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재벌후계자 체크 ⑮현대그룹 정지이

2010.12.21 11:13:32 호수 0호

경영? 남편 잘 만나야 될 텐데…

입사 3년 만에 전무… 최초 ‘모녀 승계’가능성
양대 컨트롤타워 장악 “외아들·사위 곧 부상”

한 나라의 경제에서 대기업을 빼곤 얘기가 안 된다. 기업의 미래는 후계자에 달렸다. 결국 각 그룹의 후계자들에게 머지않은 대한민국 경제가 걸려있는 셈이다. 잘 할 수 있을까. 우리 경제를 맡겨도 될까. 불안하다.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재계 ‘황태자’들을 체크해봤다. 열다섯 번째 주인공은 현대그룹 정지이씨다.

사방이 적이다. 어느 누구하나 거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외톨이 꼴이다. 말 많고 탈 많은 현대건설을 놓고 홀로 쓸쓸히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처지다. 그저 충성심 하나로 보좌하는 ‘그림자다운 그림자’가 없는 설움도 뼛속 깊숙이 느끼는 눈치. 남편(고 정몽헌)이 없는 요즘 같아선 듬직한 ‘아들놈’이 부러울 만하다.



멀고도 험한 대물림

현 회장은 1남2녀(지이-영이-영선)를 뒀다. 아직까지 현 회장의 지명이 없었지만, 그룹 후계작업은 이들을 중심으로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핏줄로 대물림이 이뤄진다는 전제에서다.

현재로선 장녀 지이씨가 자천타천 후계자 ‘1순위’다. 올해 33세인 지이씨는 현 회장의 딸이자 ‘경영 파트너’다. 지금까지 걸어온 ‘현정은 밀착 행보’를 보면 재계에서 최초로 ‘모녀 승계’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현 회장도 2003년 8월 졸지에 남편을 잃고 서울 적선동 사옥으로 출근한 이후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지이씨에게 의지해 왔다. 지이씨가 후계자로서 집중 조명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게 그룹 관계자의 전언이지만, 그는 이미 ‘왕좌’에 바짝 다가서 있다.

지이씨는 대기업 총수 자녀들 중 승진이 가장 빨랐다. 입사 2년 만에 임원이 됐고, 다시 1년도 채 되지 않아 점프했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학사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석사를 마친 지이씨는 잠시 외국계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하다 2004년 1월 현대상선 평사원으로 입사, 이듬해 과장으로 승진한 뒤 2006년 3월 현대U&I로 자리를 옮기면서 상무에 오른데 이어 그해 12월 전무로 승진했다. 현재 현대상선 전무도 겸임하고 있다.


통상 일반 직원이 입사해 20여년 이상 일해도 임원으로 승진하기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이씨의 ‘스페셜 코스’는 파격 그 자체다. 오너 자녀들의 ‘초고속 승진’과 비교해도 이쯤 되면 ‘초광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룹 지배력도 다지고 있다. 지이씨는 현 회장(59.21%)과 현대상선(19.74%)에 이어 현대U&I 지분 7.89%를 갖고 있다. 현대U&I는 ‘현대로지엠→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로지엠’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 형태의 그룹 지배구조에서 한 축인 현대로지엠(25.44%)과 이번 현대건설 인수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그룹의 경영·투자전략 자문을 맡고 있는 현대투자네트워크(20%)의 주요주주다. 최근엔 상장설까지 나돈다.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체 현대U&I는 2006년 421억원, 2007년 672억원, 2008년 852억원, 지난해 947억원을 기록하는 등 2005년 설립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왔다. 다만 대부분 그룹 물량을 받고 있다는 점이 흠이다.

현대건설 인수가 고비

주목할 대목은 나머지 두 자녀의 경영 참여도 임박했다는 점이다. 올해 26세인 차녀 영이씨와 25세인 외아들 영선씨가 주인공. 미국 유학 중인 이들 남매는 졸업하는 대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을 것으로 보여 곧 ‘포스트 현정은’구도에 가세할 전망이다.

그중에서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일선 BNG스틸 사장 등 이미 경영전면에 나선 사촌형들과 같은 ‘선(宣)’자 돌림인 영선씨의 차기 후계구도를 염두에 둔 행보에 시선이 쏠린다. 아무리 재계에 ‘여풍’이 거세다지만, 후계 로드맵에서 아들을 제외할 수 없는 탓이다.

일단 영선씨는 2008년 8월 현대로지엠이 보유한 현대투자네트워크 지분(20%)을 전량 매입하면서 발판을 다졌다. 현대상선(0.01%)과 현대로지엠(0.13%) 지분도 있다. 항간에선 한때 영선씨의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하다는 근거로 ‘지병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그룹 측은 2008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를 마친 점을 들어 터무니없는 소문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이재용·부진, 신세계의 정용진·유경, CJ의 이재현·미경, 한진의 조원태·현아 등이 재계에서 대표적 남매경영 사례”라며 “영선씨가 경영일선에 뛰어들면 누나 지이, 영이씨와 함께 이같은 남매경영 체제를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후계작업 과정에서 출현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돌발 변수도 배제할 수 없다. 현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현 회장은 그룹 주력사인 현대상선의 지분이 1.6%밖에 없다. 우호지분을 싹싹 긁어모아야 40%가량 된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17.6%), 현대중공업 자회사인 현대삼호중공업(7.9%), KCC(5%) 등 범현대가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탓이다. 현 회장은 현대상선 지분 8.3%를 보유한 현대건설을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라도 기필코 ‘먹어야’하지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도 논란이 적지 않아 뭐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만약 현대건설 인수가 뒤집어질 경우 현대상선은 물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이 위험할 수 있다.

일각에선 ‘정씨’가 아닌 현 회장의 친정인 ‘현씨’일가의 부상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그룹 지배구조상 현 회장의 모친 김문희 용문재단 이사장이 ‘절대 권력’을 쥐고 있어서다. 또 딸들의 사위에게 ‘옥새’가 넘어갈 가능성도 점쳐진다. 사위가 그룹 회장직에 오른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 등이 모델이다. 현 회장의 사위가 누가 될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그만큼 현 회장에겐 두 딸의 결혼이 중요할 수 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