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섹스의 기록’을 허락하는 이유

2011.12.23 16:40:00 호수 0호

둘만의 은밀한 플레이 “평범한 섹스는 지겹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봤어?” 요즘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 속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물음이다. 최근 인터넷을 들썩거리게 만들었던 방송인 A양의 섹스 동영상을 두고 하는 소리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자신이 본 영상에 대해 늘어놓는다. “어떤 옷을 입고 아니 벗고서 얼마나 풀린 눈을 하고 있었는지” “몸매 잘 빠졌더라, 촬영을 즐기고 있다” “나도 남편에게 저렇게 해줘야 하냐” 등등. 심지어 촬영하는 남자의 앵글 각도에 대해 심오하게 논하기도 한다. 남의 침실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주제도 없어보였다. 사건에 살을 붙여나갈 때 누군가 소리쳤다. “미쳤지. 그러니까 동영상을 왜 찍었냐고!” 그렇다. 둘의 속사정이야 어찌됐든 대체 왜 이 여성은 동영상을 찍는데 허락했을까?

“보기만 할 테니 한 번만 찍자고?”
“사랑하니까 문제 될 것 없다고?”


동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섹스를 기록하는 것은 비단 연예계에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대학생들이 모이는 카페에서조차 “남자친구의 지속적인 동영상 촬영 요구로 고민이다. 어떻게 해야 되나” “사진만 찍자고 해서 허락했더니 더 자극적인 것을 요구한다”라는 여대생의 글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평범한 섹스가 충분한 자극이 되지 않을 때, 지금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레 다음 단계를 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방법 중 하나로 동영상이나 사진을 택한다. 찍고 기록으로 남긴다는 행위 자체가 강렬한 흥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오빠만 믿어~

그러나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은 어둠의 세계를 헤매다 마주친 그 어떤 사진과 동영상에도, 함께 있던 여성들은 울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다지 억지로 하고 있다는 느낌도 없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여성들은 촬영 전 미리 촬영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촬영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들을 기꺼이 하는 것, 그게 바로 남녀상열지사의 묘미라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다.

성교육 연구소 관계자는 “기면 걷고 싶고 걸으면 날고 싶은 게 인간의 한없는 욕망이다 보니 어떤 자극을 취하다 보면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마련이다”라며 “남이 부르는 노래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불러야만 직성이 풀리는 민족이라 그런지 보기만 하는 포르노보다는 참여하는 포르노를 원하는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이어 “대부분의 여성들은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섹스를 기록하는 것을 꺼려하지만 가끔은 남성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두 가지 예를 들어 여성들이 섹스동영상 촬영을 허락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20대 초반 여성의 피해 사연을 들려줬다. 그녀는 자신의 섹스 동영상이 음란사이트에 서비스되고 있음을 전혀 몰랐다. 1년이 지나서야 알았다고 한다. 그것도 자신과 가깝게 지내는 오빠를 통해서 말이다. 그 오빠도 처음엔 몰랐다는 후문이다.

몇 번 보다가 그녀가 자신과 알고 지내는 그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 피해여성에 따르면 섹스동영상 촬영자는 1년 전 몇 번 만난 남성이다. 조건만남을 통해 만난 뒤 서너 번 만났다고 한다.

동영상 촬영은 사전에 알았다고 한다. 물론 그는 그녀에게 ‘보관용이라고 철저히 맹세’했고 그녀는 그 말을 믿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자신의 섹스 동영상 유포 여부를 몰랐을 때는 세상살이에 거리낌이 없었지만 이후엔 바깥에 다니기가 겁난다는 것이다. 누가 알아볼지 몰라서다. 반면 해당 남성은 그 동영상을 음란사이트에 넘기면서 주머니를 채웠다.

두 번째 이유는 ‘사랑해서 허락했다’이다. 헤어진 전 남자친구와 섹스동영상 촬영 경험이 있다는 20대 후반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한참 땀 흘리며 열중하다가 휴대폰 집어 들고 캠코더 설치하는 것을 허락하는 거? 따지고 보면 별거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고 실험정신을 드높이다 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어느 지점이 바로 섹스동영상 촬영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녀는 흥분해서 눈이 돌아가 있을 땐 그저 다 용서되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도 섹스를 더 다채롭게 즐기기 위한 테크닉의 하나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니까~

전문가들은 “과거에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와의 섹스기록을 남겼다가, 헤어진 뒤 동영상을 유포한 남성이 처벌받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피해여성이 2년 넘게 이 사실을 모르고 있어 씁쓸했다”며 “아무것도 당연시 되지 않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인데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사람 찾아 뿔뿔이 흩어진 자리에 ‘섹스의 기록’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리고 남겨진 텍스트가 다시 그들을 과거로 옭아맸다. 둘 사이에 존재했던 감정과 순간들이 쾌락이었는지 절절하고 애틋한 사랑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사람들 모두가 수군거리는 여자가 된 A양을 보면서,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 건 이렇게나 위험한 일인지 다시금 알게 됐다. 숨겨진 사연이야 어찌됐든 그 기록은 오롯이 둘만의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완전한 비밀이란 없었다.

그렇다면 섹스의 기록으로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일까? 답이야 다양하겠지만, 분명한건 세상의 모든 연애는 또 한 번 새로 시작할 때마다 리셋 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꼭 사고를 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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