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 그린재킷의 주인, 세르히오 가르시아 '비화'

2017.05.04 20:23:09 호수 0호

드디어 22년간 쌓인 한을 풀다

지난달 10일 미국 조지아 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1회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골프대회답게 풍성한 얘깃거리를 남겼다. 1999년 19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한 이래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통산 9승을 차지하며 정상급 선수로 군림했지만 유독 메이저 대회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던 스페인의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우승컵을 안아 메이저 한을 풀었다.



가르시아는 마스터스 토너먼트(총상금은 1100만달러, 한화 125억원) 최종일 4라운드에서 저스틴 로스(영국)와 치열한 연장 승부 끝에 승리해 정상에 올랐다. 이번 우승으로 가르시아는 우승 상금 198만달러(약 22억5000만원)를 받았다. 메이저 우승이 없는 세계 정상급 선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메이저 우승의 한풀이에 성공했다. 1996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아마추어 자격으로 메이저 대회 데뷔전을 치른 이후 햇수로 22년 만이고 74번째 도전 만이다.

그토록 원하던
메이저 첫 승

전날 공동 선두로 한 조에서 라운드한 가르시아와 로즈는 4라운드에서 물고 물리는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가르시아는 1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은 뒤 3번홀(파4)에서 다시 버디를 추가해 2타 차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로즈가 4번홀(파4)에서 보기를 범해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러나 올림픽 챔피언 로즈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6번홀(파3)부터 8번홀까지 3홀 연속 버디를 잡으면서 가르시아를 따라잡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0번홀(파4)에서 가르시아가 보기를 범하자 로즈는 파 세이브에 성공해 단독 선두로 올라서며 기세를 올렸다. 악명 높은 ‘아멘코너’가 시작되는 11번홀(파4)에서는 가르시아의 티샷이 페어웨이 옆의 나무 사이로 들어가 보기가 되면서 로즈는 2타 차로 앞서나갔다. 이렇게 승부는 로즈에게로 기우는 듯했지만 백전노장 가르시아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로즈가 13번홀(파5)에서 1m 버디 퍼팅에 실패하자 가르시아는 이어진 14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1타 차로 추격했고 15번홀(파5)에서 승부를 걸었다. 볼을 홀컵 4m 가까이 붙였고 기어코 이글 퍼팅에 성공해 이 홀에서 버디를 잡은 로즈와 동타를 이뤘다. 마지막 18번홀에서 가르시아와 로즈 모두 버디 기회를 놓쳐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전에 오른 가르시아는 수많은 갤러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챔피언 퍼팅을 짜릿한 버디로 마무리하며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가장 인기 메이저대회 첫 승 신고
연장 접전 끝 거둔 짜릿한 역전승


2위 저스틴 로즈(영국)에 이어 찰 슈워젤(남아공)이 단독 3위(6언더파 282타), 매트 쿠차(미국)와 토마스 피터스(벨기에)가 공동 4위(5언더파 283타)에 올랐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했던 로리 맥길로이(북아일랜드)는 공동 7위(3언더파 285타)에 머물렀고 역전 우승을 노렸던 조던 스피스(미국)는 3타를 잃고 리키 파울러(미국) 등과 함께 공동 11위(1언더파 287타)로 대회를 마쳤다. 한국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컷을 통과한 안병훈(26)은 2타를 줄여 공동 33위(5오버파 293타)를 기록했다.

마지막까지 가르시아의 우승에는 위기가 있었다. TV 시청자 때문에 무산될 뻔한 것. 가르시아의 규정 위반 논란은 대회 마지막 날인 4라운드의 TV 중계화면 때문에 확산됐는데 13번홀(파5)에서 가르시아가 친 티샷이 왼쪽으로 꺾어지면서 나무 덤불 사이로 들어갔다. 가르시아는 1벌타를 받고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한 뒤 공을 드롭 했고 가르시아는 결국 파로 홀아웃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일부 시청자는 가르시아가 공을 치기 전에 덤불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공이 살짝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며 벌 타를 또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스터스 주최 측이 가르시아의 규정 위반 문제를 검토한 끝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가르시아의 우승을 확정 지었다.

세 살 때 선수 출신인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채를 잡은 스페인 출신 세르히오 가르시아의 별명은 ‘엘리뇨’다. 어린 시절 작은 체구에도 엘니뇨처럼 폭발적인 스윙을 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가르시아는 15세에 유럽 아마추어선수권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고 1999년 19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해 유러피언프로골프(EPGA)투어를 휩쓸며 한때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2·미국)의 대항마로 떠오르기도 했다.

가르시아는 19세던 1999년 마스터스에서 아마추어 최고 성적인 공동 38위를 차지하며 ‘신동’으로 떠올랐고 그해 프로로 전향한 뒤 참가한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와 접전 끝에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유럽의 우즈’로 불렸던 그는 이후 PGA투어 9승, 유럽투어 12승 등을 기록했지만 메이저 대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7 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연장 끝에 파드리그 해링턴(아일랜드)에게 우승컵을 내주는 등 메이저 대회 준우승만 네 번을 기록했다. 디 오픈 챔피언십(2007·2014년)과 PGA 챔피언십(1999년·2008 년)에서다.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도 2004년 우승에 도전했으나 공동 4위에 만족해야만 했다.

스페인 스포츠 전설 반열
그를 지탱해준 사랑의 힘

2002년 국내 메이저 대회인 한국오픈에 출전해 우승했던 가르시아는 샷을 할 때 30차례까지 왜글(손목풀기)을 하는 등 나쁜 경기 매너로 눈총을 사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있는 ‘축구의 나라’ 스페인에서 골프뉴스가 스포츠신문 1면에 오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가르시아의 마스터스 우승은 라파엘 나달(테니스), 이케르 카시야스, 사비 에르난데스(이상 축구), 파우 가솔(농구), 알베르토 콘타도르(사이클), 페르난도 알론소(F1 레이싱) 등 다른 종목의 스페인 스포츠 영웅들이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을 때 나온 쾌거라서 더욱 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스페인 국빈대접
전설들과 나란히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남자골프 시즌 첫 메이저대회 제81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다음 날 스페인의 유력 스포츠 전문지에는 가르시아가 표지에 등장했다. <마르카>는 “드디어”라는 제목을 달았고, <일 문도 데포르티바>는 ‘마에스트로(거장)’라며 칭찬했다.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은 텔레그램을 통해 “스페인 골프의 특별한 승리였다”고 칭송했고,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도 트위터에 “놀랍다! 스페인 스포츠의 자랑”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린재킷을 입은 가르시아의 위상은 현역 최고의 스페인 골퍼라는 타이틀을 넘어 이제는 골프뿐 아니라 전 종목을 통틀어 스페인을 대표하는 영웅이 됐다. 세베 바예스테로스,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과 같은 스페인 골프 전설의 계보를 잇는 선수가 됐다. 바예스테로스는 마스터스(1980·1983년)와 디오픈(1979 ·1984 ·1988년)에서 통산 5차례 메이저 챔피언이 됐고, 올라사발은 1994년과 1999년에 그린재킷을 입었다.

파란만장했던
골프인생

가르시아가 우승한 날은 현지 시간으로 2011년 뇌종양으로 타계한 가르시아의 우상인 ‘스페인 골프 전설’ 세베 바예스테로스가 60년 전 태어난 날이었다. 가르시아는 첫 마스터스에 참가했던 1999년 연습 라운드에서 바예스테로스, 우즈와 함께 경기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가르시아는 “바예스테로스는 내가 마스터스에 참가할 때마다 많은 조언을 해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며 “오늘 우승한 것도 오늘로 60번째 생일을 맞은 바예스테로스가 하늘에서 내 퍼팅과 샷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가르시아의 마스터스 우승에는 운도 따랐다. 의심의 여지 없이 마스터스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세계 1위’ 더스틴 존슨이 대회를 앞두고 어처구니없는 부상을 당해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다.

존슨은 개막 전날 숙소 계단에서 넘어져 허리와 팔꿈치를 다쳐 불운도 불운이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가 부족했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존슨은 경기 시작 전까지 “일단 몸 상태를 지켜보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기권했다. 이로 인해 미국 <골프다이제스트>는 ‘역대 골프 황당한 부상 10개’를 소개하며 존슨의 부상을 1위로 꼽았다.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5타까지 앞서가던 중 12번홀(파3)에서 쿼드러플(+4) 보기를 범하며 대니 윌릿(잉글랜드)에게 우승을 내줬던 조던 스피스는 올해 역시 1라운드 15번홀에서 세 번째 샷을 그린 앞 해저드에 빠뜨렸다. 그 후 그린 주변에서 헤맸고 3퍼트로 한 홀에서만 4타를 잃는 악몽이 재현됐다. 이 때문에 스피스는 지난해 12번홀의 나쁜 기억마저 되살아나며 이날 열린 마지막 라운드 12번홀(파3)에서 더블 보기를 적어내며 11위로 아쉬운 마무리를 했다.

평생의 앙숙으로 불리던 타이거 우즈 역시 허리 수술 등 부상으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마스터스를 포기했다. 가르시아는 우즈에게 “우즈를 집에 초대해 프라이드치킨을 대접하겠다”고 말해 비난을 받았다. 프라이드치킨은 주로 흑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가르시아가 우즈에게 사과와 함께 쪽지를 건넸고 우즈가 이를 받아들이며 둘의 앙금은 풀렸다. 숙적 우즈가 없는 무대에서 우승했고 우즈는 가르시아의 우승을 흔쾌히 축하해주었다.


또한 어니 엘스(48·남아공)는 이번 대회 1, 2라운드에서 72타와 75타로 버텼으나 주말에 83타, 78타로 부진해 컷을 통과한 53명 중 최하위에 그치며 결국 그린재킷을 얻지 못하고 마스터스와 작별하게 됐다. 2012년 브리티시오픈에서 메이저 통산 4승째를 거둔 엘스는 최근 5년간 메이저대회 우승자 자격으로 마스터스 무대에 섰지만 향후 세계랭킹 50위, 투어 대회 우승 등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낼 가능성은 낮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기 때문에 이번으로 마스터스와는 작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엘스는 지금까지 마스터스에 모두 23차례 출전해 2002년과 2004년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다. 엘스는 “마스터스는 나를 위한 대회가 아닌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마스터스 마지막 날 가르시아의 우승이 확정되자 한 미모의 여성이 그린 위로 올라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가르시아의 약혼녀이자 골프채널 리포터 출신인 앤젤라 애킨스로 가르시아는 올해 애킨스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두 사람은 그린 위에서 진한 포옹을 했다.

가르시아는 지난 1월 골프 선수 출신으로 미국골프채널 리포터로 활동하던 안젤라 애킨스와 약혼했고 오는 7월 결혼할 예정이다. 미래를 약속한 안젤라 애킨스에게 가르시아는 마스터스 우승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선사했다. 경기 도중 홀에 침을 뱉고 클럽을 던지거나 갤러리를 향해 욕설을 하고 신경질을 내는 등 악동과 다혈질 이미지로 유명한 가르시아는 “애킨스를 만나면서 성격이 긍정적으로 변했고 코스에서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린재킷 입고
결혼식 입장?

22년 메이저 무관의 설움을 털어낸 가르시아는 미국 NBA <투데이쇼>에 출연해, 결혼식에서 그린재킷을 입을 것이냐는 질문에 “아직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고 애킨스는 “내 남자의 그린재킷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린재킷은 1년간 마스터스 우승자가 소유한 뒤 다음 해에 반납해 마스터스 챔피언스 라커룸에 전시되기 때문에 시간은 충분하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