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거꾸로 읽는 세계사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2023.08.07 13:45:14 호수 1439호

2008년 유시민 작가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 초판이 나왔을 때, 필자는 세계사를 시대 역순으로 정리한 책으로 알고, 책 뒤부터 읽어도 시대순으로 세계사를 읽을 수 있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책을 사서 읽어보니 <거꾸로 읽는 세계사>서 ‘거꾸로’는 시대 역순이 아니라 근대사의 중요한 사건들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재조명하는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당시 필자는 시대순으로 정리된 세계사보다 시대 역순으로 정리된 세계사가 책으로 나오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대순의 세계사는 얼마 되지 않은 유적과 유물, 그리고 해석하기도 어려운 고서 등을 통해 불확실한 사실을 엮어서 만든 고대사가 세계사의 기초가 돼, 중세사로 이어지고, 근대사와 현대사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말한다.

그러나 존재하는 모든 것이 확실한 사실이자 역사인 현대(사)가 세계사의 기초가 돼, 현대사를 기점으로 근대사, 중세사, 그리고 고대사로 이어지는 세계사가 더 확실한 세계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대순의 세계사는 시대(시간)가 그 기준이라 할 수 있지만, 시대 역순의 세계사는 사람이나 사건(일)이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세계사를 읽고 배우는 주체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세계사의 서술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 기준의 현대서부터 시작돼야 이해하기 더 쉬워진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나라 역사도 시대 역순(현대사→근대사→조선→고려→삼국→고조선)으로 정리된 책이 있다면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됐을지 모른다.

국사를 유난히 잘했던 고3 때 친구가 국사 책을 뒤에서부터 읽으면 전체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까지 인류는 하루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사람과 일 기준으로 표현하지 않고, 시간 기준으로 표현하는 것을 당연히 여겨왔다.

예를 들어, ‘아침에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마치고 저녁에 퇴근하고, 아침에 집을 나와 볼 일 보고 저녁에 귀가하고’는 시간 기준의 프레임으로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시간 기준 프레임이 아닌 사람이나 일 기준의 프레임으로 볼 때 ‘저녁에 집에 들어왔다가 아침에 나가는 것’으로, 시간 기준의 프레임과 거꾸로 된다.

시간 기준의 프레임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시간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는 사람이나 일이 기준이 되는 것을 간과함으로써 발생하는 우리 일상서의 잘못된 방향성에 대해 이젠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사회라는 범주 안에서도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건의 순서가 ‘서론→본론→결론’, ‘기→승→전→결’ 등과 같이 원인을 시작으로 과정을 거쳐 결과가 만들어지는 프레임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수많은 사건과 일은 결과를 통해 원인을 찾아가는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일 쏟아지는 사건·사고를 수습하는 것도 결과서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이고, 질병 치료도 결과부터 시작하는 ‘결과→원인’ 프레임의 과정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내일을 추리하는 건 예측에 불과해 불안하고, 어제를 기점으로 오늘을 이해하는 건 어제가 현실이 아니기에 역시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오늘을 기점으로 어제를 추적하는 건 이미 이뤄진 상황을 현재 하는 것이기에 가장 정확하게 밝힐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대(시간) 순으로 만들어진 역사나 사건이나 일을 ‘원인→결과’ 순의 도식으로만 볼 게 아니라, 그 역순(결과→원인)으로도 볼 줄 알아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원인에 의해 형성되는 결과를 찾는 것보다 결과를 놓고 “왜 그랬을까?” 고민하면서 역으로 원인을 찾아가는 방식이 우리가 어떤 사실을 이해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원인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또 원인이 되어 새로운 결과를 낳는 사이클이 계속 반복되면서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계속 뒤바뀌는 상황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이제는 ‘원인→결과’ 프레임으로만 보지 말고, ‘결과→원인’ 프레임으로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창작을 하거나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원인→결과’ 프레임에 익숙하지만, 작품을 감상하거나 물건을 소비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결과→원인’ 프레임에 익숙하다.

특히 정치인의 경우, 공천 배제나 제명 등 좋지 않은 결과를 통보받을 때 자신이 생각하는 원인만 주장하며 결과가 잘못됐다고 말할 게 아니라, 결과가 왜 일어났는지를 생각하면서 그 원인을 찾고 반성해야 앞으로 우리 국민이 그 정치인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이다.

우리 국가나 사회도 시대 순의 프레임에 의해 잘못되거나 놓칠 수 있는 진실을 바로잡거나 찾기 위해서라도 시대 역순의 프레임도 가동시켜봐야 한다.

정치권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부가 전 정부에 대해 자기 진영의 관점서 바라보는 유시민 작가식의 ‘거꾸로 읽는 정치사’만 쓸 게 아니라,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나?” 하는 시대 역순의 프레임으로 접근한 ‘거꾸로 읽는 정치사’도 써봐야 우리 정치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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