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회장님 ‘적진 염탐’ 속셈

2011.06.22 06:00:00 호수 0호

‘호랑이 굴’에 몰래갔다 잡혀 대망신

적진을 염탐하는 오너들이 늘고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란 옛말처럼 경쟁사에 몰래 방문해 샅샅이 훑어본 뒤 경영에 반영하려는 의도에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설이나 발각을 우려해 체면상 숨겼지만,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아예 대놓고 드나들 정도로 과감해졌다. 대담무쌍하게 적진으로 돌격하는 오너들을 꼽아봤다.
 
‘적 알아야 백전백승’ 오너들 경쟁사 극비 방문
안방처럼 대놓고 드나들어…잠입 발각에도 당당

지난달 결혼 후 잠시 중단했던 트위터를 지난 11일부터 재개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 부회장은 지난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비밀 한 가지를 공개했다. 평소 홈플러스를 자주 간다고 언급한 것. 정 부회장은 신혼집 인근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형마트 입점경쟁을 다룬 기사와 관련해 재치 있는 글을 남겼다.

“원래 저는 홈플러스를 더 자주 갑니다.”

이어진 정 부회장의 트윗은 더욱 시선을 모았다. 정 부회장은 ‘홈플러스 회장님은 어디를 더 많이 가실까요? 아마도 이마트가 아닐까 싶네요’란 네티즌의 질문에 “홈플러스 회장님 지난주에 임원 15명 이끄시고 이마트 성수점 방문하셨습니다”라고 답했다.



신분 감춘 ‘암행시찰’

실제 홈플러스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최근 주요 임원 15명과 함께 이마트 성수점을 방문했다. 이 회장 일행은 몰래 적진에 들어갔다 이마트 측에 발각됐고, 보고를 받은 정 부회장이 트위터를 통해 이를 공개한 것이다. 홈플러스 측은 “이 회장은 이마트뿐만 아니라 다른 매장도 자주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과 이 회장은 ‘현장경영’으로 유명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장 등을 찾아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직접 본 문제점들을 수정 보완한다. 현장경영의 일환으로 적진 염탐도 마다하지 않는다. 가끔씩 경쟁사를 방문해 적진의 상황을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신분을 감춘 ‘암행시찰’식으로 다녀간다고 한다.

적진을 염탐하는 오너들이 늘고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란 옛말처럼 경쟁사에 몰래 방문해 샅샅이 훑어본 뒤 경영에 반영하려는 의도에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설이나 발각을 우려해 체면상 숨겼지만, 이제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아예 대놓고 드나들 정도로 과감해졌다.

대담무쌍하게 적진으로 돌격하는 대표적인 오너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다. 신 회장은 재계에서 유명한 ‘은둔 오너’다. 주요 공식석상 등 외부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현장을 중요시하는 방침은 여느 오너와 다를 바 없다. 언론 등에 노출을 꺼려하는 그가 선택한 현장경영이 바로 암행 순시다. 신 회장은 사전 통보는 물론 별도 수행원 없이 사업장을 극비리에 둘러본다. 직원들 근태 등을 점검한다. 화재·안전사고의 위험은 없는지 체크하는 것도 체크 포인트다.

수시로 ‘안방’을 드나드는 신 회장도 적진에 들어간 적이 있다. 2009년 5월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신세계 센텀시티를 살펴본 것. 롯데백화점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곳이라 관심을 모았다. 이 백화점 한 고객의 카메라에 신 회장의 방문 장면까지 포착돼 큰 화제가 됐었다. 신 회장은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과 롯데 센텀시티점 점장 등과 함께 신세계 센텀시티를 살펴보고 롯데 센텀시티점으로 되돌아갔다. 앞서 신 회장은 2002년 3월 이마트 일부 점포를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실적이 좋은 이마트 매장들을 찾아 업계에선 경쟁사의 장점을 배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신 회장과 라이벌 관계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역시 롯데백화점의 소공동 명품관 에비뉴엘을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2005년 5월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과 함께 에비뉴엘을 두 차례나 찾아 매장을 둘러보고 상당액의 물품을 구입해 눈길을 모았다. 부녀는 백화점내 레스토랑에서 식사까지 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회장이 경쟁 업체의 현황을 직접 확인하러 나온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당시 신세계 측은 “이 회장은 평소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롯데 뿐 아니라 현대, 갤러리아 등도 둘러본다”며 “신 회장도 신세계 이마트 매장을 둘러보는 만큼 그런 수준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타사 모델하우스를 자주 찾는다. 정 회장은 2009년 12월 임원들을 대동하고 일산에 위치한 롯데건설과 대원건설의 ‘교하 캐슬&칸타빌’모델하우스와 두산건설의 ‘두산위브더제니스’모델하우스를 비밀리에 방문했다. 현장 관계자는 “정 회장은 별다른 브리핑을 받지 않고 이 지역의 주요 수요층은 어디인지, 주변 시세 및 분양가는 얼마인지 등 비교적 간단한 질문만 했다”고 전했다.

이어 정 회장은 지난 4월 임원들과 함께 김포시 고촌읍에 있는 대우건설과 한라건설, 반도건설의 모델하우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 회장은 각 회사별 입지와 평면설계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갔다는 게 이들 건설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정 회장은 평소에도 현장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며 “김포한강신도시 모델하우스 방문도 같은 연장선에서 보면 된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2005년 12월 항공업계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임원들이 경쟁 업체인 대한항공 항공편을 이용한 일이 알져진 것. 박 회장과 그룹 임원 5명은 광주에서 행사를 마치고 귀경할 예정이었지만, 아시아나항공기가 정비 불량으로 출발이 지연되자 대한항공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 얘기는 2001년 아시아나항공 노조의 파업으로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자사 항공편이 없어 대한항공 국내선을 이용해 광주로 내려간 일화와 함께 업계에 회자됐다.

“갔는데, 그게 뭐?”

사실 박 회장은 비행기 탈 일이 있으면 아시아나항공 비행편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른 항공사는 물론 종종 대한항공도 이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 회장이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것은 승무원들의 서비스와 태도 등을 직접 체험하기 위한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도 경쟁사 잠행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다. 박 회장은 틈만 나면 경쟁사 매장을 둘러본다. 양복 대신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수행원도 없이 경쟁사 매장에 들러 시장조사를 한다. 그동안 언론 등에 얼굴이 노출되지 않은 만큼 발각될 위험도 적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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