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본색’드러낸 공기업 사장들

2010.03.23 09:20:31 호수 0호

프로필 관리 잘했으니 각본대로 ‘점프’


공기업 수장들이 임기 도중 줄줄이 옷을 벗었다. 사장 선임 당시 정부의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에 하나같이 공기업 살리기에 ‘올인’ 하겠다며 맞섰던 이들의 포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지방선거를 위한 ‘뜨내기’ 인사에 불과하다는 지적에도 발뺌하기 바빴던 이들은 최근 선거 출마를 위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일요시사>가 6.2 지방선거에 나선 낙하산 논란 대표 공기업 사장들을 살펴봤다. 


‘낙하산’ 인사 논란 대표 사장 줄줄이 사표
임기 절반 남기고 6·2 지방선거 출마 선언

다가오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 공기업 사장들이 잇따라 명함을 내밀었다. 조관일 전 대한석탄공사장, 최동규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배성기 전 한국중부발전 사장, 김상돈 서울메트로 사장, 최영 강원랜드 사장 등이 6월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중도 퇴임을 선언했다. 제일 먼저 스타트를 끊은 것은 조 전 사장이다. 조 전 사장은 지난해 12월 말 강원도지사 출마를 선언하며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출세 위한 날갯짓



뒤이어 지난달 12일 최 회장이 강원도지사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고, 같은 날 배 전 사장도 여수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사장은 지난 3일 퇴직 후 서울 중구청장 출마를 결정했고, 최 전 사장도 지난 11일 강원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다소 갑작스런 퇴임 선언도 있었지만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업계 대부분은 ‘놀랄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애초 이들은 선임 당시부터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과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아왔던 인물들인 탓이다.

조 전 대한석탄공사장은 지난 2008년 8월 MB정부로의 정권 교체에 맞춰 김원창 전 사장을 대신해 임명됐다. 앞서 같은 해 4월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전력이 있는 조 전 사장의 등장에 민주당은 전형적인 달래기식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한 바 있다. 김 전 서울메트로 사장 역시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 다녔다. 김 전 사장은 지난 2007년 강경호 전 사장의 사임으로 공석이던 서울메트로의 수장으로 임명됐다.

제22회 행정고등고시 출신으로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및 서울시 기획담당관, 교통국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던 김 전 사장은 취임 초기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는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의 농성에 사장실을 점거당하기도 했다. 최 전 강원랜드 사장도 지난해 3월 취임 당시부터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최 전 사장은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 제20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동작·강서구 부구청장을 거친 뒤 시울시청 산업국 국장, 서울시청 경영기획실 실장 등을 지냈다. 이후 그는 MB의 서울시장 시절 친분이 배경이 돼 정부 주요 요직의 인선 때마다 하마평에 오르는 등 관심을 모았다. 당시 최 전 사장의 강원랜드 사장 취임을 두고 일각에선 1년 뒤 지방선거 출마를 앞두고 경력 관리를 위한 준비에 들어 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낙하산’이라는 논란이 제기될 때 마다 하나같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쳐 왔다. 자신들은 잠시 자리보존을 위해 머물다 가는 ‘철새’가 아닌 공기업의 개혁과 성장을 목표로 한다며 다양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조 전 사장은 “공기업 만년 꼴지를 차지하는 대한석탄공사의 혁명을 지켜보라”고 단언했고, 최 전 사장은 “강원랜드를 아시아 최고의 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들은 취임 초기의 당찬 포부에 비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실제 석탄공사는 여전히 최악의 적자 운영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강원랜드는 지난해 11월 카지노 여직원의 거액횡령 사건이 터지면서 내부 관리조차 부실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공기업의 수장으로서 좀 더 책임 있는 경영이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조 전 사장과 최 전 사장은 결국 ‘출세’를 선택했다. 둘 다 임기의 절반 이상을 남겨놓은 채였다.

이들 뿐 아니라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대부분의 전직 공기업 수장들이 임기를 상당 기간 남겨두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 전 서울메트로 사장의 경우 2007년 취임 이후 올 1월 연임이 결정돼 내년 1월까지 임기가 1년 연장됐지만 지난 3일 사퇴했다. 배 전 한국중부발전 사장도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두고 지난 5일 옷을 벗었다.

‘덧없이 왔다 떠나버린’ 수장들 때문에 속병을 앓는 쪽은 남겨진 사람들이다. 임기 도중 갑작스런 사퇴 표명은 공사측에선 당혹스런 일일 수밖에 없다. 후임 사장 선임과 동시에 그동안의 업무 공백 최소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혹여 후임 선정이 조속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겪어야 할 여파는 더욱 커진다.

철새 아니라더니

대한석탄공사가 현재 이러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12월 말 사퇴를 선언한 조 전 사장은 춘천시에 별도 거주지와 선거사무실까지 마련하는 등 선거 준비에 만전을 기한 모습이었다. 반면 그의 사퇴 결정 이후 공사는 갑작스레 분주해졌다. 공사는 조 전 사장의 퇴임식 이후 곧바로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해 사장 후보단 모집에 들어갔지만 수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공사는 1차 선정된 후보들에 대해 전면 무효 결정을 내린 뒤 3월 후보자 재공모를 선언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각에선 장기간 수장의 자리를 비워두는 것이 또 다른 낙하산 인사를 위한 자리 보존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사는 일련의 논란들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수장의 부재로 수개월째 업무공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태를 수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기업 낙하산 인사들의 무더기 이탈은 지방선거 시즌마다 반복되어 온 고질적인 문제”라며 “공기업을 ‘출세’를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둥지쯤으로 여기는 정치권 인사들의 사고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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