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들의 정계복귀 법칙

2018.08.06 10:45:58 호수 1178호

‘잊혀지면 끝’ 빨라지는 시계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가 중단했던 ‘페이스북 정치’를 재개했다. 페이스북 정치 중단을 선언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아서다. 앞서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정치 일선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하면서도 정계복귀 가능성을 열어뒀다. 정계 거물들의 조급증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홍준표 전 대표는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그런 그가 지난달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의 자살은 잘못된 선택”이라며 “그러한 자살을 미화하는 잘못된 풍토도 이젠 고쳐져야 한다”고 뜬금없는 글을 남겼다.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왜 이러나

6·13지방선거가 끝난 후 홍 전 대표는 페이스북 정치를 비롯해 모든 정치활동을 장점 중단한다고 밝혔다. 지난 6월26일 페이스북에 “페이스북 정치는 지난주로 끝내고 앞으로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전했다. 

지난달 11일 미국으로 출국하는 와중에도 기자들 앞에서 “앞으로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페이스북에 쓸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던 바 있다.

그러나 홍 전 대표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본인이 한 말을 뒤집고 페이스북 정치를 재개했다. 지난달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냉전세력과 냉전에 대처하는 국가적인 전략을 구분하지 못하고 후자를 말하면 전자로 매도하는 좌파들과 일부 패션 우파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 현안에 대해 페이스북에 쓸 생각이 없다는 말을 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정치인이 본인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하는 일은 비단 어제오늘이 아니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해 7월12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제19대 대선과정서 불거진 ‘문재인 대통령 아들 문준용씨의 고용정보원 취업특혜의혹 제보’ 조작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었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8월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8·27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밝힌 지 불과 22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당내에서조차 “안 전 대표가 조급증에 걸린 것 같다”며 전당대회 출마를 만류했었다.

이는 정치선배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1992년 12월 제14대 대선서 패한 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시민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이후 영국으로 떠났다가 1995년 7월 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복귀 선언까지 무려 942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전 상임선대위원장은 2012년 9월16일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서 패하자 독일로 건너가 8개월간 체류했다. 그러다 2014년 7·30재보궐선거서 수원병 출마를 선언하며 정계복귀를 알렸다. 
 

무려 662일 만이다. 이때 낙선한 손 전 위원장은 돌연 전남 강진 만덕산의 토담집에 들어가 2년2개월여간 칩거생활을 이어갔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충분한 자기 세력이 존재하는지 여부다. 김 전 대통령은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과 동교동계라는 정치 세력이 뒤를 받치고 있었다. 손 전 위원장 역시 김 전 대통령만큼은 아니더라도 ‘손학규계’라는 든든한 우군이 지원했다. 

한때 손학규계는 막강한 조직력을 자랑하며 친노계, 정세균계와 함께 진보진영 3대 계파로 분류됐다.

열흘도 지나지 않아 ‘손바닥 뒤집듯’
인고의 시간 기다린 선배들과 정반대


반면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는 장기간의 휴식기를 보내기에는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홍 전 대표가 6·13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대표직을 내려놓자 정치권에서는 “홍준표의 시대는 저물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안 전 대표 역시 안철수계라는 계파가 존재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국민의당→바른미래당으로 이어지면서 세가 많이 약화됐다. 무엇보다 안 전 대표가 잇따라 선거서 패하면서 그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새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당내서 높아지는 추세다.

지지기반이 약한 정치인은 선뜻 정계은퇴를 선언할 수 없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가 정계은퇴가 아닌 휴식기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8월3일 8·27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을 때 당내 반대에 부딪히자 “그럼 나보고 정계은퇴를 하라는 거냐”고 발끈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확실한 지지기반이 있던 김 전 대통령과 손 전 위원장은 당시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다음 기회를 노렸다.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정계은퇴가 아닌 2선으로 물러나 오랜 기간 휴식기를 가지는 유형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와 문재인 대통령이 이 같은 선택을 했다.

이 전 총재는 1997년 12월18일 제15대 대선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하자 1선서 물러나 휴식기를 가졌다. 당시 정계은퇴를 선언하지 않았다. 그러다 1998년 8월20일 당 총재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1선 복귀를 알렸다. 8개월 246일 만의 결정이었다.

문 대통령도 2012년 12월19일 제18대 대선서 패한 뒤 정계은퇴가 아닌 공식 행보를 자제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다 2014년 12월29일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1선 복귀를 선언했다. 741일 만이었다.
 

이 역시 지지기반이 핵심이다. 이 전 총재는 비록 김 전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충청대망론’의 기수이자 청렴하고 대쪽 같은 이미지로 ‘이회창 대세론’을 이어갔다. 문 대통령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비록 패했지만, 친노계의 핵심이자 새정치민주연합 최대주주로서 자신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석패했다는 점도 휴식 기간의 차이를 불러오는 요소다. 이 전 총재는 제15대 대선서 38.7%를 득표, 40.2%를 득표한 김 전 대통령에게 단 1.5%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문 대통령 역시 제18대 대선서 48.0%를 득표, 51.5%를 득표한 박 전 대통령에게 3.5%포인트 차로 아깝게 패했다.


기반 있어야

반면 제19대 대선 당시 홍 전 대표는 24%를 득표, 41%를 득표한 문 대통령에게 크게 밀렸다. 안 전 대표는 21.4%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안 전 대표는 6·13지방선거 때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지만,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조차 밀려 3위를 차지했다. 선거서 잇따라 패배하자 당내서도 홍 전 대표의 ‘막말’, 안 전 대표의 ‘소통’과 ‘리더십’ 부재를 패배의 주 원인으로 꼽고 있다. 두 사람의 조급증은 혹여 잊혀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안철수계 환경부장관으로?

청와대가 바른미래당 내 안철수계로 꼽히는 박선숙 의원을 환경부장관에 기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 의원은 김근태계로 출발해 김대중과 노무현정부에서 각각 청와대 공보수석 겸 대변인, 환경부차관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에 합류했지만, 최근 독자 행보를 하고 있어 민주당 합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그러나 청와대는 박 의원을 환경부장관으로 검토 중이라는 소식에 “논의된 바가 없다”며 부인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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