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잔상의 깊이’ 허우중

2020.11.20 11:39:56 호수 1298호

흰 여백은 배경이 아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허우중 작가의 개인전 ‘잔상의 깊이’ 전이 송은 아트큐브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 허우중은 지난 작업들과 달리 실험적인 시도를 내포한 신작을 선보인다. 광막한 불안과 공허를 비췄던 지난 모습에서 나아가 평면적인 회화 작업에 다차원적인 사고를 구현하는 깊은 작업세계를 구축했다.
 

▲ 가장 먼 곳의 기척


송은 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송은 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이다. 2002년 1월 개관 이래 매년 공모를 통해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기획을 바탕으로 공간과 도록 제작을 후원하고 있다. 

선이 만든 면

허우중 작가는 2020~2021 송은 아트큐브 전시지원 공모 프로그램의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됐다. 그의 개인전 ‘잔상의 깊이’ 전시가 오는 12월21일까지 열린다. 허우중은 이번 전시에서 이전과는 다른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는 연필로 그린 얇은 선들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유화를 활용해 새로운 도형의 공간들을 고유한 작업방식으로 나타낸다. 물감을 한 겹 입힌 캔버스 위에 계획적으로 선을 긋고 다른 색의 물감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메워가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통해 존재하지 않았던 면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이전에는 주로 흑백으로 작품을 연출해 검정색의 배경을 칠하고 연필 선만 남겨둔 채 흰 물감으로 나머지 부분을 채웠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는 원색을 더해 주체와 배경의 공간을 더욱 극명하게 나타내고,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들에 일종의 존재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관람객들은 벽면에 걸린 파란 회화와 만날 수 있다. 관람객들은 눈앞에 놓인 캔버스의 푸른 공간을 마주하는 순간 가장 먼저 이목을 끄는 존재를 주체로 인식하고 그 후에 보이는 흰 공간을 배경이라 인지하게 될 것이다.

비로소 존재성을 갖게 된 대상들에 관람객의 시선으로 또 다른 의미가 부여된다. 

허우중은 평소 창작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이번에도 역시 파란색으로 배경을 먼저 구성한 뒤 연필의 흔적을 남겨두고 흰 유화로 주체의 공간을 부각했다.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흰 여백의 공간은 배경’이라는 관념을 전복시킨 것이다.

실험적인 시도 담긴 신작
이전보다 깊은 작품 세계

그는 신작을 통해 배경과 주체의 차이가 무엇인지 관람객들에게 묻고 있다. 작품을 관람하는 개개인의 해석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창작해낸 공간 속 각기 다른 도형들은 관람객들로 인해 새로운 대상으로 재탄생한다. 
 

▲ 그늘 쌓기

허우중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존재에 대한 고뇌를 표출하고 있다. 그가 그린 도형은 일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자연스럽고 온전한 어떤 대상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 각기 다른 단층의 도형들이 중첩돼 서로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겹쳐진 대상들이 어떤 모양을 띠고 있다는 판단은 추측에 불과한 셈이다. 

눈으로 인식 가능하지만 그 존재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면 판별이 가능하더라도 인식한 존재가 실제 그 대상이라는 사실 관계가 성립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허우중은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특정 대상을 바라보고 쉽게 결론짓는 우리의 인식을 비집고 들어와 가시적 존재에 대해 묻고 있다. 

볼 수 있는 단면에 의존해 비가시적인 부분까지 추측해 완전한 모양의 존재로 정의 내린다면 과연 그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허우중은 이를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작품 속에 어떤 대상이 가려져 있는지, 육안으로 구별한 모양이 존재하고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전복된 통념

송은 아트큐브 관계자는 “현대인의 삶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불안과 공허가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사회는 이것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것과 같이 어떠한 대상의 존재가 불분명할지라도 인간은 그 대상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품고 살아간다”며 “존재의 근본적인 불확실성에 대해 연구하는 허우중의 최근 작품은 부가적인 요소를 최소화하고 움직임과 내러티브는 절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철저하게 절제된 캔버스 속 단순화된 선과 곡선만으로 연출한 허우중만의 컴포지션에서 주체와 배경은 명확하게 나뉘는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허우중은 캔버스를 채우고 있는 대상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불확실하다는 점을 파고들며 인간의 관념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허우중은?]

▲학력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포스트 디플롬(2013~2014)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국가고등조형예술학위(2008~2013)

▲개인전
‘선, 곡선 그리고 다채로운 움직임들’ 갤러리바톤(2019)
‘토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2018)
‘정신적 태도’ 갤러리조선(2018)
‘소셜 픽션’ 경기도미술관 프로젝트갤러리(2017)
‘밤의 독백’ 갤러리 파리 오리종(2016)
‘모노폴리’ 주프랑스 한국문화원(2015)
‘미장센’ 갤러리 유럽(2014)

▲수상
정헌메세나 청년작가상(2014)
프리 아트스쿨 뎃셍부분 3등(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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