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가 골육상쟁사 풀스토리

2011.03.15 09:50:28 호수 0호

‘조씨 전쟁’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진가 형제들이 큰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전히 살얼음판 위를 걷는 형국이란 것이다. 왜일까. 그 이유를 들춰봤다.

‘부암장 소송’ 일단락… 형제간 분쟁 모두 마무리
‘조건부 화해’ 갈등 불씨 여전 “해운 분리 휴화산”


고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자택이었던 ‘부암장’을 둘러싼 한진가 2세들의 소송이 일단락됐다. 서울고등법원 민사26부에 따르면 조 창업주의 차남 조남호 한진중공업그룹 회장과 4남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이 장남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암장 지분 이전 및 기념관 건립 소송’과 관련해 양측은 최근 법원이 제시한 화해 권고안을 받아들였다.
 
여전히 살얼음판

조남호·조정호 회장은 “부암장을 선친을 위한 기념관으로 만들기로 합의해 자신들 상속분을 조양호 회장 소유인 정석기업에 넘겼는데 형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2008년 1억원씩의 손해배상과 지분 이전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지난해 1심 판결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고, 즉각 원고 측이 항소를 제기해 심리가 진행됐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여러 차례 조정을 시도했으나 결론에 이르지 못하다 이번에 법원의 화해 권고안을 수용했다. 한진그룹 측은 “법원이 지난 1월31일 화해 권고안을 제시했고 특별한 이의 제기가 없어 권고안이 최종 확정됐다”며 “비밀 유지 조항이 있어 화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이로써 한진가 형제 사이에서 벌어졌던 법적 분쟁이 모두 끝났다”고 덧붙였다.

한진가 형제들의 분쟁이 시작된 것은 2002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창업주가 세상을 뜨자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유산 배분 절차를 밟던 2세들이 재산 싸움을 벌인 것. 조 창업주가 장기간 혼수상태로 입원 치료를 받다 사망한 탓에 확실한 유언을 남기지 못한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장남 조양호 회장과 3남 고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 차남 조남호 회장과 4남 조정호 회장이 각각 편을 나눠 갈등을 겪었다. 가족이란 관계는 없었다. 진흙탕 싸움도 불사하는 등 가히 혈투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서로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목적은 ‘쩐’이었다. 차·4남에 비해 장·3남이 비교적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차·4남이 반발했고, 급기야 법정다툼으로 비화됐다. 업계 관계자는 “한진가 형제들은 부친의 기일을 두고 각각 음력과 양력을 주장하면서 이미 틀어졌다”며 “그때부터 갈등이 조금씩 불거지다가 계열 분리 작업이 진행되면서 수면 위로 완전히 떠올랐다”고 말했다. 처음 맞붙은 사건은 ‘정석기업 주식 양도’건이다.

조 창업주의 유언장이 조작됐다고 의심한 조남호·조정호 회장은 2005년 12월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정석기업의 주식 일부를 넘기거나 주식가액에 해당하는 3억4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한진중공업그룹과 메리츠금융그룹이 한진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된 직후였다. 2006년 10월 법원의 강제조정에 따라 조양호 회장이 동생들에게 주식을 돌려줬지만 이는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더 이상 분란은 없다”던 한진그룹 측의 호언장담도 금세 묻혔다.

특히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06년 11월 조수호 회장의 별세에도 불구하고 남은 세 형제 간 갈등이 계속됐다. 당시 빈소에 모인 이들은 서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집안 어른들의 중재도 소용없었다. 한진가 형제들은 면세점 납품권, 김포공항 주유소 운영권, 부암장 기념관 건립 등을 두고 소송과 항소를 반복했다. 눈여겨 볼 점은 송사 봉합 배경이다. 총 4건의 법적 분쟁이 모두 일단락됐지만, 단 한 건도 자의적으로 손을 잡은 적이 없다. 모두 법에 의존해야 했다.

이번 부암장 소송도 마찬가지다. 법원이 제시한 화해 권고안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분위기가 역력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각에선 ‘10년 묵은’ 형제간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직접 화해하기 힘든 상황까지 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툼이 끝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론 미묘한 긴장 관계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부암장 소송이 화해로 마무리됨에 따라 표면적인 형제 간 싸움은 일단 끝났다”며 “하지만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조정호 회장이 실제로도 화해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는 “10년 동안 불신과 반목이 쌓이고 쌓였다. 어찌 보면 오랜 앙금이 쉽게 씻겨 내려갈 것이란 기대가 무리일 수 있다”고 했다.


미묘한 긴장 관계

한편으론 한진그룹과 한진해운 사이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계열 분리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계열사로 있다. 현재 고 조수호 전 회장의 부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하고 있지만 대한항공 16.71%, 한국공항 10.7%, 한진 0.04% 등 한진그룹 측이 27%가 넘는 한진해운홀딩스 지분을 갖고 있다. 최 회장 측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한진해운은 홀로서기를 위해 몸부림 치고 있지만, 아직 높은 ‘한진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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