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중학생 자살 파문

2012.04.23 16:59:10 호수 0호

"너 내 장례식장에 오면 죽일 거야! 꼭"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지난해 말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친구들의 폭력을 참다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정부는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대대적인 예방정책을 벌여오고 있지만 또 한 명의 어린 소년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특히 이번 죽음은 알고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어 더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살에 대한 징후를 몇 차례 보여온 것. 가해학생에 대한 혐의는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피해학생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경북 영주의 한 중학교에 다니고 있던 이모(14)군은 지난 16일 오전 7시58분께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하지만 1분 뒤 화장실을 가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고 8시8분경 다시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20층으로 올라갔다. 1시간20여 분을 고민하던 이군은 결국 20층 창문에 유서를 남기고 9시30분경 투신자살했다.



가해학생 조폭 흉내

이군은 8시12분, 같은 반 권모군 등 3명에게 "나 학교 좀 늦는다고 말해줘", 8시54분에 전모(14)군에게 "너 내 장례식장에 오면 죽일거야 꼭"이라는 문자를 전송했다.

창문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동급생이 괴롭힌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유서에 따르면 이군은 투신하기 하루 전인 지난 15일 유서를 작성했다. 이군의 유서에서는 "내가 죽으려는 이유는 학교폭력 때문이다. 나는 왕따를 당하지 않는다. 친구도 있다. 그런데 내가 죽으려는 이유는 우리 반에 있는 XXX이란 놈 때문이다"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그 자식은 게이다. 자꾸 나를 안으려고 한다. 최근에는 자신이 만든 무슨 단(어른들은 폭력서클이라 부른다)에 가입하라고 했다. 일단 (가입)한다고 하니 내가 할 일을 말했다. 수업시간을 제외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주말에는 자신과 함께 다녀야 한다고 말을 했다. 나는 탈퇴하고 싶었지만 그놈은 탈퇴하면 더 심하게 괴롭힌다고 했다"면서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피해학생 이군이 가해학생으로 지목한 전군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3월. 이후 1년 이상 학교폭력이 지속됐지만 이군이 다녔던 학교 측은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군은 지난해 5월 학교 심리검사에서 '자살 고위험군' 판정을 받았다. 이군은 심리검사 두달 뒤인 지난해 7월 위(Wee)센터에서 심층상담을 받았고 위센터는 이군과 이군의 부모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이군이 받은 치료는 지난해 11월 위센터에서 한 차례 정신과 치료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역시 위센터에서 여덟 차례 원예활동 치료를 받은 것이 전부.

이군처럼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 학생들은 한 명의 전담 상담사가 계속 심리 치료와 특별관리를 해야 하지만 이군이 살던 영주시의 위센터에는 상담사 6명만이 초·중생 1만22명을 담당하고 있어 인력 부족으로 심층적인 면담이 불가능했다.

1년 넘게 집단 괴롭힘…학교 측 상황 파악 못 해
폭력서클 강제가입 후 "탈퇴하면 죽는다" 협박

지난 3월 중순에는 이군의 담임교사가 반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폭력·가정환경 면담을 진행했지만 이군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학교 측은 "이군의 심리상태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이군이 상담에서도 말을 안 하니까 그런 괴롭힘이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고 밝혔다.

사건이 발생하기 3일 전인 지난 13일에는 영주경찰서 주관으로 2학년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방지교육도 실시했다. 이군은 이날 학교폭력 예방 서명운동에 동참해 '자필서명'을 했지만 이군을 괴롭힌 전군은 정작 이 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영주경찰서는 지난 18일 가해학생 전군이 숨진 이군을 괴롭힌 것은 물론 다른 학생들까지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괴롭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군의 유서에서 언급된 폭력서클 '○○패밀리' 회원 A(14)군은 경찰 조사에서 "지난해 전군이 다른 학생들을 괴롭혀 돈을 빼앗고 특히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군을 자주 때렸다"며 "모여 놀 때마다 돈을 걷었는데 쓰고 남은 돈은 일방적으로 전군이 가져가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회원인 B(14)군도 "전군으로부터 20~30회에 걸쳐 수시로 주먹과 팔, 가슴, 다리 등을 폭행당했다"며 "전군의 강요로 모임에 가입했고 지정장소로 나오라거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전군이 지난달 미니홈피에 "앞자리가 ○○○(숨진 이군)인데 내가 뒤에서 괴롭힌다고 해야 되나 진심 XX 재미있음, ○○도 쪼개면서(웃으면서) 도와줌"이라고 글을 남긴 것을 확인했다.

죽음 부른 ○○패밀리

경찰 관계자는 "'평소 친한 친구들끼리 어울려 다니며 놀기 위해 모임을 만든 것이지 폭력이나 금품을 빼앗은 적은 없다'는 전군의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며 "학교폭력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경우 가정법원으로 송치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군은 지난 17일 오후 2시50분께 화장됐고 유골은 운구차량에 실려 학교를 돌며 작별인사를 한 후 인근 야산에 뿌려졌다. 학교 측은 전군 등 가해학생 2명에 대해 출석 정지 조치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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