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수상한 증여’ 블랙리스트 대공개

2011.08.04 10:45:00 호수 0호

진화하는 ‘부의 대물림’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재벌가 ‘부의 대물림’이 진화하고 있다. 그 동안 일부 재벌들은 상속, 증여 시 온갖 묘안을 총동원 해왔다. 유상증자, 주식스와프, 인수합병(M&A), 차명계좌 등 반칙도 서슴지 않았다. 원칙대로 증여·상속세를 낼 경우 재산이 ‘반토막’ 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아까울 수밖에 없다. 자칫 지분이 희석돼 왕좌를 잃게 될 우려도 있다. 그러나 편법이 동원된 세습은 후폭풍이 만만치 않았다. 자칫 황태자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대물림 방식에 변화가 생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신세계 정씨 남매, 물려받은 지분가치만 수백억 증가
김승연 회장의 부인과 세 아들 회사 주식 대거 증여


재계에 세대교체가 한창이다. 2세 경영에 이어 3~4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정상적으로 증여세나 상속세를 내면서 경영권을 물려주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분이 희석돼 미래 경영권 확보가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일부 대기업은 온갖 기상천외한 편법을 통해 경영권 세습을 벌여왔다.

세대교체 초창기에는 비상장 계열사를 활용하거나 편법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 등이 주로 동원됐다. 당연히 이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황태자의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최근 재벌가엔 약세장에서 주식을 대거 증여해 부를 대물림하는 방법이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증여세를 내고도 막대한 시세 차익을 건질 수 있는데다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상속과 달리 사후에 벌어지는 경영권 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점도 메리트다.

온갖 기상천외한
편법 동원해 세습



이런 현상은 최근 <재벌닷컴>이 발표한 ‘상장사 대주주의 주식 증여 현황’을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이 자료 따르면 2006년부터 지난달 22일까지 상장사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주식 증여, 상속은 모두 1051건, 액수는 3조3456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대주주 자녀들이 일가로부터 주식을 증여받은 경우 총 869건, 금액은 2조7921억원에 달했다.

증여는 주가가 약세를 보인 시기에 집중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했던 지난 2008년에 205건으로 가장 많았고, 2009년 203건, 2007년 141건 등이었다. 주가가 급등했던 지난해에는 112건으로 주춤했지만, 올해 증시 활황세가 이어지리란 전망에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 올해 들어 지난 22일까지 증여는 132건으로 지난해 112건보다 이미 20건이나 늘어났다. 증여액도 지난해 1427억원보다 45%나 늘어난 2072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약세장에 증여가 집중된 것은 세금을 줄이고 시세차익을 최대한 늘리려는 의도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증여가액은 증여일 전후의 2개월(합쳐서 4개월)간 종가를 평균해 산정한다. 30억원 이상을 증여할 경우 세율은 50%. 증여 시점에 주가가 평균 10% 하락했다고 가정하면 이들이 아낀 세금은 최소 1400억원에 이른다.

재벌가 중에서 주식 증여로 가장 많은 시세 차익을 남긴 건 신세계 정씨 남매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은 지난 2006년 9월 부친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으로부터 신세계 주식 84만주, 63만여주를 각각 증여 받았다. 당시 신세계의 종가는 46만6000만원. 약 7000억원에 해당하는 주식을 증여한 셈이다.

당시 정 부회장과 정 부사장은 신세계 주식 56만여주를 증여세 명목으로 현물납부해 화제가 됐다. 이는 당시 가치로 3500억원가량. 재계 역사상 최대금액이었다. 세습을 위해 막대한 대가를 치렀지만 정씨 남매는 웃었다. 증여세를 제외하고도 5년 사이 물려받은 지분 가치만 각각 894억원, 675억원 증가했기 때문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부인과 세 아들도 이 방법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김 회장은 지난 2007년 군 복무 중인 장남 동관씨에게 2%,차남 동원씨(대학생)와 3남 동선씨(고교생)에게 각각 1% 등 모두 4%(300만주)의 한화 지분을 증여했다. 증여된 주식의 시가는 이날 종가기준으로 2022억원이었다.

서울반도체 증여
내부정보 이용 의혹

앞서 부인 서영민씨에게도 한화 주식 136만주를 증여한 점을 감안하면 가족들의 세금 부담액은 15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세금을 낸 후에도 각각 720억원과 360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부인인 서영민 씨도 510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본전 이상을 뽑아낸 셈이다.

서경배 사장 장녀 민정씨…증여세 빼고 298억원 차익
서울반도체 자녀도 주가 폭락 시기 틈타 주식부호 반열


이정훈 서울반도체 대표의 장남 민호씨와 장녀 민규씨도 주가가 폭락했던 시기를 틈타 주식부호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타 기업에 비해 시끄러웠다. 두 사람은 지난 2008년 서울반도체 주식 448만여주를 주당 9000원대에 받았다. 증여 당일 종가 기준으로 406억원이었다. 증여세는 빠짐없이 냈다. 문제는 증여가액 산정기간 직후 니치아와 특허 소송 중단과 크로스 라이센스를 체결하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치솟았다는 점이었다. 불과 일주일 만에 70%나 급등했다. 앉은 자리에서 거액을 챙기게 된 것이었다.

자연스레 니치아와의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상태에서 증여가 결정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 않고 서울반도체의 주가는 쑥쑥 올라갔고 지난 22일 1074억원까지 불어났다. 이로써 민호씨와 민규씨는 모두 668억원의 차익을 건지게 됐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도 지난 2007년 자신에게 배정된 아모레퍼시픽 우선주 20만1488주를 장녀인 중학생인 민정씨에게 전량 증여했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543억원에 달하는 거금이다. 당시 민정씨의 나이는 17살. 청소년 부호 1위에 오르면서 관심을 받았다. 민정씨는 이 중 45%인 8만8940주를 증여세로 납부했다. 나머지 11만주는 지주회사 격인 태평양 주식 24만주와 교환했다.

당시 서 사장의 주식 증여엔 의문점이 있었다. 주가가 낮을 때 증여를 시도하는 재계 관행을 깨고 주가가 최고점을 기록할 때 증여를 해서다. 실제, 아모레퍼시픽의 주가는 지난 2006년 7월까지만 해도 40만원대를 오르내렸다. 그러나 서 사장이 민정씨에게 주식을 증여할 당시엔 55만원까지 상승했다. 증여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 사장은 전격적으로 증여를 단행했다. 당시 재계 관계자들의 표정엔 물음표가 가득했다.

그러나 현재 이 같은 의문은 해소된 상태다. 회사 분할 등으로 지분가치가 급등해 증여세를 빼고도 298억원의 차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동부그룹 326억원
한국철강 155억원

이밖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장남 남호씨는 2007년 증여받은 동부씨엔아이 주식 240여만주(156억원)의 지분가치가 급증해 326억원의 평가차익을 거뒀다. 또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아들인 장세홍 전무는 2007년 12월 KISCO홀딩스 주식 140만주(1078억원)를 증여받았고 155억원의 차익을 건졌다. 박세종 세종공업 회장의 아들인 정길, 정규씨도 회사 주식을 증여받아 123억원씩,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174억원, 정몽열 KCC건설 사장이 145억원의 평가차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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