 제15차(2026~2030)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6G, 첨단 바이오, 전략 제조업. 여기에 국가 실험실 체계와 R&D 확대, ‘리틀 자이언트’ 혁신기업 육성이 결합된다.
단기 성장률보다 산업 구조 전환이 우선순위다. 성장은 결과일 뿐 목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5개년 계획이 2035년 사회주의 현대화 완성과 2049년 건국 100주년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5년은 단위일 뿐, 실질적 설계는 세기 단위다. 중국은 15차 이후의 15차를 이미 계산하고 있다. 심지어 2100년 이후를 언급한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본질은 시간에 대한 태도다. 시간을 길게 잡는 국가만이 구조를 바꾼다.
물론 지방정부 부채, 부동산 거품, 인구 감소, 미중 기술 봉쇄라는 구조적 리스크도 동시에 누적되고 있다. 장기 설계가 곧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설계가 있는 국가는 위기를 조정하지만 설계가 없는 국가는 위기에 휘둘린다는 점이다.
중국이 1당 체제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장기 전략의 핵심은 권위주의가 아니라 제도화된 합의다. 독일도, 일본도, 미국도 정권이 바뀌어도 산업·안보의 큰 축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도 가능하다. 문제는 체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을 정권의 소유로 볼 것인가 사회의 자산으로 볼 것인가다.
반대로 우리는 어떤가.
5년짜리 정부가 출범하면 국가 전략은 리셋된다. 전임 정부의 정책은 ‘적폐’가 되고, 장기 프로젝트는 정치적 상징이 된다. 선거 공약은 넘쳐나지만 5년짜리 실행 로드맵조차 일관되지 못하다. 국정은 설계가 아니라 반응으로 움직인다.
우리는 과거에 계획의 힘을 경험했다. 박정희정권 때 3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경공업에서 수출로, 수출에서 중화학 공업으로 이어지는 방향성을 가졌다. 권위주의의 그림자는 분명했지만, 최소한 국가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좌표는 있었다.
그후 5개년 계획은 1996년 제7차를 마지막으로 종료됐다. 좌표가 사라진 자리에 속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도는 우리 정치를 매일 싸우게 했다. 여당은 야당을 공격하고, 야당은 정부를 흔든다. 정책은 국가 전략이 아니라 정치 무기다. 오늘의 승리가 내일의 구조보다 중요해졌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의 계획이 아니라 타국의 계획 속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설계하지 못하는 국가는 결국 남의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
이제 5년이 아니라 최소 세대를 상징하는 30년을 말해야 한다. 6개 정부가 공유할 국가 전략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뒤집지 못하는 합의 구조가 필요하다. 여야 공동 참여, 재계·노동계·학계·과학기술계·청년 세대와 지역 대표가 함께하는 국가 ‘장기전략위원회’를 제도화해야 한다. 헌법기관에 준하는 위상으로 고정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가 아니라 국회 특별법으로 설치하고, 여야 3분의 2 동의 없이는 폐지·변경할 수 없도록 하는 초정권형 합의 구조로 고정해야 한다.
30년 계획은 추상이 아니라 숫자여야 한다.
인구감소 속도와 연금개혁 로드맵, AI·반도체·바이오 세계 점유율 목표, 에너지 전환 속도와 전력 믹스 비율, 국방 기술 자립률, 지방소멸 대응 지표. 목표·수단·평가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정권교체가 국가 교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인구와 노동 문제는 생존의 영역이다. 출산율 0점대에서 병력 구조는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산업 인력은 어디서 확보할 것인가. 고령화 속도는 OECD 최고 수준인데 연금·의료 재정은 준비돼있는가.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계획이 없으면 붕괴 속도는 빨라진다.
에너지 전략도 그렇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수소와 배터리를 두고 정권마다 방향이 바뀌면 기업은 투자하지 않는다. 30년 설비에 5년 정책을 얹으라는 것은 모험을 강요하는 일이다. 전력 믹스와 탄소 감축 경로를 사회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은 투자 신뢰의 전제다.
교육과 과학기술은 더 심각하다. 노벨상 숫자가 목표가 아니다. 기초과학 투자 비율, 연구 생태계 안정성, 인재 유출 방지 구조가 설계돼야 한다. 혁신은 이벤트가 아니라 축적이다. 계획 없는 혁신은 유행으로 끝난다.
군사·외교도 마찬가지다. 동맹, 방위산업, 통상 전략을 초당적으로 합의해야 한다. 국제 질서는 선거 일정에 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하려면 전략의 연속성이 필요하다. 흔들리는 외교는 협상력을 잃는다.
정치는 상대를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을 이기는 기술이어야 한다. 2100년을 말하는 나라와 1년도 완성하지 못하는 나라의 차이는 결국 세대 단위의 격차로 나타난다. 국가 경쟁력은 GDP가 아니라 시간 설계 능력에서 나온다.
중국의 5개년 계획은 공장을 세운 것이 아니라 체계를 세웠다. 수출을 늘린 것이 아니라 역량을 축적했다.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는 국가 운영의 일관성이 오늘의 힘을 만들었다.
유효기간 5년짜리 정부 계획이 30년짜리 기업과 연구소 전략 위에 군림하는 국가는 가분수 국가다. 정권의 시계가 산업의 시계를 압도하면 연구는 끊기고 투자는 멈춘다. 국가는 방향을 제시해야지, 현장의 시간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는 그 위험선 위에 서 있다.
국가는 우연히 강해지지 않는다. 계획하고, 합의하고, 축적할 때 강해진다. 만약 우리가 여전히 5년 정치에 갇혀 30년 전략을 만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 산업·에너지·안보 구조는 우리의 설계가 아니라 타국의 설계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준비하지 않는 국가는 방향을 잃는다.
설계하지 않는 국가는 설계당한다. 정권의 시계에 갇힌 국가는 정권의 수명만큼만 성장하고, 그 이후의 비용은 다음 세대가 치른다. 역사는 준비한 국가만을 살아남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