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횡령조합’ 오명 쓴 내막

2010.10.19 13:39:41 호수 0호

‘왕초보’ 장난질에도 속수무책 “무슨 일 있어?”

 
농협이 몸살을 앓고 있다. 횡령사건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는 가운데 최근 ‘큰 건’이 하나 터졌기 때문이다. 액수도, 범행기간도 ‘메가톤급’이다. 이어지는 여론 뭇매에 정신이 혼미하다. 눈물이 쏙 빠질 지경이다. ‘농협횡령조합’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농협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직원들의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농협이 직원들의 ‘일탈’을 유도하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데 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삐뚤어지게’ 만든 걸까.

‘금액 부풀리기’로
하루 928만원 챙겨


 최근 농협중앙회 부산구포지점의 창구직원 A씨가 2007년부터 3년6개월에 걸쳐 79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A씨는 고객에게 받은 타점권을 입금할 때 금액을 부풀리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다른 은행 수표 10만원을 받으면 서류에는 100만원을 받은 것으로 기재한 뒤 90만원을 자신이 챙기는 식이다. A씨가 횡령한 돈을 영업일 기준으로 따져보면 하루 평균 928만원을 챙겨온 셈이 된다.



제보 포상금제
전시용 제도?

A씨의 횡령 행위는 지점 내 현금잔액과 서류를 대조만 해봐도 바로 확인 가능한 사안이었다. 또 은행들은 타점권을 매일 수표 발행 은행과 교환해야 하므로 이를 확인하게 돼 있다. 그럼에도 농협이 이런 ‘초보적’ 수법에 3년 넘게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3년 넘게 범행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내부 직원들이 공모하지 않은 이상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 같은 의혹에 농협 측 관계자는 “A씨 계좌에 대해 돈이 빠져나간 경로를 조사했으나 계좌보다는 현금으로 인출했기 때문에 관련자 파악이 힘들다”며 “해당 지점 근무자들의 계좌에 대해 감사를 했으나 별다른 이상이 없어 검찰에 고발하는 것으로 감사를 일단 마무리 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농협에서 횡령사건이 불거져 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지난 3월말에도 이와 유사한 사고가 터졌다. 7개월 동안 고객 돈 11억여 원을 가로챈 직원이 적발된 것. 출납담당 직원으로 근무하던 B씨가 장기간에 걸쳐 십억대에 달하는 돈을 횡령할 수 있었던 것은 농협이 해당 직원의 허위 출납장부만을 믿고 출납자동전산시스템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창구직원 2007년부터 3년 6개월 동안 79억 횡령
“초보적 수법 적발되지 않은 것 이해할 수 없다”


농협은 각 지점별로 매일 오후 4시 마감 때 출납담당자로부터 제출된 출납장부와 금고에 남아 있는 현금을 확인한다. 이 때 정확한 출납 확인을 위해 ‘출납자동전산시스템’과 출납장부를 비교하는 것이 원칙이다. 출납자동전산시스템은 고객이 맡긴 출납 정보가 자동으로 기록되는 시스템으로, 수정이 불가능해 이를 출납장부와 비교하면 조작 여부가 바로 드러난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이 과정은 통상 생략된다는 것이 농협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건이 발생한 농협중앙회 모지부 역시 7개월 넘게 이 과정을 생략했다. 뿐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 있는 감사 때도 이를 확인하지 않아 고객돈 11억여 원이 고스란히 B씨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B씨의 범행은 지난 1월23일 지부장이 새로 부임하면서 벌인 인수감사를 통해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지난 3월초에는 대출서류를 허위로 꾸며 수십억 원을 빼돌린 전 농협중앙회 과장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수원 모 지점에서 대출업무를 담당하는 C과장은 여신업무 과장으로 근무하며 지난해 6월4일 우량고객 9명이 담보대출을 받는 것처럼 약정서 등을 위조, 모두 31억 원을 횡령했다.

C과장은 LH공사에서 시행한 토지를 분양받아 그 토지를 담보로 농협에 대출을 신청하면 우량대출로 인정돼 선대출 후결제가 이뤄지는 점을 악용해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 C과장의 범행은 치밀한 준비 아래 진행됐다. 범행 1개월 전 브로커를 통해 신용상태가 좋은 우량고객 9명의 인적사항을 알아냈다. 이후 총 25명의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대출금을 빼돌렸다.

C과장은 횡령한 돈 중 7억5000만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브로커들에게 통장 명의를 제공해 준 대가로 1억원을 지급했다. 그리고 나머지 6억5000만원은 경마와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 지난 4월에는 농기계 수리비 수수료 및 농가 보조금 일부를 수년간 횡령해온 일당이 붙잡혔으며, 허위 잡곡수매 전표를 만드는 수법으로 농협 돈을 빼돌려 온 계약직 직원이 구속되기도 했다.

농협 내부직원의 횡령은 이미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윤영 한나라당 의원이 농협에서 제출받은 ‘금융사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7년부터 올해 8월까지 내부직원의 횡령 건수는 총 66건으로 그 금액만 총 161억9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농협은 ‘농업횡령조합’이라는 오명까지 쓰게 됐다.

 2007년부터 횡령건수 총 66건, 횡령액 161억원
농협의 미지근한 대응, 내부 통제 시스템 도마에

농협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은 직원들의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농협이 직원들의 ‘일탈’을 유도하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데 있다.

실제로 농협은 연이어 터져 나오는 금융사고에 미적지근한 태도로 일관해왔다. 지난해 10월 농협 임직원 500여명은 금융사고 방지 등을 위한 ‘윤리경영실천 자정 결의 대회’를 열었다. 이날 결의대회에서 농협은 횡령 등 사고에 대한 제재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공금 횡령이나 금품 수수 적발 시 즉시 징계 해직하고, 200만원이상 횡령 시 예외 없이 고발키로 했다.

또 내부제보 포상금도 대폭 인상해 금품수수 등 비리 제보에 대해서는 종전에 신고금액의 10배(최고 1000만원)까지 보상하던 것을 20배(최고 1억원 한도)까지로 높이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농협중앙회와 영업지점 직원들은 “그와 같은 제도가 있었는지도 몰랐다”는 반응이 많아 전시용 제도로 그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인원이 모자란 것도 문제다.

농협중앙회의 준법지원부는 총 25명의 인원이 1150여개가 넘는 조합의 내부통제를 맡아야 한다. 이는 비슷한 지점 수를 가진 국민은행이 40명이 넘는 인력으로 내부통제에 나선 것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지역 농협의 내부통제를 담당하는 조합감사위원회 사무처 인력은 총 43명이다. 하지만 전국 4389개 사무소의 감사를 맡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력난은 더욱 심각하다.

이에 농협 측 관계자는 “전국 읍면단위까지 조합 감사를 다니려면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제대로 된 감사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
내부통제 구조가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으로 나눠져 있는 것도 금융사고 방지를 위해 풀어야할 숙제다. 현재 농협중앙회의 감사 및 내부통제는 감사실과 준법지원부에서 담당하는 한편, 지역농협의 경우 조합감사위원회 및 사무처 등에서 맡고 있다.

농협 측 관계자는 “중앙회 소속 감사가 지역농협에 내부통제를 위한 정보공개 등을 요구할 경우 협조를 얻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신경분리 이전에 이 같은 내부통제시스템의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내부통제 인원 적고
분리돼 있어 문제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농협의 내부자정 문제를 제기한 송훈석 의원 역시 “중앙회와 지역농협으로 내부감사시스템이 이원화 돼 있다보니 금융사고 발생 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며 “내부통제를 단일화하고 내부 감사 인력 충원도 시급히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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