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글리치 정원’ 만욱

2025.12.31 16:05:51 호수 1564호

식물과 기계 그리고 인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 종로구에 자리한 갤러리마리에서 작가 만욱의 개인전 ‘글리치 정원-작동하는 식물, 자라는 기계, 망설이는 인간’을 준비했다. 이번 전시는 인간 중심의 가치 판단 속에서 이해의 바깥으로 밀려난 비인간적 존재들 즉, 식물과 기계, 시스템을 다시 안으로 불러들이며 동시대 창작의 조건을 생태적 관점에서 재고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작가 만욱은 2018년부터 이어온 ‘기계인간’ 연작과 지난해 ‘잡초 보호구역’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유용함과 무가치함의 구분을 지속적으로 질문해 왔다. 이번 전시 ‘글리치 정원’은 그 문제의식이 집약된 지점으로, 실패나 경험으로 인식돼온 ‘글리치(Glitch)’를 새로운 가능성이 발아하는 조건으로 재해석했다.

AI와 협업

만욱은 “나는 인간의 방식으로 세계를 구분하고 가치와 무가치를 나누며 유용함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이해의 바깥으로 밀려난 비인간 존재에 대해 작업했다. ‘글리치 정원’은 그 바깥으로 밀려난 비인간종을 다시 안으로 불러들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인간과 기계, 자연이 얽힌 하나의 작동 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식물은 기계가 제공하는 인공 조도에 반응하며 자라고 기계는 인간의 움직임과 환경 변화에 반응한다. 작가의 기존 작업 데이터는 생성형 AI(인공지능)와의 협업을 통해 증폭된 이미지로 되돌아오며 예측 불가능한 생성과정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결과를 통제하는 주체가 아니라 조건을 설계하는 존재로 위치하며 동시에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는 경험을 감내한다.


비인간적 존재에 주목
오류와 흔들림의 협력

만욱은 기계와의 협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챗GPT와 생성형 AI를 통해 나의 작업 데이터는 단순한 확장을 넘어 증폭된 이미지로 되돌아왔고 쏟아지는 이미지를 바라보며 경이로움과 혼란이 공존하는 순간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이 이미지들은 나의 창작물일까?”하는 의문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는 결국 ‘누가 누구를 자라게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식물은 기계의 빛에 의존해 자라지만 기계는 인간의 상태에 반응한다. 지금 시대의 창작은 인간과 기계, 그리고 자연 모두와 연결돼 자라고 있지 않은가. 창작과 생성, 통제와 예측 불가능성 사이에서의 줄다리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관람객은 식물의 성장, 기계의 반응, 빛의 변화,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사운드를 동시에 경험한다. 이 시스템은 어느 한 주체의 의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작가는 방향을 제안할 뿐 결과를 완전히 결정하지 못한 채, 개입과 방임 사이 그 미세한 지점에서 망설인다.

만욱은 “우리는 흔히 함께 산다고 말한다. 함께 산다는 것은 타자의 조건을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실험과 실패, 수정의 과정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나는 인간과 기계, 식물이 함께 만들어내는 공존의 구조를 다시 그려보고자 했다. 생성과 제거, 실수와 발아, 기계적 반복과 식물의 성장 사이에서 우리는 결국 모두가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강조했다.

망설임

갤러리마리 관계자는 “전시 ‘글리치 정원’은 오류와 흔들림의 새로운 협력의 가능성을 제안하며 상호 의존적 세계 속에서 창작과 공존의 미래를 사유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며 “이 전시는 완결된 결과보다 과정과 관계에 주목하며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의 전환을 제안한다. 만욱은 통제와 예측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서로 다른 존재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흔들림과 균형을 통해 동시대 예술이 나아갈 또 다른 가능성을 사유하게 된다”고 말했다. ⓒ갤러리마리 

<jsjang@ilyosisa.co.kr>
 

[만욱은?]

▲개인전
‘털갈이를 응원해’ 슬도아트(2025)
‘재야생 지구’ 갤러리 호아드(2024)
‘잡초 보호 구역’ 갤러리 밈(2024)
‘rule of no-rule’ 더현대서울 PBG gallery(2023)
‘속 깊은, 평평한 나무’ gallery tya(2023)
‘개걔계, 세-개의 세계’ 갤러리 다온(20222)
‘유기된 적 없는 유기-개와 정직한 기-계’ 공간루트(2022)
‘우리의 메타스페이스’ adm gallery(2021)
‘개걔계, 함께 살기’ 예술공간 서로(2021) 외 다수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