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78)음양의 조화

2018.04.09 10:39:29 호수 1161호

무녀의 조언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인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연이은 패전으로 인해 의자왕의 상심이 깊어가고 있었다. 특히 수족 같은 은상의 전사는 의자왕의 상실감을 더욱 깊게 만들었고 그 일로 인해 식사를 거르고 술에 의지하는 횟수가 늘기 시작했다.

그를 살피던 좌평 중상과 상영이 어느 날 한 여인을 대동하고 의자왕을 알현했다. 그 날 역시 이른 시간부터 정사는 제쳐두고 홀로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전하, 불충한 소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의직과 함께 신라를 침공했다 실패했던 중상이 부복했다. 

그를 기회로 상영과 여인 역시 자연스레 부복했다. 


대동한 여인

“경들이 어인 일인가?”

“소신들의 불충을 씻고자 감히 찾아뵈었습니다.”

“불충이라, 그런 소리 마시게. 불충 때문이 아니라 짐의  덕이 부족하여 그런 것이거늘 왜 경들이 그러는가.”

의자왕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며 손을 저었다.

“아니옵니다, 전하. 전하의 성은에 보답하지 못한 소신들의 불충이 적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소리는 그만하고, 그런데 이 여인은 누구인가?”

“전하께 정식으로 인사 올리시게.”

상영이 고개를 돌려 여인을 주시하자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가지런히 하고 큰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미천하기 그지없는 은고, 감히 전하를 뵈옵니다.”


어림잡아 삼십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은고라 이름을 밝힌 여인의 몸이 흡사 버들가지 휘어지듯 했다가 원위치로 돌아갔다.

“그대는 누구인고?”

“소녀 계룡산에서 신을 섬기고 있사옵니다.”

“뭐라, 그러면 무녀 아닌가?”

의외라는 듯 의자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 여인은 오래 동안 백제의 중흥을 위해 계룡산에서 신을 섬기던 여인입니다.”

“백제의 중흥을 위해서!”

“물론 그 중심에는 전하께서 계시었습니다.”

상영의 이야기에 의자왕의 시선이 은고에게 집중되었다.


“고개 들어 보거라.”

의자왕의 부드러운 말투에 은고가 부끄러운 듯 얼굴이 발갛게 변하며 의자왕을 주시했다.

“그런데 어인 일로 짐을 찾아왔는가?”

“전하, 송구하옵니다만 백제와 전하의 중흥을 위해서 반드시 이 여인의 말을 되새겨보아야 할 듯해서 함께 자리 했습니다.”

중상의 목소리가 은근히 떨렸다. 그를 살피며 의자왕이 은고에게 그 사유를 말해보라는 듯 시선을 주었다.

“전하, 왜 지금의 상황이 초래되었는지를 아뢰고 그 방법을 제시하고자 감히 찾아뵈었습니다.”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은고의 말 역시 살짝 떨렸다.

“기탄없이 말해보게나.”

“전하, 혹시 음양의 이치를 아시옵니까?”

계룡산 무녀 은고 음양의 조화 조언
은고에게 끌리는 의자왕 잔을 채우다

“음양의 이치!”

음양을 잠시 되뇌던 의자왕이 잔을 비워냈다.

“음양이라면 햇빛과 그늘로 만물의 기의 조화를 이름이 아니더냐.”

“바로 그런 이치이옵니다.”

“그런데 그게 어째서?”

“작금의 상황이 그러하옵니다. 근자에 들어 지속적으로 신라에 패한 것은 음양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입니다.”

“자세히 일러 보거라.”

“신라의 왕이 누구인지요?”

“그야, 진덕이라는 요망…… 그래, 여자지.”

“그러하옵니다. 여자는 음으로, 여주가 다스리는 신라는 음의 기운이 강하게 작용하고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남자들로 인해 음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백제는 오로지 양의 기운만 있는 형국입니다.”

“계속하거라.”

“아울러 양과 음을 살피면 초반에는 양이 승하지만 결국 음의 기운에 굴복하게 되어있습니다.”

의자왕이 그를 새기는 듯 잠시 침묵을 지키다 스스로 잔을 채웠다.

“송구하오나, 전하.”

중상이 조심스레 운을 떼었다.

“말해보게나.”

“전하께서 보위에 오른 시점을 생각해보십시오.”

의자왕이 마치 회상에 잠긴 듯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전하께서 보위에 오를 당시만 해도 전하의 기운은 욱일승천하였습니다. 아울러 곁에는 전하께 음의 기를 적절하게 보충해줄 수 있는 분께서 계셨었습니다.”

작고한 사택비를 지칭했다. 순간 의자왕이 가벼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그런 연유로 짐이 음의 기운으로 양의 기운을 조절해야 한다는 말인가?”

“조절이라기보다는 조화라는 표현이 맞을 법 하옵니다.”

“양과 음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야 능히 진덕이라는 요망한 계집을 제압할 수 있다는 의미로세.”

“송구하오나 바로 그런 이치이옵니다.”

답을 한 은고가 다소곳하게 고개 숙였다.

“짐에게 술을 따르겠느냐?”

은근한 시선으로 은고를 주시하던 의자왕이 단번에 잔을 비워내고 빈 잔을 내밀었다. 은고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신하게 몸을 움직여 병을 들어 빈 잔을 채웠다.

“바로 이런 이치로세.”

무슨 말을 의미하는지 헤아리겠다는 듯 은고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자네가 나의 빈 잔을 채워주는 이 이치 말일세.”

은고가 얼굴을 살짝 찡그리자 어느 정도의 술이 들어간 의자왕의 시선에 고혹적으로 비쳐졌다.

“경들도 이리 와서 함께 자리하게나.”

자리를 물리려는 은고의 손을 잡아 옆에 앉게 하고 부복하고 있는 두 사람을 불렀다.

“경들 이야기가 맞네. 내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택비가 곁에 있을 때 백제는 신라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듭했었지. 그런데 사택비를 보내고 홀로 시름에 빠져 지내는 중에 그 반대의 현상에 직면했네.”

사택비를 회상하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의자왕이 가벼이 한숨을 내쉬며 은고에게 두 사람의 잔에 술 따르라는 눈짓을 주었다. 은고가 두 사람의 잔을 채우자 의자왕이 그녀에게 빈 잔을 건넸다.

“아니되옵니다, 전하. 소녀 손수 따르겠사옵니다.”

은고가 술병을 잡으려 몸을 앞으로 움직이자 의자왕이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소녀 때문에 전하의 손을 더럽힐 수는 없사옵니다.”

“그러면 자네 이야기는 무슨 의미인고?”

은고의 눈이 반짝였다.

“음과 양의 조화 말일세.”

그 말에 은고의 얼굴이 그야말로 발갛게 변해갔다.

“그러니 주저 말고 어서 받게!”

부드러우면서도 완고한 말투에 은고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두 손으로 잔을 내밀었다. 그 순간 은고의 발갛게 물든 가슴살이 의자왕의 시선에 들어왔다. 의자왕이 헛기침 한번 하고는 천천히 잔을 채웠다.

결정하다

“짐이 말일세.”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의자왕을 향했다.

“자네들의 충정을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겠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아울러.”

“말씀 주십시오, 전하.”

“그를 확인하기 위해 이 여인과 자리를 함께하겠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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