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다음날, 더불어민주당은 곧바로 ‘내란범 사면금지법’을 처리하겠다고 선언하며,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름부터 강렬하다. 내란을 저지른 자는 영원히 사면의 대상이 될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법은 차갑게 설계돼야 하지만, 사면금지법은 뜨겁게 출발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79조는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한다.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를 요하고, 특별사면은 대통령이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다. 사면은 권력의 남용으로 비칠 때도 있지만, 동시에 국가가 갈등을 봉합하는 마지막 통로이기도 했다. 법이 정의를 세우는 장치라면, 사면은 정의 이후를 정리하는 정치적 수단이었다. 그런데 이제 정치가 그 통로 자체를 막겠다고 나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는 사면의 역사이기도 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속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특별사면했다. 국가적 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도 김대중·노무현정부 인사들을 포함한 대규모 사면을 단행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광복절 사면은 정치적 메시지였다.
사면은 언제나 논란 속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봉인 대상은 아니었다.
내란과 관련한 사면 논의도 처음은 아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헌정 파괴 범죄에 대한 사면 제한”이 거론됐다. 2020년 이후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중대 범죄 사면 제한” 법안이 수차례 발의됐다. 내란·외환·반란죄를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법안, 대통령 친인척 비리 사면을 제한하자는 법안, 선거범죄 사면을 금지하자는 법안도 있었다. 발의는 반복됐지만, 통과는 번번이 정치적 셈법에 가로막혔다.
2024년 초 민주당은 이미 내란·외환·반란죄를 범한 자에 대해 사면·감형·복권을 제한하는 사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에도 “다시는 쿠데타의 그림자가 돌아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표현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 법안은 정쟁 속에 묻혔다. 그리고 2026년 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무기징역 판결 직후, 같은 내용을 다시 꺼내 들었다. 법의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타이밍은 너무도 정치적이다.
사면은 정의를 부정하는 장치가 아니라 정의 이후를 조정하는 장치다. 역사적으로 사면은 국가 권력이 스스로를 절제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갈등이 격화된 사회에서 정치적 해소 통로를 남겨두는 안전판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 안전판을 “영구 봉인하겠다”고 한다. 법은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어야 한다.
민주당은 윤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죄 양형 참작 사유를 문제 삼았다. 고령, 장기간 공직 경력, 전과 없음 등이 감형 요소로 고려된 점을 두고 “황당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형량은 항소와 상고를 통해 다퉈야 할 문제다. 사법 절차의 영역을 입법으로 되치기하는 것은 위험하다. 판결을 비판할 수 있지만, 판결에 대한 감정을 곧바로 법 개정으로 연결하는 순간 입법은 정치 보복으로 읽힐 수 있다.
필자는 사면금지법이 필요 없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내란은 국가를 흔드는 범죄다. 헌정 질서를 전복하려는 시도는 단호히 단죄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어떤 경우에도” 사면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는 것은 또 다른 극단이다. 법은 영구적이어야 하고, 정치는 유동적이어야 한다. 민주당은 유동적인 분노로 영구적 장치를 만들려는 건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더 우려되는 지점은 사법개혁 패키지와의 동시 추진이다. 법왜곡죄 신설,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도입, 대법원장 탄핵 압박까지 한꺼번에 밀어붙이겠다는 기조는 입법권의 집중을 넘어 권력 재편으로 읽힌다. 사면금지법은 그 중 하나일 뿐이다. 권력을 통제하겠다는 명분 아래, 또 다른 권력 집중이 이뤄지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면권은 남용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원천 봉쇄 또한 권력분립의 균형을 흔들 수 있다. 헌법 제79조가 부여한 고유 권한을 법률로 차단하는 것은 단순한 형벌 정책이 아니라 권력 배분의 변경이다. 이는 위헌 논쟁을 피하기 어렵다.
국제적으로 보더라도 내란범·반란범 사면을 법으로 완전히 금지한 국가는 보편적 모델이 아니다. 대부분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면권은 대통령이나 국왕의 헌법상 고유 권한으로 남아 있으며, 특정 범죄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명문화 규정은 드문 편이다. 제도 자체를 봉인하기보다는 절차와 정치적 책임으로 통제하는 방식이 국제적 관행에 가깝다.
예컨대 미국 헌법은 대통령의 사면권을 폭넓게 인정하며, 내란이나 반역 역시 자동 배제되지 않는다. 영미권과 유럽 다수 국가도 유사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사면 제한 논의는 반복돼 왔지만 이를 ‘완전 금지법’으로 고정한 사례는 극히 예외적이며, 사면권은 논란의 대상이면서도 동시에 헌정 질서의 안전판으로 인식돼 왔다.
필자는 민주당에게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지우고도 이 법을 추진할 것인지, 10년 뒤에 다른 정권에서 같은 법이 또 다른 정치인을 묶는 족쇄가 되어도 감당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법은 언제나 자신이 만든 프레임 안에 권력을 가둔다. 오늘의 정의가 내일의 덫이 될 수도 있다.
한국 정치가 반복해 온 패턴은 분명하다. 권력을 잡으면 전임 권력을 처벌하고, 다음 권력이 들어서면 또 다시 처벌한다. 사면은 그 순환을 완화하는 장치였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정치적 긴장을 낮추는 출구였다. 그 출구를 아예 막아버리는 선택은, 정치의 숨통을 조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내란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그러나 국가는 복수의 기관이 아니다. 법은 응징을 넘어 질서를 설계하는 도구다. 사면금지법이 진정으로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면, 최소한 충분한 헌법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지금처럼 사건 직후의 열기 속에서 처리하겠다는 예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필자 상식으로는 왜 이렇게까지 서두르는지 이해가 안 된다. 왜 모든 것을 2월 국회 안에 밀어 넣어야 하는가. 왜 윤 전 대통령의 1심 판결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법으로 미래를 잠그려 하는가. 정의는 속도가 아니라 깊이로 완성된다. 법은 함성이 아니라 숙고로 만들어진다.
정치가 분노를 법으로 고정시키는 순간, 그 법은 언젠가 정치의 족쇄가 된다. 사면을 봉인하는 나라가 과연 더 안전한가. 아니면 더 경직되는가.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역사적 선택 앞에 서 있다. 필자는 그 선택이 감정이 아니라 구조 위에서 이뤄지기를 바란다.
만약 민주당 주도로 내란범 사면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이재명 대통령은 정파가 아니라 헌법의 균형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다수당의 강행 속에서 만들어진 법일수록 한 번 더 숙고하라는 제동이 필요하다. 필자는 오히려 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헌법적 검증과 사회적 합의를 다시 거치게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한 선택이라고 본다.
권력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헌법의 균형을 지키는 것. 그것이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책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