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재벌후계자 체크 ④금호 박세창

2010.10.05 09:38:46 호수 0호

‘다 잡은 고기’ 놓치고 아슬아슬 줄타기


한 나라의 경제에서 대기업을 빼곤 얘기가 안 된다. 기업의 미래는 후계자에 달렸다. 결국 각 그룹의 후계자들에게 멀지 않은 대한민국 경제가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 할 수 있을까. 우리 경제를 맡겨도 될까. 불안하다.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경영수업 중인 ‘황태자’들의 자질을 체크해봤다. 네 번째 주인공은 금호아시아나그룹 3세 박세창 상무다.

지난해 ‘형제의 난’ 여파 승계작업 올스톱
‘벼랑 끝’ 금호타이어서 재가동…정상화 관건
두 사촌 신경전 불가피 “본격 편먹기 게임”


물 흐르듯 순조롭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은 지난해 7월 일단 멈췄다. 박삼구 그룹 명예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간 벌인 이른바 ‘형제의 난’이후 올스톱된 상태다. 박 명예회장의 외아들 박세창 상무로선 ‘다 잡은 고기’를 놓친 셈이 됐다.

점프…초고속 승진



올해 35세인 박 상무는 연세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컨설팅 회사인 AT커니에서 잠시 근무하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영학석사(MBA)과정을 마쳤다. 이후 2005년 금호타이어 경영기획팀 부장으로 입사하면서 경영 수업을 시작한 그는 1년 만인 2006년 그룹 전략경영본부 이사로 점프한 데 이어 2007년 상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욕심이 과했을까. 1984년부터 돈독한 우애를 과시한 ‘형제경영’(고 박인천 창업주→장남 고 박성용 전 회장→차남 고 박정구 전 회장→3남 박삼구 명예회장)에 이상기류가 감지된 것도 이때부터다. 전통대로라면 ‘다음 순번’인 박찬구 회장이 그룹 회장을 맡는 게 순서였지만, 그룹 안팎에서 박 명예회장이 동생을 제치고 아들에 경영권을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더니 결국 ‘형제의 난’이 터지고 말았다.

박찬구 회장이 그룹 전체를 유동성 위기에 몬 대우건설 인수 실패 등 박 명예회장의 부실경영에 반기를 든 게 표면적인 배경. 그러나 실질적으론 조카에게 밀릴 것을 걱정한 삼촌이 선수를 친 것이나 다름없다. 이로 인해 그룹은 산산조각 나는 비극을 맞게 됐고, 박 상무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는 꼴이 됐다.

재계 일각에선 금호 사태는 계열분리 수순으로 일단 고비를 넘겼지만, 일가간 신경전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엔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오히려 3세들의 주도권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박 상무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경영 전면에 나선 금호가 3세는 박 상무를 비롯해 올해 32세 동갑인 박철완(고 박정구 전 회장 장남)·박준경(박찬구 회장 장남) 금호석유화학 상무보 등 3명이다. 박철완 상무보는 외국계인 보스턴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다 2006년 아시아나항공 과장으로 입사해 지난해 아시아나항공 전략팀·그룹 전략경영본부 부장으로 승진했고 지난 3월 상무보 승진과 함께 금호석유화학으로 소속을 옮겼다. 역시 같은 시기 상무보로 승진하면서 금호석유화학으로 자리를 옮긴 박준경 상무보는 미국계 기업에서 일하다 2007년 금호타이어 차장으로 입사, 2008년 말 부장으로 승진했다.

박 상무는 직급에서 두 사촌을 앞선다. 나이도 많다. 다만 지분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등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그룹 지주회사 격인 금호석유화학의 최대 주주와 2대 주주는 각각 박철완 상무보(11.96%)와 박준경 상무보(8.59%)다. 박 상무는 6.66%로 그 뒤다.

박 상무는 박 명예회장의 지분(5.30%)을 합쳐야 박철완 상무보와 같지만, 박찬구(7.61%)·준경 부자(16.20%)엔 못 미친다. 이외 금호산업 지분을 갖고 있으나 0.14%로 미미하다. 금호산업의 최대주주는 미래에셋삼호유한회사(11.76%)다. 금호석유화학도 1.90%를 보유하고 있다.

더구나 박 상무는 두 사촌과 떨어져 고립된 분위기다. ‘형제의 난’당시 박 명예회장 쪽으로 붙었던 박철완 상무보는 그룹 구조조정과 관련해 오너일가가 채권단과 갈등을 빚자 박찬구 회장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박철완·박준경 상무보가 금호석유화학이란 한 배를 타고 있는 것도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

금호석유화학 지분 4.45%를 갖고 있는 금호가 장손 박재영(고 박성용 전 회장 장남)씨는 경영 승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영화 공부에 전념 중이다. 최근 금호석유화학, 금호개발상사 등 계열사 지분을 잇달아 매각해 경영권에서 멀어진 상태다.

박 상무는 올초 금호타이어 등기이사에 선임된 데 이어 지난달 17일 금호타이어로 자리를 옮겼다. 금호타이어는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이라 그만큼 할 일이 많다. 물론 성과를 내야 한다. 박 상무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금호타이어 정상화가 우선 넘어야 할 산이다. ‘상처투성이’인 금호타이어를 벼랑에서 되살릴 방법에 머리를 싸매야 한다.

박 상무 각오도 대단하다. 그는 지난 5월 금호타이어 개인투자자 설명회에서 “제가 아직 젊지만 어르신들이 갖고 있던 도전정신을 본받아 목숨을 바쳐 뛰겠다”며 “지난 50년간 임직원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금호타이어의 회생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갈 길이 만만치 않다. 구조조정안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강성 노조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강경 입장 고수로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일정이 지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박 상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태세다. 그동안 “오너일가는 자신들의 경영권에만 목맨 채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던 노조는 박 상무의 전보가 달갑지 않은 눈치다.

아버지만 기다려

그렇다고 박 상무의 앞날이 불안한 것만은 아니다. 박 명예회장의 경영 복귀가 가시화되고 있는 점에서다. 그 시기는 이르면 올 연말쯤으로 예상된다. 박 명예회장이 재기할 경우 그룹 정상화는 물론 박 상무의 승계 작업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 역시 노조가 높은 장벽을 치고 있어 순탄치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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