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비리의 온상’ 부산저축은행그룹 실체

2011.05.06 10:11:37 호수 0호

저축은행의 탈을 쓴 ‘부동산 투기꾼’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전국 최대 규모의 건설시행사’. 검찰이 규정한 부산저축은행그룹의 실체다. ‘저축은행의 탈을 쓴 부동산 투기꾼’이란 얘기다. 불법인출사태에서 촉발된 이번 수사를 진행하는 내내 검찰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도저히 금융기관으로 볼 수 없다”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검찰이 이처럼 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대체 뭘까. 부산저축은행 이면에 꿈틀대던 충격적인 불법과 비리를 <일요시사>가 낱낱이 공개한다.


페이퍼 컴퍼니 120곳 세워 4조5942억 불법대출
성공 시 돈 챙기고 실패 시 예금자에 책임 떠넘겨



박연호 부산저축은행그룹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불법 대출이 시작된 건 지난 2006년 5월. 영업정지가 내려지기 두 달 전인 지난해 12월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대부분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특수목적회사(SPC)를 세워 독립사업체인 것처럼 위장했다. 처음 SPC를 설립할 때는 임직원 지인들의 차명을 이용했다. 하지만 수법은 갈수록 대담해졌고 컨설팅 회사나 공인회계사를 가담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세운 SPC는 무려 120곳. 여기에 4조5942억원을 불법 대출해줬다. 고객돈 9조1954억원 가운데 절반을 부동산 투기에 동원한 것이다. 상호저축은행법은 저축은행의 부동산 투자나 제조업 진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박 회장 사금고 전락

투자결정은 매일 오전 박 회장과 김양 부회장, 김민영 부산·부산2저축은행 대표 등이 참여하는 임원회의에서 이뤄졌다. 임원회의 결정에 따라 부산저축은행 영업 1∼4팀 소속 직원 16명이 SPC 120곳의 법인 인감과 통장을 관리하며 대출해줬다. 이 임원회의에는 금감원 국장 출신 감사들도 참석했다. 경영진을 감시해야 할 감사들이 대주주 경영진의 부정행위를 눈감아주는 걸 넘어 직접 범죄에 발을 담근 것이다.

박 회장은 닥치는 대로 사업에 손을 댔다. 부동산은 물론 아파트 건설업, 골프장, 납골당, 태양광발전, 운전학원, 선박 등 마구잡이로 투자를 했다. 해외 사업도 가리지 않았다. 대 캄보디아 신도시 건설사업과 인도 발리 리조트 개발 사업 등에도 돈을 쏟아 부었다.

사업성 검토는 생략한 막가파식 투자였다. 그러다 보니 지난해 말 현재 120곳 중 정상적으로 사업이 진행된 곳은 21곳(17.5%)에 불과했다. 99곳이 부실영업을 한 셈이다.

박 회장이 이처럼 고객돈을 함부로 굴린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SPC 사업이 성공하면 이익을 챙기면 되고, 실패하면 예금자들에게 손해를 떠넘기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 대주주와 경영진에겐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란 얘기다.

박 회장은 또 직영 SPC에 내준 대출금이 이자 연체 등으로 부실화되자 임직원 친·인척 명의로 7500억원에 달하는 무담보 신용대출을 일으켰다. 이 돈은 기존 대출금을 돌려막는 데 투입됐다. SPC에 직접 대출해준 4조5942억원을 포함, 실질적인 불법 대출금이 5조3442억원으로 불어나는 셈이다.

박 회장이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묘책으로 택한 것은 분식회계였다. 자기자본비율(BIS)을 높게 조작한 것이다. 2008년 7월부터 2년간 분식회계로 처리한 액수만 무려 2조4533억원이다. 2003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의 분식회계 규모가 1조5900억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조작된 BIS비율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투자자도 다수다. 빈껍데기만 남은 부산저축은행을 우량한 것으로 착각하고 투자했다가 돈을 떼인 투자자만 2947명, 투자액은 1132억원에 달한다. 부산저축은행은 또 가짜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1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이 500억원씩 증자에 참여했다. 두 곳은 부산저축은행 부실로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제돈 챙기기 급급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대주주들은 거액의 배당금과 연봉으로 배를 불렸다는 것이다. 2005년부터 2010년 사이 박 회장 등 대주주 경영진 4명은 총 640억원의 배당금 가운데 329억 원, 연봉과 상여금은 191억 원을 각각 챙겼다. 심지어 회삿돈으로 박 회장의 개인빚을 갚기도 했다. 부산·부산2저축은행이 다른 곳에 200억원을 대출해주는 과정에서 44억5000만 원을 떼 내 채무를 박 회장의 채무를 변제하는 데 사용했다. 저축은행이 박 회장의 사금고로 전락된 것이다.

이들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한 건 영업정지를 목전에 두고서다. 박 회장은 영업정지 전 부인의 명의로 된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1억7100만 원을 빼갔다. 또 부산저축은행과 중앙부산저축은행에서 1억1500만원과 5600만원을 각각 출금했다.

영업정지 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빼돌린 정황도 발견됐다. 박 회장은 영업정지 직후 자신의 임야가 압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친구 명의로 10억 원의 근저당을 설정했고, 김양 부회장은 영업정지 전후 주식 계좌에서 수억 원의 현금을 빼서 친척에게 줬다. 고객이야 어찌되던 제몫만 챙기면 된다는 심보다.

결국 서민의 돈을 안전하게 지켜주겠다던 약속은 사탕발림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들의 ‘고약한 행태’에 예금자보호법상 보호 대상이 아닌 서민 3만143명은 피땀 흘려 모은 돈 2882억원을 고스란히 떼일 처지다. 사법당국의 강력한 조치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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