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구 슈퍼스타, 김연경에 대해 알아야 할 다섯 가지

2021.06.08 09:03:39 호수 1326호

[JSA뉴스] 2005년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대표팀에 데뷔한 김연경은 이후 꾸준히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도쿄올림픽에서도 주장으로서 대표팀을 이끌 김연경에 대해 알아야 할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김연경은 배구선수를 하던 큰 언니를 따라 배구를 시작했다. 6살 많은 언니를 따라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에 입문했다. 그러나 키가 140㎝ 정도로, 배구를 하던 다른 선수들보다 작았다. 중학교 입학 당시에도 150㎝가 되지 않아서 작은 선수들이 많은 세터 포지션에서 플레이했음에도 후보 선수였다. 

도약

이후로도 세터나 리베로 포지션을 담당하면서 배구를 계속 했으나, 중학교 졸업 당시에도 키는 170㎝ 정도였다. 

김연경은 이때 배구를 그만두려고 했으나, 부모님과 은사님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171㎝에 도달한 김연경은 주전 공격수였던 선배의 부상으로 공격수로 출전하며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키도 고등학교 3년 동안 갑자기 자랐다.


드래프트 당시 공식 프로필이 186㎝, 후에는 맨발로 192㎝가 나올 정도까지 성장한 김연경은 키가 작았던 어린 시절에 열심히 해둔 수비와 기본기 훈련 덕분에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출중한 선수가 된다. 

김연경은 고교 시절 급성장의 비결로 “아무거나 잘 챙겨 먹었다. 콩나물을 먹었다고 해야 하나…”라고 말했지만, 외할아버지가 185㎝, 친할아버지가 180㎝, 어머니가 171㎝, 아버지가 175㎝, 두 언니가 180㎝, 176㎝로 사실 가족들 모두가 장신이다.

작은 키로 후보 선수였던 어린 시절
한국 배구 책임지는 차세대 거포로

키가 급성장하며 출중한 기본기를 갖춘 만능선수가 된 김연경은 고3 때인 2005년 U-18 세계선수권과 아시아선수권의 활약을 바탕으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돼 2005 FIVB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 참가했다.

처음 출전한 성인 국제무대에서 김연경은 전체 득점 3위, 공격 11위, 서브 11위, 디그 17위 등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다. 고등학생 선수가 대표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자 국내외 배구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최대의 화제로 떠올랐다.

2005년 11월 황현주 대표팀 감독은 “앞으로 10년은 한국 배구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김연경이 드래프트에 나오자 팀들 사이에서는 김연경을 얻기 위해 꼴찌 경쟁을 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흥국생명이 전체 1순위로 김연경을 선발했고, 김연경은 2005-2006시즌부터 4시즌 동안 흥국생명에서 3번의 정규리그 우승, 3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 정규리그 MVP 3회, 챔피언결정전 MVP 3회, 신인상 1회, 공격상 3회, 서브상 2회, 득점상 1회 등을 기록하며 리그를 평정했다. 

2009시즌 종료 후 김연경은 흥국생명의 자매팀인 일본의 JT 마블러스로 임대 이적해 전년도 최하위였던 마블러스를 25연승과 정규리그 1위로 이끌며 파이널 준우승을 견인한다. 이듬해인 2010-2011시즌에는 팀을 정규리그 1위에 다시 올려놓은 동시에 창단 첫 파이널 우승까지 이끄는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김연경은 MVP격인 최고수훈선수상과 베스트 6에 뽑히며 일본에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로 활약한 김연경은 이후 세계무대로 시선을 돌려 2011년 당시 세계 최고 리그로 여겨지던 터키의 페네르바흐체 SK로 이적한다. 아시아의 최고 선수였던 김연경이었지만 당시에는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컸다.


하지만 첫 시즌에 CEV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그런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켰다. 또 대회 MVP와 득점상을 동시에 받으며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선수가 됐고, 이후 페네르바흐체에서 뛴 6년간 7개의 우승컵과 10개의 개인상을 받으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특히 2014-2015시즌에는 리그와 컵대회 MVP를 동시에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이후 중국 상하이와 터키 엑자시바시에서도 정규리그 우승과 파이널 준우승을 연이어 견인하며 활약했다. 

김연경은 뛰어난 피지컬과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펼치는 올라운드 플레이가 강점인 선수다. 전성기에는 공격, 리시브, 디그, 블로킹, 서브 등 배구의 모든 영역에서 최고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거기에 강한 승부욕과 리더십까지 갖춰 배구 외적인 영역에서도 최고라는 찬사다.

2005년 월드그랜드챔피언스컵에서 성인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김연경은 그 이후 꾸준히 대표팀의 에이스였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꼽는다면 바로 2012년 런던올림픽이다. 김연경은 유일하게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이끌었다.

비록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하며 메달을 획득하진 못했지만, 국제배구연맹이 선정한 MVP로 뽑힐 만큼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며 김연경은 2위보다 40점 많은 207득점으로 득점상도 받았다. 

만 17세에 처음 성인팀에 합류한 그는 2014년부터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었다. 그동안 큰 대회만 해도 2번의 올림픽(2012 런던, 2016 리우데자네이루)과 4번의 아시안 게임(2006 도하, 2010 광저우,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을 치렀고, 인천 대회 금메달, 자카르타 은메달, 광저우에서 동메달로 총 3개의 아시안게임 메달을 획득했다. 

아시아 넘어 세계로 
4위 팀서 대회 MVP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2016년에는 초대 FIVB 선수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정됐다. 초대 FIVB 선수위원회는 9개국에서 뽑힌 배구와 비치발리볼선수 10명으로 구성됐고, 이 중 현역 선수는 김연경을 포함해 4명에 불과했다.

2009년 일본에 진출한 후 가정형편이 어려운 배구 꿈나무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일본 임대 기간이 종료되던 2011년까지 총 3기가 진행돼 총 20명의 선수들이 혜택을 받았다. 이 중 7명은 프로에 데뷔했으며, 그중에서도 강소휘와 박정아는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유소년 배구계에 기부해온 김연경은 최근에도 도쿄올림픽 예선 위로금으로 전국 91개의 중고등학교 배구팀에 훈련용품을 지원했다. 

유튜브를 운영하고 대중매체에도 다수 출현하는 등 배구를 알리기 위한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2019년 8월 시작한 유튜브는 현재 구독자 59만명에 이른다. 특히 국내 프로배구로 복귀했던 2020년에는 시즌을 앞두고 <집사부일체> <나 혼자 산다> 등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배구 알리기에 앞장섰다. 

전진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할 때도 배구선수로서 저에게 가장 큰 게 무엇일까 생각하면 바로 올림픽이었다. 지금도 가장 원하는 것은 올림픽 메달이다.”

도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일본, 세르비아, 브라질, 케냐, 도미니카공화국과 A조에 속해 있다. 배구는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7월24일부터 8월8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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