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인문학> 스코틀랜드 ‘목동 골프’의 시작

2023.05.02 09:53:39 호수 1425호

매일같이 양떼들이 지나가면서 밟고 뜯어먹었던 터라 초원은 아예 풀이 다져져서 매끄러운 들판 같았다. 토끼가 다니면서 다져놓은 자리보다는 덜했지, 풀들이 가지런히 베어져 있는 잔디밭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멀리 동쪽 나라에서 온 무역선의 상인들은 이 초원의 잔디밭을 페어웨이라고도 불렀다. 부드러운 푸른 들판은 잠시 갈대밭을 지나다가 끈질긴 뿌리를 가지고 낮게 땅바닥에 깔린 이끼 같은 잡초들을 지나 모래사장으로 이어졌고 이내 바닷가로 그 끝이 마무리됐다.

단순한 시작

헨리는 반사적으로 자신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거꾸로 잡았다. 양들을 모는 기다란 나무 막대기였다. 주변에서 때리기 편한 둥근 돌도 찾았다. 바닷가 지척에 널 부러진 둥근 자갈을 찾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이내 막대기로 양들이 다져놓은 들판을 향해 그 돌을 후려쳤다. 30m 정도밖에 날라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적게 나가 오기가 발동했다.

헨리는 막대기로 다시 돌을 때렸다. 그러기를 10여 차례. 처음 시작했던 언덕 위까지는 300야드 이상의 거리가 되는 듯했다. 다시 돌아가는 게 더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차례 쳐댄 돌멩이는 지역에서 서식하던 들토끼들이 다져놓은 편편한 잔디 위에 도달했다.

당시 들토끼들이 다져놓은 편편한 잔디는 스코틀랜드에서 그린으로 불렀다. 이제 자갈돌과 헨리는 양들이 놀던 페어웨이를 지나 토끼의 영역으로 다가간 것이었다. 그린 한복판에는 조금 전 토끼가 숨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은 예나 지금이나 홀로 불렸다. 헨리는 토끼 구멍 속에다 그 돌을 집어넣을 요량이었다. 돌멩이를 십여 차례 때리고 온 행위에 목표가 생긴 것이었다. 뭔가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양몰이 소년들의 호기심
구멍에 돌 넣기에서 출발

할아버지로부터 배웠던 집 마당에서의 공 때리기 놀이 하고는 뭔가 달랐다. 헨리도 그 놀이를 가끔 했지만 상대방이 있어야 했고, 장소도 비좁아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세인트앤드루스 마을의 바닷가에도 비슷한 놀이가 있었음을 헨리는 알고 있었다. 무역선을 타고 온 상인들은 정박을 하면서 모래사장에서 자갈 때리기 놀이를 하곤 했다.

상인들은 모래를 쌓아 올려 그 위에다 둥근 자갈을 올려놓고 일정한 금 안에서 때려 막대기를 맞추는 놀이를 했다. 겨울이면 특히 세인트앤드루스 바닷가의 이끼가 낀 빙판 위에서도 그들은 막대기를 얼음 위에 세워놓고 삼삼오오 모여서 그런 놀이를 했다.

네덜란드 상인과는 다르게 스코틀랜드의 목동끼리도 바닷가에서 이따금씩 모래판의 자갈을 후려치는 놀이는 해오던 터였다. 그것은 한 번씩 때리고는 떨어진 거리를 재서 승부를 가리는 단순한 놀이에 불과했다. 상인들과 목동들의 놀이는 같은 바닷가였지만 상인들은 막대기를 맞췄고 목동들은 나간 거리를 쟀다.

오늘 헨리가 초원서 했던 동작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둔덕이 있는 언덕 위에서 자갈을 때린 방향은 아래쪽 양들이 노는 초원, 즉 페어웨이였다. 편편한 페어웨이를 향해 돌을 날렸고 그린이 있었으며 토끼 홀이라는 집어넣을 목표물이 있었다. 헨리는 무료하게 풀피리만 불며 보내던 일상과는 달리, 뭔가 흥미거리를 찾은 것 같았다.

재차 해보았다. 하면 할수록 뭉툭한 돌이 생각대로 쉽게 맞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처럼 후려친 돌이 앞에 펼쳐진 페어웨이로만 날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바닷가 쪽의 갈대숲으로 들어가는가 하면 덤불로도 들어가곤 했다.

다시 시도해도 단번에 돌멩이가 페어웨이로 날아가지만은 않았다. 겨우 10여 차례 만에 그린 근처에 공이 도달했고 그것도 서너 번 만에 볼을 굴려야 겨우 토끼 굴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작은 욕심서 나온 ‘룰’
골프로 발전한 ‘고프’

헨리는 휘두르는 수를 줄이면서 구멍에 집어넣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재미를 붙인 그는 치는 타수를 줄일 수 있기를 바라며 막대기로 돌을 날려 버리는 놀이로 해가 지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한적한 봄날의 오후는 새로운 놀이를 고안해내는 것으로 하루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다음 날 헨리는 초원의 또래 아이들에게 흥분된 억양으로 기막힌 놀이를 찾아냈노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헨리의 주변에 모여든 목동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세웠다. 모두들 막대기와 되도록이면 둥근 자갈을 구하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목동들은 어제 헨리가 최초의 샷을 날렸던 그 언덕에 모였다.

한 사람씩 페어웨이를 향해 자갈을 날리기 시작했다. 헨리는 어제 하루 종일 연습을 했던 기량으로 능숙하게 휘둘러 댔다. 헨리의 절친인 찰스는 처음 휘두르는 통에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모두들 깔깔거리며 웃어댔다.

위대한 태동

그들이 몰던 양들은 여기저기 흩어져서 제멋대로 풀을 뜯고들 있었다. 다른 아이들도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에딘버러의 목동들은 이제 심심하지 않아도 됐다.

양을 치며 따분하기는커녕, 어서 빨리 아침이 밝아 양들을 데리고 초원으로 나가고 싶어 안달들이 났다. 그렇게 모인 목동들은 양들은 내버려두고 놀이에만 열중하곤 했다. 고프(Goeff, 14세기 골프에 대한 영국의 어원)는 스코틀랜드의 초원서 그렇게 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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