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가장 한국적인 계급 지도 유령들의 패자부활전

2022.11.14 12:50:44 호수 1401호

장석준 , 김민섭 / 갈라파고스 / 1만6500원

 

지식과 노력이 특출나면 계층·계급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개천의 용’이 될 수 있다는 능력주의의 위선과 실상은 이미 폭로되었다. ‘금수저’들의 세습 질서를 깨고 ‘공정’을 실현하는 수단인 듯 보였던 능력주의는 어느덧 중산층 세습화 현상을 지탱해주는 새로운 세습 통로가 된 상황이다. 



이렇듯 능력주의가 본래 의도에서 벗어난 지 오래지만,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면 열패감을 느낀다고 낙인찍힌다. “네가 불행한 이유는 공부를 하지 않은 탓”이며 “사다리 꼭대기와 사다리 아래가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야말로 불공정하다”는 흔한 말들 속에서 능력주의 세계관을 벗어나는 게 가능할까?

저자 장석준은 능력주의 담론의 미도착지, ‘계급’에 주목해 능력주의의 현실을 파헤친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팽창한 고등교육 과정에서 기존 자본가와 노동자 간 구별되는, 지적 노동을 수행하는 집단인 ‘지식 중간계급’이 탄생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문직-관리자를 꿈꾸는 이들 계급은 생산 사슬이 해외로 옮겨가고 관리 조직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관리자본주의로의 경향성과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는 것이 그 어떤 생산 활동보다 큰 수익을 가져오는 신자유주의 흐름 아래서 급성장하며 능력주의의 핵심 담지자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저자는 능력주의로부터 직접 이익을 얻는 이들 핵심 담지자 5~10퍼센트만으로는 능력주의가 이토록 강력함 힘을 얻을 수 없었음을 지적하며 능력주의의 성공은 경쟁에서 주로 낙오하고 불평등을 세습하는 노동계급과 지식 중간계급 하위 계층의 열띤 지지로부터 비롯된다는 아이러니를 짚는다. 동시에 이들의 계급 배반적 선택이 ‘평등’의 기치 아래 확대된 공교육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도 환기한다. 

능력주의가 갓 부상하던 시기만 해도 전통적 장인 노동의 잔재가 남아 있는 작업을 수행하던 노동계급은 자본가와 관리자가 제시하는 ‘똑똑함’이라는 기준에 주눅 들지 않았을뿐더러 사회(민주)주의, 아나키즘과 같은 여러 좌파 이념을 발전시키며 자신들을 자본주의 너머의 세상을 만드는 주역으로 인식했으나, 공교육 시스템 속에서 모두가 ‘지능’으로 줄 세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풍부한 문화자본을 지닌 계층과 경쟁하며 패배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노동계급은 이제 그들만이 느꼈던 자부심 대신 패배감만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계급과 지식 중간계급의 하위 계층이 자신을 실패자로 받아들이며 능력주의에 항의하지 못한 채 그 세계관에 침묵과 동의, 미련만 보여줌으로써 능력주의가 견제 세력 없는 강력한 헤게모니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역설한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능력주의 사회의 모순에서 벗어나는 대안으로 그간 입시 경쟁과 대학 서열 체제를 흔드는 등의 교육 개혁안들이 줄곧 논의되어 왔다. 이 책은 그 방향성에 공감하면서도 능력주의가 계급 문제인 이상, 계급적 해법을 고려하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특권 확보나 세습 통로를 만들려는 집단은 끊임없이 재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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