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기막힌 연고지 생존론

2010.11.09 10:27:31 호수 0호

신흥 4룡중 호남룡 ‘죽고’ 영남룡 ‘살고’


IMF 전후 M&A 급부상 다크호스 4인방 희비
‘외풍’ 맞고 공중분해… 앞만 보고 승승장구

2000년대 들어 재계 다크호스로 떠오른 중견그룹 오너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M&A 귀재’ ‘자수성가 신화’로 주목받던 ‘신흥 4인방’이 주인공. 둘은 주저앉은 반면 나머지 둘은 잘나간다. 우연일까. 고향과 기업 기반 지역에 따라 울고 웃은 모양새다. 불과 몇년 전까지 재계 샛별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4룡’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임병석, 허재호, 강덕수, 최평규’
불과 몇년 전까지 재계 ‘신흥 4인방’으로 종횡무진 했던 기업인들이다. 이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거침없는 인수·합병(M&A)을 통해 갑자기 그룹 몸집을 불려 ‘M&A 귀재’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처지가 다르다. 둘은 기세등등한 모습이 온데간데없다. 사세가 급격히 기울더니 ‘외풍’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에 비해 나머지 둘은 여전히 승승장구 중이다. 전혀 위축 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엎어진 2인방과 잘나가는 2인방이 각각 동향이란 사실이다. 전자가 호남, 후자가 영남 쪽이다. 우연치곤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호남기업 ‘울고’

임병석 C&그룹 회장의 고향은 전남 영광이다. C&그룹도 호남에 연고를 두고 성장해 왔다. 광주 석산고와 목포 해양대를 졸업한 그는 5년 동안 마도로스(항해사)의 길을 걷다 30세 때인 1990년 자신의 돈 500만원에 4500만원을 빌려 칠산해운을 설립, 그룹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회사명을 자신의 출생지인 영광 칠산 바다에서 따왔을 만큼 고향과 바다에 대한 애착이 각별했다.

사업 초기 선박과 화물 중개업만 하던 그는 5년간 번 돈으로 자기 배를 마련한 뒤 1995년 회사 이름을 쎄븐마운틴해운으로 바꾸고 해운업에 본격 진출했다. 임 회장이 혜성처럼 부각된 것은 쎄븐마운틴그룹이 2002년 법정관리 중이던 세양선박을 인수하면서다.

이어 황해훼리, 필그림해운, 한리버랜드, KC라인, 진도, 우방, 생활경제TV 등을 잇달아 먹어치우며 C&그룹(2006년 사명 교체)을 매출 2조원짜리 중견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한때 계열사가 40개가 넘기도 했다.

그러나 ‘임병석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7년 조선업 진출이 발목을 잡았다. 무리한 M&A의 후유증을 겪고 있던 와중에 이듬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그룹 전체가 자금난에 빠졌다. 직원들의 월급까지 밀릴 정도로 나빠졌다.

임 회장은 버티다 못해 주요 계열사 매각에 나섰지만, 수렁에 빠진 회사들을 거둘 곳이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급기야 최근 불법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다 결국 사기 및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되면서 C&그룹은 회생은커녕 공중분해될 위기에 처했다.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도 임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이다. 광주공고를 나와 1981년 광주·전남을 기반으로 한 대주건설을 설립한 뒤 2008년 말 기준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주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당시 연매출은 2조2000억원에 달했다.

물론 그 계기는 M&A였다. 두림제지, 대한화재, 대한조선, 광주일보, 동양상호저축은행 등을 잇달아 인수한데 이어 뉴질랜드 대주하우징, 대주개발, 대한기초소재, 함평다이너스티, 광주방송 등도 설립했다.

그중에서도 2005년 대우건설 인수전에 출사표를 던져 유명세를 탔다. 성공하진 못했으나 인수전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사세를 과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2007년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500억원대 탈세 사실이 드러나면서 먹구름이 드리웠다.
 
국세청은 허 회장을 탈세 지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허 회장은 2005년부터 2년 동안 법인세 508억원을 포탈하도록 지시하고 회삿돈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2심에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대주건설이 최종 부도 처리되는 등 사실상 그룹은 와해된 상태다.
‘신흥 4인방’중 ‘호남 2인방’이 몰락한 반면 ‘영남 2인방’은 여전히 거침없이 질주해 묘한 대비를 이룬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경북 선산이 고향이다. STX중공업, STX엔진, STX엔파코 등 그룹의 주요 계열사들도 경남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다. 강 회장은 2000년 경남 창원에 있던 쌍용중공업 대표이사로 선임된 뒤 사재를 털어 회사를 인수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는 ‘뱃고동’을 울렸다.

STX그룹은 창립 10년도 안 돼 재계순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 밑으론 신세계그룹, CJ그룹, 동부그룹 등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그룹들이 즐비하다. 성장 비결은 역시 M&A다. 강 회장은 활발한 M&A를 통해 꾸준히 그룹 몸집을 불려왔다.
 
2000년 쌍용중공업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대동조선, 2002년 산단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 등을 차례로 품에 안으면서 재계 판도를 바꿨다. 지난해엔 유럽연합(EU)으로부터 노르웨이 크루즈선 업체 아커야즈를 인수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M&A시장에선 STX그룹이 ‘단골손님’일 정도로 매물 후보군에 빠짐없이 거론되고 있다. 그만큼 ‘실탄’이 넉넉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하나둘 늘어난 계열사가 20개에 달한다. 매출은 그룹 출범 당시 2600억원에서 지난해 25조원으로 100배 가까이 증가했다.

강 회장의 내년 목표는 매출 30조원이다. STX그룹은 이 목표가 현실화되면 출범 10년 만에 재계 10위권 진입도 넘볼 수 있게 된다.
최평규 S&T그룹 회장도 ‘경상도 사나이’다. S&T중공업, S&T모터스, S&T솔루션, S&TC 등 주요 계열사가 모두 경남에 자리 잡고 있다.

영남기업 ‘웃고’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경남고를 졸업한 최 회장은 1979년 열교환기와 발전 설비를 제조하는 삼영열기공업(현 삼영)을 설립했다. 한우물만 파던 최 회장은 2002년 상호저축은행 인수를 시작으로 통일중공업, 호텔설악파크, 대화브레이크, 효성기계공업 등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재계의 신흥강자로 급부상했다.

HMC증권은 지난 2월 M&A 성장 그룹 비교 보고서에서 “두산그룹과 STX그룹, S&T그룹 가운데 S&T그룹이 M&A를 가장 잘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S&T그룹은 현재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주요 계열사들은 무차입 경영 중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1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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