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한국은 중간국가 아닌 문명 교차 국가여야

2026.01.03 08:36:22 호수 0호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의 방중 사이, 한국의 역할

2026년 새해 벽두, 한국 외교의 좌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4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한다. 9년 만의 방중이고, 일정도 이례적으로 빠르다. 시기도 우연이 아니다. 4월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미·중·북을 둘러싼 한반도 질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방중은 단순한 양자 외교 일정이 아니다. 미·중 관계, 북핵 문제, 동아시아 안보 질서가 동시에 얽힌 지점에서 한국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묻는 시험대다. 그리고 이 질문은 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진다. 한국을 여전히 ‘중간국가’로 부를 것인가, 아니면 ‘문명 교차 국가’로 다시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한국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호출되는 개념은 여전히 중간국가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여 있고, 해양과 대륙의 경계에 위치하며, 강대국 경쟁의 압력을 동시에 받는 나라라는 의미다. 그러나 이 개념은 이제 설명이 아니라 굴레에 가깝다. 한국을 중간국가로 규정하는 순간, 한국은 스스로를 수동적 존재로 고정시키게 된다.

중간국가라는 말 속에는 늘 같은 전제가 숨어 있다. 선택을 강요받는 나라, 줄을 서야 하는 나라,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눈치를 봐야 하는 나라라는 인식이다. 이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한, 한국의 외교와 전략은 언제나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이번 방중 일정은 그 프레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줘야 한다. 한국은 지금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는 위치가 아니라, “어떤 질서를 조율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한반도는 단순한 지정학적 완충지대가 아니다. 사상과 제도, 종교와 생활양식이 끊임없이 유입되고 충돌하며 재구성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온 교차의 공간이었다. 한국은 중국 문명을 그대로 복제하지도, 서구 문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은 채, 외래 문명을 소화하고 다시 우리 방식으로 재구성해왔다.


유교는 중국에서 들어왔지만, 조선에서는 관료제와 행정, 교육과 일상 규범을 떠받치는 사회 운영의 원리로 작동했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돼 중국을 거쳐 전해졌으나, 한국에서는 왕권과 민중, 사유와 수행이 결합된 독자적 사상 체계로 자리 잡았다. 근대 이후 유입된 기독교 역시 신앙을 넘어 교육·의료·시민 의식과 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사회적 종교로 역할을 했다.

중요한 점은 한국이 이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받아들일 때,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것 하나만 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언제나 겹쳐 쌓는 방식으로 문명을 흡수해 왔다. 바로 이 점이 한국을 중간국가가 아니라 문명 교차 국가로 규정해야 하는 이유다.

중간국가와 문명 교차 국가는 역할부터 다르다. 중간국가는 강대국 사이의 완충지대다. 힘의 충돌을 대신 맞아주는 공간이며, 주도권은 언제나 바깥에 있다. 반면 문명 교차 국가는 뜻을 풀어 전하는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질서를 잇고, 충돌을 조정하며, 각 문명의 생각과 규범을 이해 가능한 형태로 바꿔 전달한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방중을 앞두고 중국은 한국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일본을 비판하며 대만 문제에 대한 입장을 요구했고, 역사 인식과 국제 질서를 함께 언급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압박이 아니다. 한국을 동아시아 문명 질서의 일부로 다시 묶으려는 시도다.

여기서 중간국가의 선택은 단순하다. 부담을 느끼며 거리를 두거나, 침묵으로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 교차 국가의 선택은 다르다. 미국의 동맹 요구, 중국의 체면과 질서 요구, 일본의 역사 문제, 대만을 둘러싼 긴장을 하나의 문맥으로 엮어 조정하는 것이다.

2026년의 세계 질서는 더 이상 하나의 축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국의 제도와 기술, 중국의 문명과 국가 질서가 동시에 작동하는 다중 질서의 시대다. 4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은 이 다중 질서가 충돌이 아니라 관리 국면으로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 구도 속에서 한국이 여전히 스스로를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중간국가’로 규정한다면, 한국은 끝없이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강요받는 나라로 남게 된다. 그러나 한국이 스스로를 문명 교차 국가로 규정하는 순간, 질문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질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로 바뀐다.

문명 교차 국가로서의 한국은 미국에는 동맹과 제도, 기술과 규범의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금융 질서와 첨단 산업에서의 연결은 생존의 축이다. 동시에 중국을 경쟁자나 경계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역사와 문명, 장기적 시간 감각의 언어로 접근해야 한다.

이것은 줄타기가 아니다. 기회주의도 아니다. 이것은 문명 교차 국가로서의 책임이다. 미국은 동맹을 요구하고, 중국은 존중과 체면을 요구한다. 이 상이한 요구를 동시에 이해하고 조정할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역사 속에서 이 요구들 사이를 건너온 나라다.

그래서 2026년 한국 외교의 핵심 질문은 분명해야 한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가 아니다. “어느 문명을 배제할 것인가”도 아니다.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은 어떤 질서를 조율할 것인가, 그리고 그 연결을 통해 무엇을 제안할 것인가”다.


한국은 문명이 겹쳐 있고, 질서가 중첩된 나라다. 한때 약점으로 여겨졌던 이 복합성은, 단일한 가치와 단일한 질서로는 세계를 설명할 수 없는 시대에 가장 강력한 전략 자산이 된다.

중간국가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문명 교차 국가는 선택지를 만든다. 이 대통령의 방중과 트럼프의 방중 사이에 놓인 지금, 한국은 더 이상 “어디에 설 것인가”를 묻는 나라여서는 안 된다. 이제는 “무엇을 연결하고, 어떤 질서를 조정할 것인가”를 제안하는 나라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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