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대기업 입단속 대작전 왜?

2010.11.16 09:55:53 호수 0호

“닥쳐!” 한화·태광·C& 꼴 날라

재계가 집안 단속에 나섰다. 시스템 정비 등 사내 보안을 강화하고 있다. 문제가 될 만한 소지를 없애거나 자물쇠를 채웠다.

특히 신경 쓰는 부분은 ‘사람’이다. 소수의 임직원이 다수의 또 다른 임직원을 감시하는 형국이다. 이미 나간 옛 식구들도 예외가 아니다. 일일이 동향을 감시하는 동시에 어르고 달랜다. 재계가 갑자기 집안 단속에 나선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내부 고발 막아라’ 극비 취급 임직원 철통 통제
옛식구도 감시 대상…쫓겨난 ‘불만자’ 예의주시


얼마 전 모 그룹 대강당. 이 그룹은 주요 임원들을 대상으로 특별 교육을 실시했다. 임원의 기본인 리더십과 임원으로서 갖춰야 할 도덕성, 품위 등의 소양을 중심으로 강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중간에 유독 눈길을 끄는 교육이 있었다. 바로 보안이다. 회사의 비밀유지 수칙을 되새겨주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함부로 업무를 입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주입을 반복했다.



또 “기자들과의 접촉을 자제할 것”도 신신당부했다. 내부 일을 외부로 발설하지 말라는 일종의 엄포인 셈이다. 이 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이날 임원들을 상대로 대 언론 원칙을 강의했는데, 한마디로 “입 다물라”는 얘기였다.

보안, 최고 수준

대기업들이 임직원들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보안교육과 함께 보안 지침을 다시 만든 회사도 있다.

사내 대외비 문건의 경우 관련 없는 부서 및 관계자와 공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협력업체와의 자리나 일반 회식 등 사석에서도 기밀은 물론 내부 얘기 자체를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부정보에 깊숙이 관여했던 퇴직자, 특히 쫓겨난 불만자들이 우선 감시 대상이다.

이들을 항시 지켜보는 전담팀까지 등장했다. ‘당근’도 적절히 이용한다.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옛 식구들을 섭섭지 않게 대우해주는 대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대기업들이 부쩍 ‘사람’에 공들이는 이유가 뭘까. 왜 전·현직 임직원들의 입단속에 나선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내부 고발’때문이다.

최근 재계를 표적으로 돌아가는 검찰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는 상황에서 각종 비리 제보가 사정기관에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관련자들의 귓속말이다. 해당 기업은 한 건만 터져도 쑥대밭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다. 사실 여부를 떠나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큰 홍역을 치를 수 있다. 기업들이 소소한 입방아에도 화들짝 놀라는 이유다.


무엇보다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대기업들이 모두 내부 고발로 진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은 재계를 더욱 긴장시킨다.
‘검풍’이 휘몰아친 곳은 한화그룹, 태광그룹, C&그룹 등이다. 이들 기업은 하나같이 내부자의 제보가 결정적으로 검찰을 움직이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임원 등 관련자들을 줄줄이 소환해 조사하는 한편 그룹 계열사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한화그룹의 비자금 의혹 수사는 한 금융계열사의 퇴직 직원의 제보에서 비롯됐다. 주인공은 윤모씨다.
2005년 과장으로 퇴직한 윤씨는 지난 6월 금융감독원에 차명계좌 등 증거와 함께 “한화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고 제보했다.

금감원은 사건 관련 기록 일체를 대검 중수부에 넘겼고, 서울서부지검에 사건이 배당됐다.
윤씨가 제보하게 된 이유와 배경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는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잠적해 행방이 묘연하다.

태광그룹도 결정적인 제보에 의해 수사가 시작됐다. 태광그룹 비자금 수사는 의혹의 정점에 있는 오너일가의 소환을 앞두고 있다. 종반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검찰은 그동안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각종 자료와 관련자 조사 내용을 토대로 비자금의 줄기를 잡았다. 태광그룹 수사가 단기간에 그룹의 심장부를 겨냥한 것은 내부 고발자가 건네준 구체적인 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윤배 서울인베스트 대표는 태광일가의 불법 증여 상속과 비자금 조성 의혹을 처음 제기했다. 박 대표는 2002년부터 3년 동안 태광그룹 구조조정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서울인베스트는 구조조정 및 인수합병 전문기업으로, 약 3%의 지분을 보유한 태광산업 소액주주를 대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상한 냄새를 맡았고, 지난 1년9개월간 태광그룹 비리를 파헤쳤다. 해고된 태광 핵심 측근들로부터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했다는 후문이다.

제보 한건에 쑥대밭

박 대표는 올해 검찰에 직접 캔 비리 자료와 증거 서류를 넘겨줬고, 지금까지 수차례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는 제보 배경에 대해 “태광일가의 부적절한 행각을 용납할 수 없었다. 비리 폭로한 것은 기업의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C&그룹 수사는 이미 확인된 비자금 조성에 이어 정·관계 로비로 확대되고 있다. 검찰은 임병석 회장과 C&그룹 내부 비리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로비 의혹과 관련된 단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엔 임 회장을 7년간 가까이서 보좌한 수행비서 김모씨와 임 회장과 불화를 겪었던 전·현직 임원들의 제보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전언이다.

대기업 비리에 대한 내부고발은 이번뿐만 아니다. 2007년 김용철씨의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폭로가 대표적이다. 앞서 2003년 SK그룹의 분식회계와 2006년 현대차의 비자금 조성 역시 내부 인사들의 제보로 세상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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