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수상한 사외이사’ 블랙리스트 대공개

2011.05.23 13:12:08 호수 0호

“이사님은 우리 편, 해 볼 테면 해보시지~”

[일요시사=정혜경 기자] 금융위원회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금융위가 제 할 일을 못해서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부실의 늪에 빠졌다는 것이다. 서슬 퍼런 비난의 화살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그러자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헐레벌떡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회사의 상근감사제를 감사위원회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의 낙하산 감사가 저축은행의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결정에 금융권은 냉소를 보내고 있다.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노릇을 하는 마당에 경영비리를 캘 수 있겠냐는 것이다.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금융회사의 상근감사제를 폐지하고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금융감독원의 ‘낙하산 감사’가 저축은행 부실을 키웠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금융사들은 현재 상근감사 1인이 내부통제를 하는 감사제도를 운영하거나 상근감사가 포함된 3명 이상의 감사위원회를 두고 있다. 현재 감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하는 금융사는 금융지주회사와 은행, 자산 2조원 이상의 보험사, 자산 3000억원 이상의 저축은행 등으로 3분의 2를 사외이사로 채우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사외이사 전원을 감사위원으로 채우겠다는 게 김 위원장의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여러 명이 감시하다 보면 저축은행 비리에서 드러난 것처럼 상근감사와 경영진의 유착으로 인한 폐해를 막을 수 있는 것을 장점으로 강조했다.
이 같은 결정에 금융권은 한결같이 냉소적인 반응이다. 대주주나 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자리를 채운 경우가 허다한 때문이다. 사외이사가 거수기로 전락한 마당에 경영비리를 캘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낙하산이 부실 키웠다

사외이사는 경영진과 관련 없는 외부 인사를 이사회에 참가시켜 대주주의 독단 경영과 전횡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1998년 사외이사를 처음 도입, 의무화하고 있다. 초창기만 해도 주로 학계, 시민단체 등의 인사가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이미 자취를 감췄다. 사외이사진을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로 구성하는 게 관행이 돼 버렸다.

그 표면적인 이유에 대해 금융권 인사들은 ‘전문성’을 든다. 금융회사 특성상 업무이해도가 높아야 하기 때문에 정관계에서 전문지식과 경험을 쌓은 인물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론 ‘보험용’ 내지는 ‘로비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다보니 정관계 고위급 인사를 얼마나 영입했느냐가 금융회사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는 후문이다.

실제, 주요 금융회사에는 과거 재무부(현 금융위)나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고위직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우선 은행업계의 경우 우리은행은 은행감독원장을 지낸 이용만씨와 예금보험공사 법무실장을 역임한 이강식씨, 국민은행은 한국은행 조사2부 출신의 김홍범씨, 하나은행은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을 지낸 김영섭씨와 금감원 총무국장 출신의 김영기씨 등을 사외이사로 기용했다. 이외에도 기업은행은 김동원(금융감독원 부원장보)씨, 제일은행은 김성진(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씨와 이광주(한국은행 국제국장)씨 등이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금융당국, 감사위원회 역할 확대 방안 제시
경영진 입맛에 맞는 인사…“내부감시 가능?”

저축은행권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솔로몬저축은행에는 재정경제부 국장을 지낸 장태평씨, 영남저축은행은 한국은행 부총재보를 역임한 이상근씨, 토마토저축은행 금융감독원 기획조정국 출신의 정상구씨와 중부지방국세청 조사국장을 역임한 박인목씨, 푸른저축은행 금융감독원 보험검사국 팀장을 지낸 김홍식씨, 제일저축은행에는 감사원장을 역임한 이종남 씨, 대전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김창섭씨, 은행감독원 출신의 이국희씨 등이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생보업계도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생명에는 재정경제부 지역특구기획단장을 지낸 오동환씨와 금감원 출신의 정기승씨, 대한생명은 예금보험공사 인사지원부장을 역임한 김현철씨, 동부생명은 총무처장관 출신의 이문석씨와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지낸 김영식씨, 동양생명은 재정경제부 차관을 역임한 엄낙용씨와 대통령비서실 재정경제비서관 출신의 김호식씨가 사외이사로 있다.

상근감사가 감사위보다 효율적

또 증권업계의 경우 삼성증권에 이영균(한국은행 부총재보)씨, 키움증권에 정태철(금융감독원 국장)씨와 변재진(기획예산처 재정전략실장)씨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사외이사 전원이 감사위원회 멤버로 활동하게 될 경우 금융당국의 움직임엔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금감원 출신 사외이사들도 많아 금감원 출신의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

이와 관련, 한 금융관계자는 “실무 현장을 떠난 고위직 정관계 출신이나 감독기관 인사들이 대거 포진한 사외이사로 ‘감사위원회’를 구성한다 해도 기존의 상근감사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오히려 상근감사가 감사위원회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상근감사 선임에는 지분 3% 이상 대주주는 참여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소액주주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단 얘기다. 반면, 사외이사는 이런 장치가 없다. 이로 인해 소규모 금융회사들이 소액주주들의 견제를 의식해 감사위원회를 앞 다퉈 도입,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병폐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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