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황교안과 보수

2019.11.25 10:50:52 호수 1246호

필자가 정치판에 머물던 당시에 일이다. 김종필 전 총리께서 술자리를 마련했는데, 술이 여러 순배 돌고 대화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에 김 전 총리가 운을 뗐다. “보수는 보수만 하는 게 아니라 보수도 해야 한다”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신 술의 영향 탓도 있었지만 의아해했다. 그를 감지한 김 전 총리가 부연설명을 곁들였다. 결국 김 전 총리의 이야기는 보수는 보수(保守)는 물론 보수(補修)를 병행해야 참다운 보수라는 의미였다. 

보수(保守)는 보전해 지키는 일을, 보수(補修)는 낡은 것을 수선해 새롭게 고치는 일을 의미하는 바, 진정한 의미의 보수는 지켜야 할 부분은 반드시 지키되 잘못된 일은 개혁 세력보다 더욱 강하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총리의 변에 이끌려서인지 몰라도 필자의 경우도 그의 이론과 맥을 함께하고 있다. 아울러 필자가 바라보는 보수는 방법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어떤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욕심을 배제하고 정도로 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에 반해 소위 진보는 목적 달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그런 이유로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수단과 방법은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보수는 느리고 고리타분하다는 감을 주고 진보는 빠르지만 서투르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언뜻 살피면 보수와 진보는 별개의 사안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광의의 개념으로 바라보면 둘 다 목적 달성을 지상 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보수나 진보는 매한가지다. 다만 과정만 차이를 보일 뿐이다.


이제 이를 염두에 두고 최근 보수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최근 황 대표는 “내년 총선 일정을 감안할 때 통합 논의를 늦출 수 없다”며 “당내 통합 논의기구를 설치하고 자유우파의 뜻있는 분들과 구체적인 통합 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한다”고 바른미래당과 우리공화당, 시민단체 등 범보수권을 향해 통합 협의기구 구성을 공식 제안했다.

말인즉 황 대표는 내년에 실시되는 총선 승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보수가 뭉쳐야 한다는 요지다. 작금에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들의 모습을 살피면 한편 그럴싸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황 대표는 크게 실기한 부분, 즉 전혀 보수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황 대표는 보수대통합을 내년에 실시되는 총선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삼았는데 과연 그게 진정한 의미의 보수가 행할 일이냐의 문제다.

황 대표처럼 근시안적으로 바라본다면 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보수가 원하는 일이 단지 총선 승리가 아닌 권력쟁취라는 측면서 바라본다면, 황 대표의 안은 그저 욕심에 사로잡힌 꼼수에 불과할 뿐이다.

마치 그를 반영하듯 바른미래당 유승민 전 대표는 황 대표의 제안에 대해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아가자’ ‘낡은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자’는 보수 통합 원칙을 한국당이 받아들일 진정한 의지가 있다면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답했다.

정치에 관한한 황 대표보다 경륜이 월등한 유 의원이 제시한 보수 통합의 3개 원칙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전에 <일요시사>에 게재했던 ‘황교안식 정치’서 밝혔듯이 정치 입문 이후 정도를 외면하고 지속적으로 헤게모니 장악에 혈안이 되어 꼼수만을 일삼는 그에게 이제 유 의원도 진절머리 난다는 의미가 아닐까.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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