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2026년, 법이 아닌 책임 바뀐다

2026.01.01 00:00:00 호수 0호

새로 시행되는 법이 드러낸 책임의 주인과 지방선거

2026년 새해에 시행되는 주요 법안들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법이 아니다. 그동안 누구에게 떠넘겨졌는지를 숨겨왔던 책임의 주인을 드러내는 법들이다.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플랫폼 노동자 보호, 인공지능 기본법, 상법 개정안 등은 더 이상 개인과 약자에게 위험을 미루지 않겠다는 방향을 가리킨다.



이 변화는 곧 정치의 시험대가 된다. 책임을 넓히겠다는 법 앞에서 누가 감당할 준비가 돼있는가. 특히 2026 지방선거는 약속을 늘어놓는 선거가 아니라,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권력을 가려내는 선거가 될 것이다. 말이 아니라 선택과 결과로 그 준비가 검증되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2026년은 ‘입법의 해’ 아닌 ‘책임 재정의의 해’

2026년에 새롭게 시행되거나 본격 적용되는 법안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보면, 규제 강화나 복지 확대가 아니라 ‘책임의 이동’이라는 공통된 키워드가 드러난다. 누가 어디까지 부담져야 하는지, 그 책임을 정치와 제도가 어디에 내려놓을 것인지라는 질문이 모든 법안의 바탕에 깔려 있다.

노란봉투법,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플랫폼 노동자 보호법, AI 기본법, 상법 개정안은 서로 다른 영역의 법처럼 보이지만, 기존에 개인·하청·노동자·이용자에게 떠넘겨졌던 위험과 부담을 기업·원청·경영자·플랫폼으로 옮긴다는 동일한 구조를 공유한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제도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책임의 경계가 바뀌는 순간, 정치의 언어도 바뀌고, 선거의 프레임도 달라진다. 2026년 지방선거는 ‘누가 잘했는가’를 묻는 선거가 아니라,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를 묻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노란봉투법, 노동권 보호인가 산업 책임 전가인가

노란봉투법은 새해를 관통하는 가장 상징적인 법안이다. 이 법은 사용자 범위를 넓히고,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함으로써 노동자의 교섭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겉으로 보면 노동권 회복이라는 명분은 분명하고, 사회적 공감대 역시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법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다른 데 있다. 노동 분쟁의 책임을 누구에게 묻는가라는 문제다. 하청과 용역, 파견 구조가 일상화된 산업구조에서 노란봉투법은 분쟁의 책임을 개인 노동자가 아니라 원청과 기업으로 이동시킨다. 이는 노동자 보호라는 이름 아래 산업구조 전체의 책임 지도를 다시 그리는 시도다.

이 지점은 지방선거와 직결된다. 지역 산업과 고용 환경을 책임지는 지방정부에게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찬반은 일자리, 기업 유치, 노사 갈등 관리에 대한 정치적 입장으로 전환되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노동 친화와 기업 친화 공약의 충돌은 이 법을 중심으로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 강화, 안전의 이름으로 묻는 형사 책임

중대재해처벌법의 강화는 안전이라는 가치가 어디까지 제도화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법안이다. 내년 이후 논의되는 개정 방향은 경영 책임자의 범위를 넓히고, 하도급·플랫폼 구조까지 책임을 확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사고의 원인을 구조에서 찾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문제는 이 법이 기업 운영의 리스크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점이다. 안전 관리 실패는 행정적 과실을 넘어 형사 책임으로 전환되며, 안전을 지키지 못했을 때 그 책임은 대표이사와 임원, 지방 현장 책임자까지 확장된다. 이는 기업의 투자, 채용, 사업 확장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지방선거에서는 이 법이 지역개발과 직결된다. 물류센터, 건설 현장, 산업단지 유치에 적극적인 지방정부일수록 중대재해법 강화에 대한 현실적 해석이 필요해진다. 안전을 강화하겠다는 선언과 산업을 유지하겠다는 현실 사이에서 지방 정치인은 명확한 선택을 요구받게 된다.

플랫폼 노동자 보호법, 새로운 노동자 계층의 정치화

플랫폼 노동자 보호법은 노동법의 전통적인 개념을 흔드는 법안이다. 이 법은 배달, 운송, IT 플랫폼 종사자에게 일정 수준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사회보험과 안전망을 확대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이는 ‘고용’이라는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는 시도다.


플랫폼 노동은 이미 중요한 노동 형태로 떠올랐지만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고, 보호법은 그 간극을 메우는 동시에 플랫폼 기업의 비용 구조와 사업 모델을 흔든다. 보호의 확대는 곧 책임의 확대며, 플랫폼은 더 이상 중개자가 아니라 책임의 주체로 호출되고 있다.

이 법은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유권자 집단을 형성한다. 플랫폼 노동자는 특정 산업이나 지역에 고정되지 않지만, 도시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다. 이들의 요구는 복지와 규제, 일자리 안정이라는 형태로 지방정부 정책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기본법, 기술 규제가 정치 의제가 되는 순간

내년 1월 시행되는 인공지능 기본법은 기술 정책이 정치의 전면으로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이 법은 고위험 AI에 대한 규제, 투명성 의무,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술 발전을 장려하면서도 통제하겠다는 이중적 목표를 가진 법이다.

AI는 더 이상 일부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채용, 행정, 복지, 치안까지 지방정부의 모든 영역에 이미 활용되고 있다. AI 기본법은 지방정부 역시 기술 책임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잘못된 알고리즘 결정은 행정 책임이자 정치 책임으로 전환된다. 기술이 판단하고 행정이 집행할 때, 책임은 누구의 이름으로 남는가.

지방선거에서는 ‘스마트 시티’ ‘AI 행정’이 단순한 홍보 문구가 아니라 검증 대상이 된다.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약속보다, 그 기술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상법 개정, 기업 지배구조가 선거 언어가 되다

내년 시행되는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 명문화한다. 이는 기업 경영의 법적 기준을 바꾸는 조치다. 그동안 추상적이던 책임이 구체적인 이해관계자에게 귀속된다. 경영 판단의 결과가 더 이상 ‘선의의 재량’이라는 이름으로만 보호받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이 변화는 기업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경제에서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고용과 세수의 핵심이다. 경영 판단이 위축되거나 분쟁이 증가할 경우, 그 여파는 지역 사회로 확산된다. 상법 개정은 기업과 지역정치의 관계를 다시 묻는 법안이다. 이제 경영 판단은 결과로 평가받는다.


지방선거에서 기업 친화적 이미지와 주주 보호 이미지는 종종 충돌한다. 상법 개정은 이 충돌을 제도화했고, 지방 정치인은 어느 쪽 책임을 더 강조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성장과 공정이라는 두 언어를 동시에 말할 수 없는 순간이 선거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미디어·플랫폼 규제, 여론의 책임 묻다

미디어와 플랫폼 규제를 강화하려는 법안들은 표현의 자유와 공공성 사이의 균형을 다시 묻는다. 알고리즘 투명성, 콘텐츠 책임 강화는 여론 형성의 책임을 플랫폼에 묻는 시도다. 여론을 중개한다는 이유로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제가 법으로 명문화되는 셈이다.

이 법안들은 선거 환경과 직결된다. 지방선거 역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고 확산된다. 플랫폼 규제는 선거 전략과 캠페인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 메시지의 속도보다 책임의 출처가 먼저 검증받는 선거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

정치는 늘 여론을 활용해 왔지만, 2026년 이후에는 여론 관리의 책임 또한 제도적 통제를 받게 된다. 이는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 새로운 기준을 부과한다. 선동과 확산의 경계가 법의 언어로 재정의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란·국가안보 관련 법안, 정치의 한계 규정하다

내란·국가안보 관련 특별 사법 체계는 국가 질서의 최후 책임을 명문화한다. 이 법안은 극단적 상황을 대비한 것이지만, 동시에 정치의 한계를 제도적으로 규정한다. 권력이 위기를 명분으로 질서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제동장치기도 하다.

정치적 갈등이 격화될수록 이 법안의 존재감은 커진다. 법은 정치의 안전장치이자 경고다. 책임 없는 선동과 과잉 정치에 대한 제도적 제동이 된다. 말의 자유가 권력의 무책임으로 변질되는 순간을 법이 먼저 가로막겠다는 선언이다.

지방선거에서도 이 흐름은 영향을 미친다. 중앙 정치의 갈등이 지방으로 전이될 때, 유권자는 안정과 질서를 강조하는 후보에게 더 많은 신뢰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언어보다 관리하고 수습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떠오를 것이다.

2026 지방선거, ‘약속의 경쟁’서 ‘책임의 경쟁’으로

2026 지방선거는 공약의 양이 아니라 책임의 깊이를 묻는 선거가 될 것이다. 새로 시행되는 법안들은 모두 지방정부에 새로운 부담과 선택을 요구한다. 노동, 안전, 기술, 기업, 여론, 질서 어느 것도 지방정부의 책임 밖에 있지 않다.

이제 지방 정치인은 더 이상 중앙정부 탓으로 물러설 수 없다. 법이 정한 책임의 경계 안에서 어떻게 선택하고, 무엇을 감당할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이는 정치의 성숙을 요구하는 신호다. 말이 아니라 결과로 책임을 입증하라는 요구기도 하다.

2026년 새해는 법이 바뀌는 해가 아닌 책임이 재편되는 해다. 그리고 그 책임을 누가 질 수 있는지를 묻는 가장 현실적인 무대가 바로 지방선거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아무리 많은 공약을 내놓아도 선택받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정치의 무대는 ‘책임의 실험장’

2026년에 시행되는 법들은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책임을 재배분하는 거대한 지도 개편이다. 노동·안전·기술·플랫폼·기업 지배구조·여론·국가 질서까지 책임의 언어로 다시 묶이면서, 이 전환의 첫 시험대가 바로 2026년 지방선거다.

지방정부는 새로운 법적 책임을 가장 먼저 감당해야 하는 실험장이다. 산업 생태계와 노동시장, 기술 도입, 공공서비스, 안전과 여론까지 모두 지방정부의 직접적 조율 대상이 된다. 중앙정부 입법 뒤에 숨을 공간은 사라졌고, 각 지역의 책임 리더십이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드러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2026 지방선거는 약속을 나열하는 선거가 아니라 책임을 증명하는 선거가 된다. 공약의 감탄사보다 감당의 설득력이 승부를 가르며, 유권자는 ‘무엇을 하겠다’보다 ‘어디까지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보게 된다. 책임을 말하지 않는 정치인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공약은 기억되지 않지만, 책임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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