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14범 소녀에 ‘훈훈한 판결’

2011.09.06 13:05:00 호수 0호

법정에 울려 퍼진 참회의 ‘흐느낌’ 그리고 ‘희망’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치열한 반론과 공방 속에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판결을 예고하는 법정. 이 공간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며, 법정 꼭대기에 앉아 방망이를 두드리는 재판장은 마치 저승사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무거운 법정은 때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희망’을 얘기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14차례 절도ㆍ폭행 사건으로 기소된 한 여학생에게 내린 김귀옥 부장판사의 ‘따뜻한 판결’ 이야기가 그것이다. 법 해석에도 따뜻한 가슴이 함께해야 한다는 게 이 판결의 취지다.

소녀 망가뜨린 건 ‘사회’ 모성의 판결 내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감동의 외침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렴.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지난해 4월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의 한 소년법정. 재판장인 서울가정법원 소년1단독 김귀옥 부장판사가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떼자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던 피고인 A(16)양이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났다.

A양은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이미 작년 가을부터 14건의 절도 폭행을 저질러 이미 한 차례 소년법정에 섰던 전력도 있었다. 법대로라면 A양은 소년보호시설 감호 위탁 같은 무거운 보호처분을 받을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러나 김 부장판사는 이날 A양에게 아무 처분도 내리지 않는 불(不)처분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단 한 가지 처분으로 ‘법정에서 일어나 외치기’를 내렸다. 김 부장판사가 A양에게 이 같이 따뜻한 판결을 내린 것은 A양이 범행에 빠져들게 된 사연 때문이었다. 



아픔을 치유하는 재판

사연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초, A양은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다. 그러 던 어느 날 A양은 귀갓길에 남학생 여러 명에게 끌려가 집단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이후 A양의 삶은 송두리 째 바뀌었다.

폭행 이후 A양은 심각한 후유증으로 병원의 치료를 받았고, 딸의 소식에 충격을 받은 홀어머니는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A양은 학교를 겉돌기 시작했고, 비행청소년과 어울려 다니면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날 보호처분을 예상한 A양에게 김 부장판사는 말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렴.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요구에 잠시 머뭇거리던 A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세상에서…”라며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김 부장판사는 “내 말을 크게 따라 하라”며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큰 목소리로 따라하던 A양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칠 때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법정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A양의 어머니도 울었고, 재판 진행을 돕던 참여관도, 법정 경위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김 부장판사는 다시 법정에서 지켜보던 참관인들 앞에서 말을 이어나갔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쉽사리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아이의 잘못의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여기에 앉아있는 여러분과 우리 자신일 것입니다. 이 소녀가 다시 이 세상에서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 지요”

눈시울이 붉어진 김 부장판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소녀를 법대 앞에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이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을거야”고 말하며, 두 손을 뻗어 A양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마음 같아서는 꼭 안아주고 싶지만 너와 나 사이에는 법대가 가로막혀 있어 이 정도 밖에 할 수가 없어 미안하구나”라고 말하며 A양의 범행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 안아 주었다.

이 재판은 비공개로 열렸지만, 서울가정법원 내에서 화제가 되면서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고 ‘명판결’의 사례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미국 감동 사례도 조명

해외에서도 김 부장판사의 판결과 같이 감동이 담긴 판결문으로 화제를 낳은 사례가 있다. 뉴욕시장을 3연임했던 피오렐로 라과디아씨의 이야기이다. 대공황 시기였던 1930년대 초, 그가 뉴욕치안 판사로 재직 중이던 어느 겨울 날. 가게에서 빵 한덩어리를 훔치다 붙잡혀 온 노인이 절도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장에 섰다.

라괴디아 판사는 노인에게 정중히 물었다. “전에도 빵을 훔친 적이 있었습니까?” 노인은 대답했다. “아닙니다. 처음 훔쳤습니다”

라괴디아 판사는 다시 빵을 훔치게 된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예, 저는 그동한 선량한 시민으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흘을 굶었습니다. 배는 고픈데 수중에 돈은 다 떨어지고 눈에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저도 모르게 빵 한 덩어리를 훔쳤습니다”라고 말했다.

라괴디아 판사는 잠시 후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의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라고 말했다.

방청석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라괴디아 판사는 논고를 이어나갔다.

라괴디아 판사는 “그러나 이 노인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이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겠습니다. 동시에 이 법정에 앉아있는 방청객 모두에게 각 50센트 벌금형을 선고합니다”라고 말하며 지갑을 꺼내 들었다.

그후 리괴디아 판사는 지갑에서 10불을 꺼내며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 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오늘 이 노인 앞에서 참회하고 그 벌금을 대신 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놀라운 판사의 선고에 방청객 모두가 동참했고 이렇게 걷은 57달러 50센트를 노인에게 주자, 노인은 10달러벌금을 낸 후 47달러 50센트를 갖고 법정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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