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대기업 살생부 막전막후

2016.08.16 10:07:28 호수 0호

‘이랬다 저랬다’ 기준도 줏대도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알맹이 없는 대기업 살생부를 만든 금융감독원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상장폐지 위기까지 내몰린 회사에 정부가 의도적으로 호흡기를 부착한 형국이다. 형평성 및 특혜시비 등이 불거질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채권은행들이 대출금 500억원 이상 대기업 1973개사 중 602개 세부평가대상 업체를 대상으로 신용위험평가를 완료했다. 이를 토대로 금융감독원은 지난 7일 ‘2016년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를 내놨다.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으로 확정된 곳은 총 32개사로 지난해보다 3곳 줄었다.



발걸음 빨라지는
대기업 구조조정


채권은행들은 당초 34개사를 구조조정 대상 업체로 선정했지만 5개사가 주채권은행에 이의를 제기하자 재심사를 거쳤다. 지난해까지는 재심사 과정이 없었지만 올해 새로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제정되면서 기업 권익 보호 차원에서 이의제기 절차를 두게 됐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32개사를 확정해 13곳을 C등급, 19곳을 D등급으로 분류했다. A와 B등급 정상기업, C등급은 워크아웃, D등급은 법정관리 대상으로 분류된다.

장복섭 금감원 신용감독국장은 “기업의 자구계획 여부가 등급 상향 조정의 결정적인 부분”이라며 “재무적인 문제가 있더라도 기업이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이 나온다면 등급을 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장사는 7곳으로 해운·조선·전자가 각 2곳, 건설 1곳이다. 이 가운데 1곳은 상장폐지, 2곳은 거래 정지 처분을 받았다. 업종별로는 조선·건설·해운·철강·석유화학 등 5대 취약업종 기업이 17개사로 절반(53%)을 웃돌았다. 전자업종은 2년 연속 5곳 이상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됐으며 주택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건설업종은 지난해 13곳에서 6곳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들 기업이 금융권에 빌린 신용공여액은 1년 사이에 12조4000억원에서 19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중대형 조선·해운사의 비중이 80%에 달했다.

부채 500억 이상 32곳 구조조정 급물살
부실덩어리 조선 빅3는 정상기업 분류?


금감원은 금융권의 손실흡수 여력을 감안할 때 금융사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반기 중 은행권이 쌓은 충당금 규모는 3조8000억원으로 올해 추가 적립액은 은행 2300억원, 저축은행 160억원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은 C등급 기업에 대해서는 신속한 금융지원과 자산매각, 재무구조 개선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신규 여신을 중단하고 만기도래 여신을 회수할 수 있다. D등급 기업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게 된다.
 

올해 초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진행했던 대기업 9곳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이들 가운데 6곳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3곳은 채권단과의 자율협약을 통해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즉, 9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착수는 자구안 실행이 6개월만에 사실상 실패로 끝났음을 의미한다. 지난해에는 17개 기업이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 대상으로 선정됐다가 3곳이 경영정상화에 실패해 지난해 말 C등급을 받은 바 있다.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으로 분류된 기업은 B등급과 C등급 사이에 속해 있다. 성공적으로 자구안을 이행하면 정상기업인 B등급으로 올라가지만 실패해서 C등급으로 떨어지면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된다.

구조조정대상 업체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재무구조와 수익성이 취약한 업체 중 자산매각이나 증자 등을 통한 자체 자구계획을 수립하거나 진행 중인 업체는 26곳이다. 이들이 제출한 자구계획은 약 1조3000억원이며 부동산 등 자산매각이 1조원을 차지했다.

자구안 이행에 실패한 기업 대부분은 취약업종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업황 침체와 연결 지을 수 있다. 올해 자체 경영개선 프로그램 기업으로 선정된 26곳은 전자(7곳) 철강(4곳) 건설(3곳) 화학(2곳) 조선(1곳) 기타(9곳) 등이다.

펼쳐진 리스트
누가 살아남나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가 나오자 재계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빅3’ 조선업체인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으로 모아졌다. 당초 빅3는 C등급이나 D등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수주 부진의 여파로 자금난이 현실화 될 것으로 관측됐기 때문이다. 채권단과 해당 기업들은 자구계획안을 두고 커다란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빅3 모두 B등급 이상으로 평가됐다. 특히 논란이 되는 건 대우조선해양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3조3000억원 가량의 손실을 냈다. 부채비율도 7308%에 달한다.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수치)은 3년 연속으로 1을 밑돈다. 과거 5조원대 회계사기 혐의에 이어 현 경영진도 올 초 1200억원대 영업손실 축소 의혹이 불거져 충격을 줬다. 검찰은 채권단 지원이 중단될 것을 우려해 회계사기를 벌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말 상장폐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2년 연속 B등급으로 판정했다. 시장 판단과 달리 대우조선해양을 정상기업으로 분류한 것은 정부와 대주주의 의지를 반영한 결과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대우조선해양이 C이하 등급을 받으면 조선업 특성상 보증 문제가 생겨 영업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견해에 대해 장 국장은 “수주가 개선돼 기업이 살아나는 것이 최선이다. 굳이 C등급으로 해 RG(선수금환급보증) 콜 등의 문제를 유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우조선해양은 대주주의 의지와 자구계획으로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경우”라고 부연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정부가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이라는 점을 반영했고 사실상 정부주도로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이 정상기업으로 분류된 만큼 국책은행들은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여신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대신 유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제외한 대다수 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여신 등급을 ‘정상’보다 한 단계 아래인 ‘요주의’로 낮췄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다. 다만 시중 은행들이 당분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추가적인 충당금 쇼크에서 자유롭게 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뒤봐주는 대우조선 ‘B등급’
선제적 부실 차단 효과는 ‘글쎄∼’

특혜에 가까운 대우조선해양의 B등급 판정은 해운업 구조조정의 주 대상이었던 현대상선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현대상선의 경우 최근 자산매각과 용선료 인하 등 자구안 이행을 통해 5000%대의 부채비율을 200%대까지 낮추는 등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이달 중으로 정부가 운용하는 선박펀드를 신청하고 약 1조4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이용해 비용절감에 나선다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상선은 C등급을 부여받았다.

예상치 못한
대우조선 B등급

문제는 대우조선해양이 이미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앙골라 국영석유회사 소난골이 자금 문제로 드릴십 2척을 인도하지 않아 인도대금 1조원을 못 받고 있다. 소난골에 자금을 대주고 있는 글로벌 채권단이 기존 여신을 연장해줄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아 배 인도가 차일피일 미뤄진 탓이다. 글로벌 채권단은 이달 중순 무렵에 소난골에 대한 여신 회수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우조선은 다음달에 CP(기업어음) 4000억원의 만기가 돌아온다.
 

또 다른 논란거리는 대기업 신용위험 평가의 사전적 부실 차단 실효성 여부다. 금감원은 올해 평가 기준이 과거보다 한층 엄정해졌다고 밝혔다. 엄정한 기준이란 평가 기준이 강화됐다는 의미가 아닌 평가 대상 기업수의 확대를 뜻한다.

이전 신용위험평가에서는 신용공여 500억원 이상 기업이 평가대상이었지만 올해부터는 모든 기업(금융회사 등 일부 예외대상 제외)으로 적용대상이 확대됐다. 하지만 선제적 부실 차단 효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계가 명확하다. 금감원 역시 이 같은 지적에 대해서 일정부분 인정하고 있다. 

장 국장은 “기존 구조조정은 여신이 분산돼 있는 기업들에 대해선 특정 시점에 한번 걸러주는 사후적 차원의 구조조정”이라며 “신용위험 평가를 통해 기업의 부실을 막고 기업 스스로가 자구계획을 추진할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당장 유동성에 문제가 없는 정상기업으로 분류됐지만 산업은행이 수시로 자금 확보 방안을 압박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대우조선을 비롯한 빅3 조선사는 신용평가에 앞서 실시한 주채무계열 소속 대기업 평가에서 ‘심층관리대상’으로 지정돼 이미 채권은행과 재무개선 약정을 맺고 관리를 받고 있다.

커지는 특혜 의혹
평가 신뢰도 타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감원의 판단이 비상식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신뢰도 회복과 자력 회생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드는 시점이기도 하다. 윤석헌 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다른 기업들을 평가한 잣대로 똑같이 적용하면 대우조선은 D등급을 받아야 한다”며 “이번 평가는 형평성과 특혜시비 등으로 신용평가에 대한 신뢰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