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금융위기가 부른 한미골프계 ‘구조조정’

2008.12.23 11:56:26 호수 0호

“내년에는 어쩌나?”

세계적인 불황이 여지없이 지구촌 골프계를 강타하고 있다. 경기전망 불투명으로 인한 내년 시즌 기업들의 대회 후원 포기와 선수들과의 계약문제 등이 한데 얽혀 한 치 앞을 진단할 수 없는 안개형국에 휩싸여 있다. 한해를 정리하면서 기업들의 2009년 ‘대회 후원’과 ‘선수 후원’ 부분을 진단해 본다.
 

올 연말 들어 한국을 포함 세계 골프 투어가 경기 침체로 내년 후원자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꿈의 무대인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가 주요 기업의 대회 스폰서 포기 선언으로 2009년 시즌 운영에 비상이 걸렸는가 하면 내년 국내 투어인 KLPGA투어 역시 불황 불똥이 튀면서 후원자 유치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AP통신은 “2001년부터 시즌 마지막 대회로 ADT챔피언십을 후원하던 ADT가 올해를 끝으로 더는 대회 후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우승자에게 100만 달러를 안겨주는 대회로 올 시즌 신지애가 우승했던 ADT챔피언십은 LPGA투어 마지막 대회로 치러졌던 의미 있는 대회다. 이에 따라 투어 사무국은 갑작스럽게 2009년 후원자를 잡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막막한 상태다.
ADT뿐만이 아니다. 이미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이 2009년부터는 타이틀 스폰서 없이 대회가 열리게 됐고 연간 2개 대회를 후원하던 세이프웨이가 1개 대회에만 후원하기로 해 LPGA 사무국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LPGA가 발표한 2009년도 일정표를 보면 현 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LPGA 사무국은 최근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말미암아 타이틀스폰서가 줄어들면서 2009년 시즌에는 2008년보다 대회 규모가 축소돼 총상금 5500만 달러를 걸고 31개의 정규 대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는 올 시즌 6025만 달러를 걸고 34개의 대회를 치렀던 것에 비하면 상금이나 대회 수가 다소 줄어든 수치다. 2009년 시즌 개막전은 내년 2월13일 하와이에서 개막하는 SBS오픈으로 치러지며 내년 11월23일 막을 내리는 스탠퍼드 파이낸셜 투어챔피언십까지 9개월간의 대장정이 이어진다.
내년 시즌 LPGA 투어 대회는 미국을 비롯해 10개 나라에서 치러지며 1개 대회 평균 상금액은 2008년 시즌(177만 달러)보다 소폭 줄어든 176만 달러 수준이다. 총상금 200만 달러가 넘는 대회는 2008년 13개에서 11개로 줄어들었다. 필즈오픈과 세이프웨이 인터내셔널, 긴트리뷰트, 셈그룹챔피언십, ADT챔피언십 등 5개 대회가 투어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됐다.

국내 투어도 마찬가지 분위기다. 매년 말 상징적으로 열리는 한ㆍ일 여자골프대회가 후원자 유치에 애를 먹고 최근에야 가까스로 성사됐고, 4~5개 투어를 꾸준히 개최했던 국민은행이나 MBC 역시 사실상 비상 경영에 들어가면서 투어 개수를 줄이자는 분위기다.
LPGA ADT챔피언십처럼 국내에서 마지막 대회로 치러지는 ADT캡스 대회 역시 내년 상황은 유동적이다. 대회 주최사인 ADT캡스가 미국 ADT 한국 지사인 데다 마케팅을 위해 함께 ‘마지막’을 고집했던 미국 대회가 없어진 이상 경기가 힘들어진 상황에서 국내 대회 역시 굳이 고집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동안 골프선수 후원을 지속해오던 KTF는 스포츠단 운영에서 골프를 제외하기로 했다. 내년부터는 LPGA 투어에서 활약 중인 김미현과 이미나의 후원을 하지 않고 대신 농구단과 e-스포츠단 운영에 집중할 계획이다.
특히 올해 사상 최대의 대회를 유지한 국내 프로골프투어는 내년 시즌에 대한 우려가 조금씩 불거지고 있다. 일부 기업들이 회사 사정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내년도 대회 유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회 후원 美 LPGA, KLPGA 스폰서 포기로 골머리 앓아
‘투어 개수 줄이자’ 한국도 최소한 2~3개 대회 축소 불가피
선수후원, 한국의 골프 후원계약 ‘거품 빠지고 있다’
“이제는 ‘이름값’이 아닌 ‘현재진행형’ 선수가 최고”


KLPGA 측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올해 27개 대회를 예정대로 모두 치를 수 있게 됐지만 경기가 점점 위축되면서 스폰서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KLPGA 투어는 최근 몇 년간 대회 수가 늘어났지만 내년에는 현상 유지 정도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는 세계적 금융위기로 열기가 식었지만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소위 ‘이름 있는’ 프로골퍼들은 부산했다. 이 시기엔 많은 프로골퍼가 기존 후원계약을 갱신하거나 신규, 해지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선수는 재정 부담에서 벗어나고 기업은 선수를 활용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골프 후원계약은 세계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한국골프의 후원관계는 매우 독특하다. 대부분의 외국 골퍼들은 후원사의 협찬금을 주 수입원으로 한다. 이에 반해 한국 골퍼들은 후원사로부터 계약금과 연봉,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등 수입원이 다양하다.
후원사 차이도 크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주로 자동차, 명품, 금융, 스포츠 및 골프용품사 등이 후원에 나선다. 이들은 후원만 할 뿐 별도의 활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가전제품 유통, 석유, 제2금융권, 홈쇼핑 심지어는 안과병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에서 골프 후원에 나선다.
하지만 연말 들어 불어 닥친 세계적인 금융한파로 한국 역시도 찬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래서 올 시즌 재계약 시장은 어둡기 그지없다. 따라서 후원자 기업도 실리를 최우선으로 해 재계약에 임하고 있다. 그만큼 이제는 ‘이름값’보다 ‘현재진행형’ 선수를 선호한다.

국산골프클럽 업체인 E2와 스폰서십 계약을 한 박세리(31)는 지난해 12월26일 CJ와 결별했다. 양측은 이날 계약 연장 협상이 결렬됐다는 사실을 밝히며 5년 동안 이어진 스폰서십 관계를 정리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1997년 삼성물산과 10년간 30억원을 받는 파격적인 후원 계약을 맺은 데 이어 2002년에는 CJ와 ‘연봉 20억 원+성적에 따른 인센티브 지급’이라는 매머드 계약을 체결한 박세리는 무적선수가 됐고 CJ는 간판선수를 잃었다. 양측의 생각은 처음부터 어긋났다.
CJ와 재계약 협상을 앞두고 박세리 측은 “명예의 전당 입성과 경기 외적인 기여도를 인정해 이전과 같은 조건으로 계약을 이어가자”고 요구했다. 그러나 CJ는 “2년 이상 부진해 몸값을 하지 못했다”며 단기계약과 연봉삭감을 주장하며 연봉 10억원에 인센티브를 더하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CJ의 이런 수정안에 대해 박세리 측은 “최소한의 자존심은 세워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결국 양측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헤어졌다.

5년간 6승은 뛰어난 성적이지만 연간 30억원을 받는 선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최근 올 시즌을 끝으로 명예로운 은퇴를 선언했던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의 핵심 후원자는 세계적인 골프업체 캘러웨이다.
캘러웨이는 소렌스탐에게 연간 100만 달러(약 9억3000만원) 수준의 후원을 하고 있다. 미 LPGA 투어 통산 69승과 메이저대회 10회 우승 경력의 소렌스탐의 몸값이 통산 24승과 메이저대회 5회 우승의 박세리의 3분의 1정도다.
소렌스탐이라고 자존심이 없겠는가. 자존심으로 프로스포츠 선수의 몸값을 책정하는 나라는 한국을 빼곤 거의 없다. 프로선수들의 몸값은 이전의 성적을 참고해 미래 기대치를 산정해 결정하는 게 기본이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슈퍼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의 말을 들어보자.

“‘이 선수가 이렇게 잘했다’며 설득하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과거의 성적을 기반으로 ‘앞으로 이 정도의 성적을 낼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하는 게 협상의 원칙이다. 구단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있는 베이브 루스를 찾는 게 아니라 당장 경기장에서 뛰고 던질 선수를 필요로 한다”라고 단언한다.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는 후원자의 업종도 다양해 졌다. 실례로 지난해 12월20일 김안과병원은 신인 프로골퍼 강경술(20·중앙대)과 계약금 3천만원에 1년간 전속 후원계약을 맺었다. 앞으로 강경술은 대회마다 김안과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나올 계획인데 병원 로고를 모자에 달고 필드에 등장하는 건 세계골프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한국의 후원사들은 후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속구단(골프단) 개념을 도입했다. 지난해 10월 경주 마우나오션CC에서 열린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에서 만난 LPGA 투어 관계자는 “하이마트가 한국 골프계의 ‘뉴욕 양키스’라고 들었다”라며 “개인 스포츠인 골프가 단체스포츠화한 건 아마도 한국이 처음일 것”이라며 놀라워했다.
골프단 도입은 2000년 3월 남녀 프로골퍼 9명과 주니어 골퍼 6명으로 출범한 이동수 골프단이 최초였다. 당시 이동수 골프단은 ‘골프=개인코치제’라는 기존 등식을 뒤엎고 야구나 축구단처럼 감독과 코치를 둬 소속선수를 지도하게 했다.
합숙훈련도 마다하지 않았다. 창단 초기 ‘굳이 골프단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뒷날 골프계는 이동수 골프단을 성공작으로 평가했다.
이후 하이마트, 빠제로, 김영주골프, 휠라코리아, 동아회원권, 캘러웨이 등 수많은 골프단이 이동수 골프단의 뒤를 이었다. 골프계 일부에서 “조만간 골프단끼리 선수 트레이드를 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골프단 규모는 비대해졌다.

이처럼 발전하는 골프 후원계약은 한때 과열 양상을 빚었다. 미 LPGA투어에서 처음 우승한 선수에게 후원사가 몰려 몸값이 껑충 뛰는가 하면 1년 반짝한 남자골퍼가 물심양면으로 보살펴 준 소속사와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골프단 옷으로 갈아입기도 했다.
이런 선수들은 대개 1년쯤 지나고서 거품이 빠져 제자리를 찾았지만 후원 기업들은 남 좋은 일만 한 꼴이 됐다. 올 시즌 골프 후원계약의 거품이 조금씩 빠지고 있다. 기업도 허황된 계산보다는 실리를 찾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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