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대부 서갑수 몰락 풀스토리

2010.03.30 09:28:35 호수 0호

잘 나가던 투자가의 끝없는 추락 “이유 있다”

국내 벤처투자의 대부로 손꼽혔던 서갑수 전 KTIC(한국기술투자) 회장이 아들과 함께 나란히 법정으로 향하게 됐다. KTIC 운영 당시 주가를 조작하고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가 검찰에 의해 드러난 탓이다. 최근 일본계 투자회사인 SBI코리아홀딩스에 경영권마저 빼앗긴 서 전 회장으로서는 한 마디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2000년대 초반 ‘벤처투자의 신화’로 꼽혔던 서 전 회장이 어쩌다 ‘기업사냥꾼’으로 전락하게 됐는지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서갑수 전 KTIC 회장 시세 조작 혐의 기소
사채업자 등 작전세력 동원…아들까지 합세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지난달 23일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서갑수 전 KTIC 회장(63)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서 전 회장의 아들인 서일우 전 KTIC홀딩스 대표(35) 등 2명을 구속기소하고 KTIC 관계자 등 11명을 추가로 불구속 기소했다.

투자사마다 대박 행진

검찰은 서 전 회장 일가가 사채자금이 투입된 외국계 펀드 등과 작전세력을 짜고 회사의 주가를 조작해 부당 이득을 취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검찰은 서 전 회장 일가가 주가 조작을 위해 회삿돈 수백억원을 빼돌리고, 모 해운회사를 인수한 뒤 회사 자산을 사채 자금 변제의 목적으로 사용한 혐의 등도 추가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 일각에선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사실 서 전 회장은 2000년대 초 국내 벤처산업의 붐을 주도했던 ‘벤처투자 1세대’다. 서 전 회장은 1986년 11월 정부의 중소기업 투자조합 결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1호 벤처캐피탈’ KTIC의 대표를 맡으면서 벤처투자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89년 8월 KTIC는 업계 최초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고, 1995년 회사가 민영화되자 서 회장이 10%가량의 지분을 매입해 인수했다.

이후 서 회장은 메디슨, 한글과컴퓨터, 카스, NHN, 메가스터디, 경덕전자, 테보테크, CNI, 알루코 등 국내의 대표적인 벤처기업들에 대한 성공적인 투자로 KTIC를 한국 벤처캐피탈산업의 일등공신으로 키워냈다. 하지만 소위 ‘벤처투자의 대부’로 불리며 급격히 세를 확장해 왔던 KTIC는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하락세를 걷게 됐다. 국내 벤처붐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KTIC의 수익성도 점점 악화되어 갔던 것.

결국 서 전 회장 일가는 경영악화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2008년 증권사 설립을 추진했고, 충분한 자금이 필요했던 서 씨 등은 해외에 펀드를 설립한 한국인 사채업자와 손을 잡고 조직적인 주가 조작에 나섰다. 검찰에 따르면 서 전 회장 일가는 2008년 3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홍콩계 헤지펀드인 퍼시픽얼라이언스에셋 매니지먼트 측에 원금 보장 약정과 현금 담보 등을 제공한 뒤 KTIC글로벌의 주식 305억원어치를 매입하도록 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 전 회장의 아들인 서 전 대표 등은 해외펀드로부터 동원한 305억원 등 모두 470억원을 차명계좌 73개를 통해 지분 투자하는 것처럼 가장해 주가를 조작했다. 이 과정에 전문 ‘작전세력’ 등 10여명이 투입됐고 그 결과 1200원대였던 주가는 최고 3505원까지 상승했다. 서 전 대표는 이렇게 오른 주가를 순차적으로 매각, 35억원의 부당 이익을 챙겼다.

검찰은 서 전 대표가 주가조작 등을 위해 계열사 자금 313억원을 횡령하고 해외펀드 등에 542억원의 채무보증을 해주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아버지인 서 전 회장은 이 중 308억원의 횡령·배임에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회사, 일본계 손으로

뿐만 아니다. 서 전 회장 일가는 지난해 운수회사인 S상선그룹을 인수할 당시 사채자금을 끌어들여 자금을 마련한 뒤 S상선의 보유 자산을 사채 변제 등에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서 전 회장 일가는 지난해 5월 사채자금 100억원을 빌려 S상선을 300억원에 인수하면서 시가 110억원 상당의 보유 주식 1950만주를 사채업자에게 담보로 제공하고 S상선과 계열사 S중공업 자금 170억원을 회사 인수 잔금과 사채자금 변제 등에 사용했다.
 
이로 인해 인수 당시 주당 1500원대였던 S상선의 주가는 200원대로 급락했다. 서 전 회장 일가의 검찰 기소로 KTIC는 지난달 24일 ‘횡령·배임 혐의발생에 따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따지겠다’는 한국거래소 방침으로 거래가 정지됐다. 현재 KTIC는 지난달 18일자로 일본계 투자회사인 SBI코리아홀딩스로 경영권이 넘어간 상태다.

이는 2008년 KTIC의 지주회사(KTIC홀딩스) 설립 당시 250억원을 투자했던 SBI가 투자실패 등 서 회장 일가의 경영책임을 물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선언한데 따른 조치다. 그동안 서 회장 일가는 법원에 SBI의 의결권행사금지가처분신청, 주가조작 혐의 고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맞섰지만 최근 현 경영진의 배임·횡령 혐의와 투자실패 책임 등이 불거지면서 경영권은 SBI의 손에 넘어가게 됐다.

결국 한 때 벤처투자산업의 신화로 불렸던 서 회장은 부실경영과 잇속 챙기기에 눈이 멀어 15여년간 일궈온 회사를 뺏기고 횡령·배임 혐의라는 불명예까지 안게 되었다. 검찰은 “벤처기업에 투자해 회사를 살려야 하는 창업투자회사가 오히려 주가 조작 등의 범행을 저질렀다”며 “경영진이 모럴해저드에 빠져 회사의 자금을 개인의 것처럼 마음대로 유용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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