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 큰손 2인에게 들은 ‘사채시장 비밀노트’

2010.04.27 09:26:08 호수 0호

너도나도 주포생활 “꽤나 짭짤합니다”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오면서 돈의 흐름을 좇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큰손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서민들도 조금이나마 자산을 늘리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서 돈의 향방을 빠르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사채시장 큰손들의 움직임. 지하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그들의 투자방식은 돈 흐름의 본류를 좌지우지할 정도다. <일요시사>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돈 흐름이 가장 민감하다는 명동 사채시장에서 30년째 크게 돈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64)사장과 강남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통하는 조모(62)회장을 만나 그들만의 세계를 엿봤다.


바지사장 두고 영업하던 과거와 달리 직접 진두지휘
주식시장 떠나지만 유상증자 직접 참여로 재미 톡톡


“명동은 예전부터 화려함과 절박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큰손들이 움직이는 지역인 반면 돈을 구하는 절박한 사람들이 마지막에 찾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강남으로 둥지를 옮긴 큰손들도 많지만 아직도 이곳은 돈 흐름이 가장 민감한 곳으로 통한다.”

어음시장은 동맥경화
돌파구는 ‘전면 나서기’



지난 4월20일 오후 3시 사채시장의 메카로 꼽히는 서울 명동 유네스코 빌딩 앞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 사장은 요즘 사채시장은 새로운 트렌드가 형성되면서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최근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어음시장은 개점휴업 상태라고 보면 된다”며 “별달리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어음시장이 동맥경화에 걸려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활발하게 움직여야 어음이 발행되고 어디서 받아오든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건설사 어음은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A급 어음이라고 해도 확인하고 다시 확인할 정도란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조 회장은 “현재 전주들은 확실하게 돈 될 것에만 투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현금을 움켜쥔 업자들이 많다”며 “부동산시장이나 주식시장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사실 부동산시장은 정부정책과 금리 인상 가능성 때문에 부담이고 주식시장도 1700선을 넘어 꼭지에 도달했다는 판단에 섣불리 손대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명동의 경우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나 직장인들을 주로 상대하는 전주들이 많았는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대출신청은 많아봐야 1000만원을 넘지 않는데 이마저도 연체가 되는 등 신용상태가 불량해 대출 성사되는 것이 거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 명동이나 강남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큰손들은 어느 곳에 투자를 하고 있을까.

이들에 따르면 요즈음 큰손들이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은 유상증자 참여다. 직접 작전을 짜고 증자에 참여한 뒤 개인투자자들에게 떠넘기고 나오면 자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명동과 강남 큰손들 사이에는 전환사채(CB)에 대한 인기도 높다고 한다. 이 사장은 “정해진 시간이 경과하면 채권을 발행회사의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 CB다.

CB는 채권 형태로 만기까지 그대로 보유할 수도 있고 주식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며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메리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에 따르면 전환가격이 낮고 전환비율이 높을수록 발행기업의 주가가 상승할 경우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고 있다고. 만일 발행기업의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낮으면 주식으로 전환해도 손해가 되기 때문에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채권으로 보유하면 되므로 손해를 볼 것이 없다.

조 회장은 “예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 소위 바지사장을 내세워 영업하던 것과는 달리 큰손들이 전면에 직접 나서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며 “증자 참여나 작전까지 손을 대고 있다. 이는 이전 주로 인수·합병(M&A)이나 증자 자금을 빌려주고 담보를 두둑하게 챙겨 손해 보지 않는 장사하던 것과는 달라진 양상”이라고 귀띔했다.

조 회장에 따르면 가장 많이 손을 대고 있는 방법은 돈을 떼일 위기에 처한 기업을 공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기업에 추가로 증자해 주고 시세조종까지 진행하면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이것은 ‘꿩 먹고 알 먹는’ 장사인데 외형적으로 보이는 유동자금은 몇십억원에 불과하지만 실제는 100억원대를 웃돈다”면서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후 시세차익을 챙기는 방법으로 수익과 채권보전을 챙길 수 있어 큰손들이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자금 빌려주고 두둑하게
담보 챙기는 방법 ‘싫어’

큰손들이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전면에 나서 전방위로 활동하는 이유는 자본시장법 강화와 철저해진 외부감사에 상장폐지 기업수가 늘고 있다는데 기인하고 있다고 한다. 조 회장은 “상장 폐지된 상장사들을 보면 사채시장에서 자금 조달해 연명하던 한계기업들이 대부분”이라면서 “이들에게 자금을 집행했던 큰손들이 자금회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큰 손해를 보자 직접 나서서 자금을 회수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큰손들이 자금을 굴리는 또 다른 곳은 코스닥 사채시장. 어음시장이 동맥경화에 걸리자 마땅히 돈을 굴릴 곳을 찾지 못한 일부 전주들이 코스닥 기업의 사채 인수에 나서 나름대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 회장은 “강남 큰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코스닥 사채시장은 신용도가 낮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일부 큰손들은 IB팀까지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코스닥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활발히 진행시키기 위해서 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식시장에도 ‘기웃’ 부동산시장에도 ‘기웃’
작전 짜고 전방위 활동… 수익 챙기기 확실


물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칫 해당 코스닥 기업이 자금난에 있을 경우 낭패를 보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부실 코스닥 기업들의 경우 대주주를 통한 연대보증을 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자금난에 봉착하면 최대주주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서 주가 폭락이 이어지곤 한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한편 명동과 강남을 무대로 활동하던 큰손들 중에는 아예 사채시장을 떠나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돈 앞에 의리도 신뢰도 없는 사채시장의 생리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조 회장은 “동료들 중에도 있었던 일이지만 이 세계는 수십년을 사채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하더라도 한 순간에 사기나 배반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큰손들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노리는 속성을 역이용해 한탕하려는 시장 내 배신자들이 들끓는 곳도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코스닥 사채시장
“대체제로 좋아”

이 사장은 “A급 어음을 할인해도 사실 월 1%의 수익을 얻기도 힘들다. 많은 양의 어음을 할인해야 이익이 창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며 “이에 따라 큰손 중에는 A급보다는 위험성이 높은 C급이나 D급 어음에 욕심을 내는데 그러다보니 배반자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명동이나 강남 사채시장에는 약육강식과 온갖 복마전이 난무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조 회장과 이 사장 모두 어음 발행회사에 대한 금리와 재무상태 등 정보를 정확히 파악했는데도 위변조어음의 매수, 발행 회사의 부도 등으로 인해 피해를 모두 홀연히 시장에서 사라진 동료들이 제법 된다고. 이 사장은 “얼마 전 2700억대 ‘3자 명의 CD’ 발행 브로커 일당이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도 알고 보면 우리 쪽(명동) 큰손의 작품이었다”면서 “자본금이 적어 시공능력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을까봐 걱정하고 있던 건설 시행사를 상대로 작전을 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사건으로 당시 제3자의 CD로 자금력이 뻥튀기 된 회사인 줄 모르고 투자에 나선 선의의 피해자가 많이 나타났다”며 “이를 보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시장에 몸을 담고 있지만 환멸을 느낄 때가 많다. 돈도 좋지만 정도는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동료나 선후배들을 볼 때 안타까울 뿐이다”고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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