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1호’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이 10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번 사법부의 중처법 위반 무죄 판결은 단순히 한 기업인의 사법적 판단을 넘어, 한국 사회의 기업 지배구조와 산업재해 책임, 사법 정의의 기준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되묻게 만든다.
재판부는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그 판단이 과연 사회적 상식과 정의의 감각, 그리고 반복돼 온 산업 현장의 비극까지 충분히 고려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판결에서 가장 큰 쟁점은 ‘알고 있었는가’와 ‘통제할 수 있었는가’였다. 법원은 정 회장이 구체적인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도 이를 방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시민들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집단의 총수는 언제부터 현장의 안전과 무관한 존재였는가? 수천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수십여개의 계열사가 동일한 위험 구조 속에서 운영되는 기업에서,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책임은 어디까지로 축소될 수 있나?
“몰랐다”는 말의 면죄부화
한국의 산업재해 판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논리는 ‘직접 지시·직접 인지의 부재’다. 최고경영자는 보고를 받지 못했고, 현장 판단은 실무진의 영역이었으며, 따라서 형사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구조다. 이 논리가 누적되면 어떤 결과가 되는가. 권한은 위로 집중되고, 책임은 아래로 흩어진다.
기업 총수는 투자 결정과 구조조정, 사업 확장에는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조직도 어딘가에 있는 한 칸’으로만 남는다. 이는 법률적으로는 성립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 정의의 기준에서는 쉽게 납득되기 어렵다.
특히 반복적으로 발생해 온 산업재해의 역사 속에서 “몰랐다”는 말이 사실상 면죄부로 작동해 온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중처법의 취지와 판결의 거리
이번 판결은 중처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법원의 판단이 얼마나 보수적인지를 보여준다. 이 법의 취지는 분명했다. 단순히 현장 책임자 몇 명을 처벌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조직의 설계자이자 최종 책임자에게 안전 확보 의무를 묻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알았느냐”가 아니라 “시스템을 만들었느냐”가 핵심이어야 했다.
그러나 판결은 다시 개인의 인식과 개별 행위의 증명으로 회귀했다. 최고경영자가 안전 관리 체계를 실질적으로 구축했는지, 위험이 반복되는 구조를 방치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보다는, 구체적인 사고 순간에 대한 인지 여부가 중심이 됐는데, 이는 중처법이 겨냥했던 구조적 책임의 사유화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다.
법정 밖에 남은 노동자의 자리
무죄 판결이 내려진 법정 안에서는 사건이 종결됐을지 모르지만, 법정 밖에서는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사고로 생명을 잃은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이번 판결은 어떻게 다가올까? 기업은 무죄를 선고받았고, 총수는 책임에서 벗어났으며, 사회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죽음은 언제나 ‘사건’으로만 기록되고, ‘책임’으로는 남지 않는다.
사법 판단은 법률의 영역이지만, 그 파급 효과는 사회 전체에 미친다. 반복되는 무죄 판결은 기업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안전 관리가 미흡해도 최고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시그널은, 의도치 않게라도 위험을 비용으로 계산하게 만드는 유인을 제공한다.
이것이 바로 많은 시민들이 이번 판결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사법 정의는 사회의 감각과 만나야
물론 법원은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여론이나 분노에 따라 유죄를 선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법 정의가 사회의 감각과 지나치게 괴리될 때, 그 신뢰는 서서히 무너진다. 특히 산업재해처럼 구조적 문제와 권력 관계가 명확한 영역에서는, 법원의 판단이 현실의 권력구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 보일 때 더 큰 실망을 낳는다.
이번 판결은 “법적으로 무죄일 수는 있으나, 사회적으로 책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는 오래된 문장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기업 총수의 책임은 단지 형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운영의 윤리와 사회적 신뢰의 문제기도 하다. 법원이 묻지 못한 질문은 결국 사회가 계속해서 던질 수밖에 없다.
끝나지 않은 질문
이번 정 회장 1심 무죄 판결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산업재해는 왜 반복되는가, 최고 책임자는 왜 늘 법정에서 멀어지는가, 그리고 법은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에게 더 엄격한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외면하는 한, 또 다른 현장에서 또 다른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똑같은 판결과 똑같은 논쟁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법정에서 책임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회적 책임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판결은 ‘법이 닿지 못한 책임의 자리는, 과연 누구의 몫으로 남겨질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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