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기획특집 Ⅰ> 정치서 길을 찾다 - 시스템 공천, 제대로 됐나?

4∙10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시스템 공천을 내세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이 앞다퉈 출마를 노리자 지난 5일, ‘공정하고 투명한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특정 후보에 대한 ‘사천(私薦)’ 논란이 일자 ‘이기는’ 시스템 공천을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공천 논란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재명 대표는 이해찬 당 고문이 ‘공정한 시스템에 따라 엄정하고 공평하게 공천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시스템 공천은 무엇인가? 시스템 공천은 정당의 후보 공천 과정서 임의적, 비공식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공천을 위한 객관적 평가 기준과 당헌·당규에 따른 후보 선출 과정을 제도화한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당 후보 선출 과정의 민주적 제도화다.

원칙·공정성에 기반한 규정과 제도 준수

그동안 ‘밀실’ ‘계파’ ‘권력’ ‘학살’ 공천 등과 같은 폐쇄적 하향식 구태 공천서 정당의 민주적 혁신을 의미하는 개방적 상향식 공천 제도로의 전환이다.


후보 공천이 원칙과 공정성에 기반한 규정과 제도에 의해 이뤄진다면 올바른 정치인의 등용과 함께 정당정치를 활성화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공고화할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정치 현실은 진정한 시스템 공천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시스템 공천’을 2016년에 처음 도입했다는 민주당도 공천 방식에 대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민주당 당헌은 공천심사 기준으로 정체성 15%, 기여도 10%, 의정활동 능력 10%, 도덕성 15%, 당선 가능성(공천 적합도 조사) 40%, 면접 10%의 심사 배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돼있다.

정량, 정성평가를 통해 부적절한 후보를 걸러내고 지도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정성평가서 편파적인 판정 가능성이 있으며, 적합도 조사와 같은 정량평가도 권리당원의 대거 동원 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당 지도부의 개입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당시 민주당의 ‘시스템 공천’에 대해 ‘친문(친 문재인) 공천’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아무리 제도적으로 공정성을 기한다 해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공정하지 않으면 그 제도는 왜곡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시스템 공천도 제도적 완비성과 함께 누가 공천을 하는가가 결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제도적 완비성이란 일단 제도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모든 공천 지망생이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경기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폐쇄적·하향식 공천 제도의 결정판은 1963년 민주공화당이 창당하면서 ‘공천권은 당 총재에게 있다’고 한 당헌이다.


반대로 개방적·상향식 공천 제도는 2002년 민주당의 대통령후보 공천을 위한 국민참여경선제(당원, 대의원 50%, 국민 50%)다. 후자가 전자보다는 선호되지만, 둘 다 제도적 완비성을 갖춘 공정한 경기장을 창출했다고 볼 수는 없다.

권력자의 선호도에 따라 공천이 결정되면 당연히 ‘줄 세우기’ 운동장에 불과할 것이다. 한편, 완전한 국민경선제를 한다면 국민의 후보지, 당의 후보라고 할 수 없고 정당의 존재 이유도 사라지는 단순한 ‘수(數)의 정치’에 불과하다.

후자는 유사한 정치 성향과 정강정책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합체라는 정당의 의미를 손상해 민주주의 근간의 하나인 정당정치를 훼손하는 부작용도 초래한다.

공천 과정이 과도하게 개방되면, 정당 안팎의 계파나 파벌들이 상시로 유권자를 동원하려고 대중영합주의적 무질서한 정치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전문적인 특정 정치꾼들이 활개를 치고 세력을 형성할 수도 있다. 어떻든 민심을 반영하면 할수록 당심의 중요성은 그만큼 상쇄되므로 정당 소속감과 충성심이 약화할 수밖에 없으므로 당심과 민심 간의 균형적 반영을 모색하는 그것이 바람직한 공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개방·상향식 공천을 위해 정당 민주화 필수

이때의 균형점은 후보 공천 행위자들의 역학관계에 의해서 정해지기 마련이다. 정당 지도자, 공천위원회, 대의원, 당원, 그리고 유권자(국민)들이 공천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에 따라 정치적 대표성이 결정된다.

정당의 공천을 누가 결정하느냐에 따라 당선된 후보가 대표하고 봉사할 대상이 결정된다는 대표성의 논리를 고려하면, 균형점은 당연히 당원과 국민 사이서 찾아야 함은 물론이다. 정당 공천의 중심이 지도부 상층에 속할수록 대표성은 배제적이고 비민주적일 수밖에 없다.

반대로 그 중심이 하층에 있으면 있을수록 포용적이며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방적·상향식 시스템 공천이 제도적으로 정착하려면 정당의 민주화가 필수적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시스템 공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인적 요소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제도는 명목적으로 개방적·상향식 시스템 공천이라고 해놓고, 실제 운영은 정당 상층부의 정치이익에 따라 임의로 평가 기준을 적용하고 자의적으로 결과를 조작한다면 이는 기만에 불과하다.

공천을 관리하는 위원회에 누가 위촉되는가가 시스템 공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첫걸음이 된다. 권력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객관적 심사와 평가를 통해 ‘공정한 경기장’을 관리할 심판관들로 구성해야 할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당 지도자가 솔선수범해서 개입하지 말아야 하고, 위원회 위원들 역시 정치적 야망을 자제하는 합리적 인사들로 구성돼야 한다. 제도를 ‘녹(鹿)비에 가로 왈(曰)자’식으로 운영해서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할지라도 무용지물이 된다.


2002년 대통령선거서 새천년민주당이 국민참여경선제 공천을 도입해 신승한 이후 2004년 17대 총선부터 각 정당은 앞다퉈 선거서 국민경선 등 후보 공천을 위한 경선제를 도입했다.

그나마 대통령선거에서는 후보 경선과 공천 절차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나, 총선서의 공천 과정은 전략공천, 현역 물갈이, 사전 탈락 등 여러 가지 예외 규정이 너무 많이 적용돼 실제 당내 경선은 과반수에도 미치지 못하게 치러졌다.

선거 때마다 바뀌는 후보 공천 제도와 운영을 둘러싼 불공정 논란과 불협화음은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를 자아냈다. 국민의힘은 본격적인 공천 작업에 들어가면서, 시스템 공천으로 현역 물갈이, 중진 퇴출과 세대교체 실현을 목표로 했다.

공천심사 기준에 따르면, 현역 평가 하위 10% 사전 탈락, 하위 10~30% 감점, 동일 지역 3선 이상 감점 등으로 48명의 현역 의원을 교체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선거 승리만 목적한 ‘시스템 공천’ 우려

공천심사 평가 기준은 현역 의원 및 원외 당협위원장은 여론조사 40%, 도덕성 15%, 당 기여도 15%, 당무감사 20%, 면접 10%고, 비 당협위원장의 경우는 당 및 사회 기여도 35%로 전자의 당 기여도와 당무감사를 합한 값을 적용하고 나머지 기준은 같다.


또 여론조사 비율을 전국 선거구를 2개 권역으로 나눠 열세 지역에서는 당원 20%, 국민 80%, 우세 지역에서는 당원과 국민 각각 50% 비율로 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정치 신인에게 나이별로 가산점을 최대 20%서 7%를 부여한다.

국민의힘이 발표한 공천 기준은 사전에 의도적 목적을 갖고 설정된 것으로 보여 민주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전략공천 세부 기준을 토대로 한 분석에 따르면, 전략공천을 할 수 있는 지역구가 전체 253개 중에 절반에 달하는 최소 122곳으로 나타났고, 수도권은 121곳 가운데 70곳인 60%에 육박했다.

또 공천관리위원회가 최대 50곳 정도를 서울 지역 중심으로 전략공천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전략공천이 광범위하게 적용된다면 개방형·상향식 공천제도와는 사실상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현역 의원이 탈당한 지역 10곳과 불출마 선언 지역 10곳 등 20곳을 전략공천으로 지정했지만, 앞으로 탈당자가 늘어남에 따라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전체 지역구의 20%까지 전략공천을 할 수 있다.

더욱이 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정권교체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책임을 지라’고 해서 ‘문명(문재인·이재명) 갈등’을 예고해 전략공천이 확대됐다.

공천의 기본 방향이 경선이라고 하면서 당 지도부에 의한 전략공천의 비중이 크고, 계파 갈등이 불거진다면 시스템 공천이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협치와 관용의 규범이 없는 정치 현실서 여야 정당은 정쟁만 일삼다가 선거 시기를 맞이했으니, 공천을 위한 제도적 정비를 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특히 야당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국회 구조하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져 여야가 갈등 대립에만 집중해 차기 국회 구성을 위한 대비책을 소홀히 했다.

국회는 선거구획정 조정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개선하지 못한 채 총선에 돌입하고 있다. 위성 정당이 정치적 기만 행위임에도 그 준비에 급급한 양대 정당이 시스템 공천을 한다고 공표했으니 이 또한 미덥지 않다.

당내 충분한 합의는 물론 세부적인 절차와 규칙에 대한 고려 없이 선거 승리와 정치적 흥행만을 목적으로 시스템 공천을 계획하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김명삼 대기자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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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