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18) 진퇴양난

2017.01.31 11:37:28 호수 1099호

목숨과 맞바꾼 여인의 몸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저런 놈은 그냥 현장에서 참형에 처해야 하건만 내 귀관들의 요청에 따라 자초지종을 파악한 연후에 처리하도록 하겠다.”

말을 마친 품석이 칼을 넣고는 휑하니 돌아섰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애랑이 모척과 함께 옥에 있는 검일을 찾았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소.”“무슨 그런 말이 있어요.”


“정말이라니까.”

검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모척이 혀를 찼다.

“정말로 사태 파악이 안 된다는 말인가?”

“이거 미치고 환장하겠네.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

“차근히 생각해보게. 혹시 단체로 술 마신 건 아닌가?”

“형님, 근무 중에 술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그런데 어떻게 부대 전체가 그럴 수 있나?”

“그러니 미치겠다는 거 아닙니까.”

답을 한 검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특별한 일은 없었는가?”

“특별한 일이 있을 턱이 없지요. 항상 하던 대로였는데.”


“조금이라도 걸리는 일이 없는지 차근히 생각해보게.”

검일이 지난 일을 회고하는 듯 눈을 깜박였다.

“그저 야식 먹고.”말을 하다 말고 검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 그러는가?”

“야식이 다른 날보다 유난히 짰다는 생각이 들어서.”“짜다니!”

“뿐만 아니라 맵기도 했고요.”“그래서?”

“야식을 먹고 난 후 모두들 물을.”

말을 하다 말고 검일이 다시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왜!”


“아무래도 음식과 물에 이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맵고 짰으니 당연히 물이 먹힐 터인데, 그게 무슨 이유가 되는가. 그리고 음식이며 물은 다 자네 부대서 마련한 거 아닌가?”

“당연히 그렇지요.”

저도 말을 해놓고는 아연한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저는 이제 어떻게 됩니까?”

그 상황에도 자신의 향후 문제가 걱정되는지 검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척과 검일의 처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흡사 상대에게 답을 하라는 듯했다.

“왜요, 결국.”

“군율대로 처리할 모양이네.”

“그러면 참수형이란 말인가요?”

모척이 대답 대신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달리 방도가 없습니까, 형님!”

사색이 된 검일이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주시했다.

“성주가 정황을 참작해서 살려주는 길 뿐인데.”

모척이 말을 하다 말고 검일의 처를 바라보았다.

“저는 왜 바라보시는지요?”

“혹시 제수씨가 나선다면, 성주가 제수씨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아서.”

“성주의 시선이 어떤데요?”

애랑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제수씨가 나선다면 성주가 배려해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거지요.”

“그저 나서면 되나요?”

“그거야.”

모척의 얼굴에 곤혹감이 들어차자 애랑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행여 꿈속에서라도 그런 말씀 마세요. 제게는 서방님 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서방이 죽도록 내버려두겠다는 말입니까?”

“그러면 몸을 더럽혀 구걸이라도 할까요?”

“그게 어찌 구걸이오, 아우를 살리는 길이지요.”

모척이 간절한 표정으로 애랑을 주시하자 고개를 돌려 검일을 바라보았다.

검일이 슬쩍 시선을 외면했다.

“제게는 오로지 서방님뿐인데.”

애랑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제수씨가 나서는 길 외에 다른 방도는 없는 듯합니다.”

죽을 위기의 검일…살기 위한 방법은?
떠날 채비 갖추고 애랑과의 마지막 밤

“그게 무슨 소리요?”

“말 그대로지요. 당신의 목숨과 저를 바꾼 거지요.”

자신의 아내 아니,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아내가 될 수 없는 애랑을 바라보는 검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이런 경우가 있나!”

자신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아내를 품석에게 내주어야 하는 한심한 형국에 대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검일의 처는 흡사 그를 즐기기라도 하듯 곁눈질로 검일을 살펴보았다.

“제 마음은 어떻겠어요.”

기어이 애랑이 침묵을 깨고 나섰다.

“다 내 죄지, 내 죄. 그냥 죽었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지요. 어쨌든 살고 봐야지요.”

“자네 없는 삶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것도 다른 남자 옆에 시퍼렇게 눈을 뜨고 살아 있는 자네 모습을 보면서 말이야.”

“그러면 제가 죽을까요?”

“그럴 수 없지. 죽어야 한다면 내가 죽어야지.”

“다 이년이 박복한 탓이지요.”

검일이 길게 한숨을 내쉬자 애랑이 천천히 다가섰다.

“내일이면 그 놈에게 가야 하는데 이 밤을 이대로 보내시려는지요. 마지막으로 당신의 진한 체취를 느끼고 그를 기억하며 팔자려니…….”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애절하게 말하는 애랑을 검일이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자네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네.”

“어쩌시려고요?”

순간 애랑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도망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대로는 보낼 수 없어.”

울음인지 한숨인지 분간 못할 소리가 이어졌다.

“도망가다니요?”

“백제 땅으로라도 도망가야지.”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렇게는 안 되겠네.”

“그렇게 해서 둘 다 죽으면 무슨 소용 있나요?”

애랑의 목소리가 앙칼졌다.

“그러면 자네는 이대로 가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죽자는 말인가요, 사는 길이 있는데.”

검일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애랑을 주시했다.

“저는 지금 이 길이 좋아서 이러는 줄 아세요. 지금 이 순간까지 당신만 오로지한 저에게는 이 일이 좋은 줄 아시냐고요.”

기어코 애랑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를 살피며 검일이 애랑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자네에게 몹쓸 짓 하는구려.”

애랑이 말은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미안하오, 부인. 내 죽어서도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 잊지 못할 것이오.”

애랑의 등을 휘감았던 검일의 손이 허리께로 이동했다.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애랑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군사, 계책을 말해보시오.”

대소 신료가 자리를 정돈하자 의자왕이 곁에 있는 흥수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선을 받은 흥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왕 곁에 자리했다.

“여러 대신들께서도 감을 잡고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전하께서 이참에 신라를 공격하여 심기일전의 기회, 또 백제 중흥의 기반을 닦으시려 합니다.”

흥수가 잠시 말을 멈추고 의자왕의 눈치를 살피고는 시선을 신료들에게 주었다.

“아울러 금번에는 전하께서 친정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친정!”

누구 한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구동성으로 친정을 되뇌었다.

“그러하오, 내 직접 전투를 진두지휘하여 우리 백제의 의지를 만 천하에 밝힐 참이오.”

“그렇다고 전하께서 친정하시다니요?”

“아니 될 말씀이옵니다.”

이 역시 어느 한 사람의 입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흥수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왕을 주시했다.

의자왕이 좌중을 주시하다가 이내 헛기침했다.

“경들이 걱정하는 바는 충분히 알겠소.”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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