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조자

2024.05.13 09:30:53 호수 1479호

비엣 타인 응우옌 / 민음사 / 1만8000원

이야기는 베트콩 재교육 수용소에 갇힌 ‘나’의 자백으로 시작된다. 1975년 4월, 남베트남 특수부 소속 육군 대위인 나는 수도 사이공이 함락당하기 직전 상관인 ‘장군’ 가족과 함께 CIA가 제공한 수송기를 타고 괌으로 탈출할 준비를 한다. 



원래 북베트남 출신인 나는 어린 시절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을 가다가 CIA 공작원 ‘클로드’에게 발탁돼 정보 요원 일을 시작했다. 이후 클로드 덕분에 미국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나는 고국으로 돌아와 엘리트 정보 장교가 되고, 장군과 함께 경찰에 파견돼 방첩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나는 사실 북베트남이 남쪽에 심은 고정 간첩이었다. 프랑스인 가톨릭 신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서 태어난 나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어릴 적부터 주변인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역시 혼혈이라는 이유로 동급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만’과 ‘본’이라는 두 친구에게 도움을 받는다.

이 일로 가까워진 세 사람은 피를 섞는 의식을 통해 의형제가 되고, 나는 공산주의에 심취한 만에게 이끌려 함께 북베트남의 정보원이 된다. 이후 세 사람은 모두 군인이 되어 만과 나는 정체를 숨긴 채 북측 정보 장교로 활동하고, 본은 두 친구가 스파이인 것을 모른 채 남측 공수부대의 정예 하사관이 된다.

사이공 함락 직전, 나는 만에게서 장군과 함께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가라는 지령을 받는다. 남베트남 군대의 잔당이 미국서 미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 탈환을 시도할 것이므로 현지서 그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지령에 따라 장군 가족과 함께 미군 수송기를 타고 사이공을 떠나려던 나는 이륙 직후 북베트남군의 로켓 공격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간신히 미국령 괌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 과정서 친구 본은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고 만다.


이제, 태어나면서부터 ‘이중성’을 지닌 ‘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자이자 이중간첩으로 살아가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베트남 대위이지만, 알고 보면 CIA 비밀요원이고, 마지막 꺼풀을 벗기면 베트콩 고정간첩인 ‘나’는 같은 이민자 출신인 베트남인들을 감시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나라를 잃었으면서도 여전히 권력욕을 놓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는 베트남 군인들, 시혜적이며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구출자’ 미국인들, 미국 문화와 물질문명에 흠뻑 빠져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 

그 사이서 영원히 두 얼굴의 남자로 살아가는 ‘나’, 그리고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을 상징하는 두 친구에 관한 우정과 첨예한 이데올로기, 고도의 정치·사회 풍자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어쩌면 작가는 거대한 전쟁, 거대한 혁명의 실패보다 ‘아무것도 아닌’ 개인의 중요함, 개인으로서 여전히 혁명적으로 행동하고 연대의식을 실천하는 것의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냉전의 이분법적 시대가 지난 후, 다양하고 세세하게 동시에 전 지구적으로 전개되는 사회 문화적 이슈 앞에서 갈등하는 개인으로서 우리에게 이 작품이 의미를 지니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며, 이는 아직도, 혹은 이제부터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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