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60)성황당 철거 작업하다

  • 김영권 작가
2025.07.14 05:02:41 호수 1540호

“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건 피에로가 때때로 중얼거리곤 하던 정글북의 서시였다. 복사꽃이 한 잎 두 잎 떨어져 날리던 날이었다.

경찰 두 명이 배를 타고 선감도로 들어왔다.

그들은 곧장 선감학원의 본관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후 원장을 비롯한 지도부장 선생들과 함께 나와 마을 이장 집으로 갔다.

마지막 선물

용운은 소문을 듣고 대충 알았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들은 이장과 함께 오랫동안 의논을 했다고 한다.


경찰이 누런 봉투 속에서 공문을 꺼내 이장에게 보여 주었다. 안건은 ‘미신 타파를 위한 성황당 철거’였다.

그 내용은 이를테면 건전한 정신 생활문화를 조성하기 위하여 성황당을 헐어 없애고 성황목을 베어내며 무당업을 엄중 단속한다는 것이었다.

들일을 나갔던 주민들도 몇 사람 참석하여 설왕설래가 벌어졌으나 결국 ‘혁명 정신을 고취하고 새마음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치기 위한 중요 사업이므로 아무도 방해할 수 없다’라고 하는 방침에 따라 실시하기로 결정되었다.

각 반에서 인원이 차출되어 작업조가 꾸려졌다. 용운도 그 속에 끼여 있었다. 보리밭 둑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문득 백곰이 슬쩍 다가오더니 빙긋 웃으며 작게 접은 쪽지 하나를 내밀었다.

“또 누나에게 갖다 주라구요?”

용운은 좀 찌푸린 표정으로 물었다.

“아냐, 나중에 너 혼자 읽어 봐.”

“예?”

용운은 백곰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그동안 나 때문에 수고했지?”

“예?”

“아무튼 미안해. 나도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곳이 워낙 그렇고 그런 곳이다 보니…….”

“…….”

용운은 묵묵히 백곰의 눈을 바라보다가 슬쩍 외면해 버렸다.

“그건 그렇고, 너 이젠 엄마 찾는 걸 포기했냐?”

백곰이 느닷없이 물었다.

“예?”

“짜식아, 그동안 엄마 찾으려고 탈출이니 뭐니 별 지랄 다 했잖아.”


“…….”

“사내 자식이 결심을 했으면 떫은 감이라도 씹어 삼켜야지, 응? 소원을 이루길 바란다.”

“예?”

“쪽지 잘 읽어 봐.”

백곰은 다시 씩 웃곤 스쳐가 버렸다.

용운은 궁금증을 못 이겨 뒤로 슬쩍 처져 걸으며 쪽지를 폈다. 거긴 의외의 내용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백곰의 탈출 시나리오
똥파리에게 뺏긴 쪽지

아마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군. 누구나 탈출 때 곧장 마산포까지 헤엄칠 생각만 하는데 그건 자살 골이나 마찬가지야. 마을 어부들 외엔 비밀이지만, 한 달에 한 번쯤 헤엄을 안 치고도 건널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바로 사리 때인 초이렛날 새벽 세 시쯤이다.

물이 빠지면 마산포로 향하지 말고 털미 쪽으로 가야 한다. 물이 다 빠져 뻘 속을 걸을 수가 있으니까. 이어 털미에서 또 어도로 가야 하는데 그게 문제다. 털미에서 어도까지는 황새울에 물이 흐르고 있는데 폭이 무척 넓어. 그러니 아래쪽으로 돌아 넓게 원을 그리면서 서너 시간 걸으면 황새울이 차츰 얕아져서 건너가게 돼.

그러다 보면 마산포로 가기 전에 다시 물이 들어온다. 거기서 더 가지 말고 어도에 숨어서 기다렸다가 기회를 보아 물이 얕고 잔잔해지면 전속력으로 건너야 한다. 그럼 성공을 빌게.

추신; 정보를 입수한 지는 제법 되었다. 그런데 내가 왜 탈출하지 않았는지 궁금하겠지? 반장질 해먹는 재미 때문이었다고 해두자. 이제부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가 기회되는 대로 그 누나를 잘 좀 살펴주길…….

용운은 혹시 백곰이 자기를 궁지에 몰아넣어 죽이기 위해 술수를 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조심하기로 했다.

하지만 왜? 내 마음이 사악하니 이런 의심마저 드는구나 싶어 부끄럽기도 했다.

그는 정말 반장질 해먹는 재미 때문에 탈출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젠 반장도 아니고 원장과 사감 선생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신세가 아닌가.

그렇다면? 혹시 박꽃 누나 때문에 차마 나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자가…… 무슨 일이 있으면 누나를 보살펴 주길 바란다니 대체 무슨 소릴까?

용운은 혼란스런 머리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때 갑자기 바로 뒤에서 작게 키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용운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똥파리라고 불리는 아이가 잽싸게 쪽지를 낚아채더니 멀찍이 달아나며 혀를 쏙 내밀어 보였다.

하는 짓이 지저분하고 추근추근해서 똥파리에 거머리까지 별명이 두 개인 유일한 놈이었다. 그는 슬슬 옆걸음질을 치면서 쪽지의 내용을 읽어 보았다.

“흐흥, 아까부터 뭔가 냄새가 나서 사르르 뒤따랐더니 건데기가 있긴 있었군.”

“야, 그것 이리 내놔.”

용운은 목소리를 낮춰 말하며 쫓아갔다.

“일급 비밀문서를 맨입에 그냥 내놓으라구? 자식이 염치도 없군.”

“그럼 어쩌라구?”

“뭘 어째, 어쩌긴. 다 니가 하기 나름이지. 헤헤.”

“뭘 원하는 거지? 난 가진 게 없어.”

“없긴 왜 없어, 이 멍청아. 밥도 있고 빵도 있잖아. 그리고 일을 대신해 줄 수도 있고…… 헤헤, 아마 찾아보면 더 있을 거야.”

비밀계약

“그럼 매일 배급받은 빵을 줄게. 그걸 돌려주고 꼭 비밀을 지켜.”

“헤헤, 이제야 좀 알아듣는군. 이 쪽지는 내가 나중에 변소에 가서 찢어 버릴 테니까 걱정을 말어.”

그렇게 해서 좀 불안스럽지만 비밀계약이 성립되었다. 용운은 한편으론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백곰에게 피해가 갈까 봐 어쩔 수가 없었으며, 자기 자신도 이미 찍힌 몸이라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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