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의 당사자는 당사자 일방이 자신의 채무를 이행하거나 이행하지 않은 채 상대방에게 채무의 이행을 청구하면, 상대방은 그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우리 민법은 제536조 제1항에서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그 채무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해서 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이 계약상 관계에 따라 거절할 수 있는 권리를 동시이행의 항변권이라 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공평의 관념과 신의 원칙에 입각해 각 당사자가 부담하는 채무가 서로 대가적 의미를 가지고 관련되는 경우에 그 이행에 견련관계(상호의존관계)를 인정, 당사자 일방은 상대방이 채무를 이행하거나 이행의 제공을 하지 않은 채 당사자 일방의 채무 이행을 청구할 때에는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대법원 1999. 4. 23. 선고 98다53899 판결 등 참조).
아파트 임대차가 종료함에 따라 발생하는 임차인의 목적물 반환 의무와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는 민법상 동시이행 관계에 있다.
따라서 임대차계약 종료 후에도 임차인이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해 임차건물을 계속 점유해 온 것이라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 반환 의무를 이행했다거나 현실적인 이행의 제공을 해서 임차인의 건물 명도 의무가 지체에 빠지는 등의 사유로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상실하지 않는 이상, 임차인의 건물에 대한 점유는 불법점유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임차인으로서는 이에 대한 손해배상 의무도 없다(대법원 1998. 5. 29. 선고 98다6497 판결 등 참조).
또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후 아파트를 점유하는 경우, 임대인에 대한 보증금반환채권의 소멸시효도 진행하지 않는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16다244224, 24431 판결 등 참조). 소멸시효는 우리 민법 제162조 등에서 정한 것으로, 권리를 일정한 기간 동안 행사하지 않는 경우에 그 권리가 소멸하는 규정이다. 일반적인 채권의 소멸시효 기간은 10년이다.
임대차계약 종료 후에도 임차인이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행사해 임차 건물을 계속 점유하는 경우,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해 갖고 있는 보증금반환 채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우리 대법원은 이런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 이유로, 채권을 행사해 실현하려는 행위를 하거나 이에 준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행위 모습이 있으면 권리를 행사한다고 보는 것이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데,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후 동시이행 항변권을 근거로 임차 목적물을 계속 점유하는 것은 임대인에 대한 보증금반환 채권에 기초한 권능을 행사한 것으로서 보증금을 반환받으려는 계속적인 권리행사의 모습이 분명하게 표시됐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따라서 임대차 종료 후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 목적물을 점유하는 경우 보증금 반환 채권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으로 봐야 하고, 임차인이 임대인에 대해 직접적인 이행청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권리의 불행사라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즉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 경우, 임차인의 건물에 대한 점유는 불법점유라고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손해배상을 할 책임도 없다. 또 계속 점유를 한 경우라면 임대차 종료 후 10년이 지난 상황에서 보증금반환청구도 가능하다. 전세 사기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만큼, 법적으로 구제받을 기회를 구상해볼 필요성이 있다.
[법무법인 청목 533-88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