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근 공포’ 건설 카르텔 대해부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8.07 10:20:12
  • 호수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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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위험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LH가 발주한 15개 아파트서 철근이 누락된 사실이 드러났다. ‘순살 아파트’라는 비판을 받고서야 전관 특혜를 때려잡겠다고 나섰다. 설립 14년 만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달 기자회견서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 설계와 감리를 맡은 업체가 LH 전관 업체”라고 밝혔다.

흔히 담합 행위를 통한 이윤 극대화를 카르텔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중남미 마약 갱단이 담합을 통해 시장을 독점하는 카르텔로 불린다. 불명예스러운 표현이다. LH는 경기남부지역본부에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한다. 스스로 카르텔을 인정하고 허벅지를 찍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쇄신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올해 매출 19조원에 부채는 총 146조가 넘는 ‘부채 공룡’이기 때문이다. 

무량판
뭐길래…

지난 4월 인천 검단 신축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붕괴됐다. 사고의 원인은 LH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에 누락된 철근이었다. 국토교통부는 LH 발주 아파트 단지를 전수조사했다.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 91곳 중 15개 단지에 철근이 빠져있었다. 무량판 구조는 보 없이 기둥이 직접 슬래브를 지지하는 구조다. 기둥이 하중을 견디려면 보강철근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

파주운정과 남양주별내 등 5개 단지는 입주까지 마쳤다. 철근 누락이 발견된 15개 단지 중 10곳은 설계, 5곳은 시공상 결함이 발견됐다. LH의 허술한 관리·책임에 관한 비판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안전상 미흡이 드러난 사업장 중 준공된 곳은 ▲파주운정 A34(임대, 대보건설) ▲충남도청이전신도시 RH11(임대, 대림건설) ▲수서역세권 A-3BL(분양, 양우종합건설) ▲수원당수 A3(분양, 한라) ▲오산세교2 A6(임대, 동문건설) ▲남양주별내 A25(분양, 삼환기업) ▲음성금석 A2(임대, 이수건설) ▲공주월송 A4(임대, 남양건설) ▲아산탕정 2-A14(임대, 양우종합건설) 등 9개 단지다.


현재 공사 중인 곳은 ▲양주회천 A15(임대, 한신공영) ▲광주선운2 A2(임대, 효성중공업) ▲양산사송 A-2(분양, 에이스건설) ▲양산사송 A-8BL(임대, 대우산업개발) ▲파주운정3 A23(분양, 대보건설) ▲인천가정2 A-1BL(임대, 태평양개발) 등 6개 단지다.

LH는 전 구간 전단 계산누락에 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오는 10일까지 8억900만원을 들여 기둥 신설 슬래브 보완 보강을 마치기로 했다. 입주를 마친 파주운정 A34, 남양주별내 A25, 음성금석 A2, 공주월송 A4, 아산탕정 2-A14서도 철근 사용이 누락된 것으로 적발됐다.

입주한 아파트 주민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LH는 15개 단지서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구체적인 부실 범위와 보강 계획 등을 설명할 방침이다. 이미 일부 단지에서는 설명회를 진행했다.

파주운정 A-34블록은 지난달 31일 설명회를 열었다. 앞서 주민들이 도색 공사로 알고 있던 부분에 보강 작업 중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속았다는 마음에 배신감마저 느꼈다.

한 입주민은 “처음부터 설명해줬다면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라며 “LH가 관리비 등 현실적인 부분이라도 보상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입주 마쳤는데 시공 결함 무더기 발견
관리·감독 소홀···다양한 원인 드러나

당시 LH 관계자는 “피해 보상안 같은 부분들은 주민과 협의가 필요해 먼저 섣불리 말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안전조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해 이 부분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H의 관리·감독 소홀은 차치하고, 다양한 원인이 드러났다. 건설업계는 시공, 감리까지 모든 공사 과정에 여러 문제가 작용한 것으로 봤다. 철근 누락이 확인된 15개 단지 중 10곳은 이미 설계부터 문제였다. 이들 단지는 설계 때부터 하중 보완을 위한 철근 개수를 잘못 계산하거나 단순 실수로 아예 누락했다. 

나머지 5개 단지는 시공 과정서 철근을 누락했다. 다른 층의 도면을 잘못 보고 철근 배근을 하느라 누락된 사례도 있었다. 15개 단지 모두 감리를 맡은 업체가 철근 누락을 잡아내지 못했다.

한 LH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한 통화서 “외부 감리사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다”며 “자체감리 지구는 감독 인원 부족이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복합적인 이유라 특정 원인을 꼽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감리사의 전문성 문제도 제기됐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벽식 구조가 자리 잡은 현장서 설계와 기술 전문가 중, 무량판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설계 완성도와 상관없이 철근 몇 개 빠져도 무방한 것으로 착각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급등한 공사비도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안전보다 수익성에 매몰된 것이다. 2020년 상반기 1t당 541달러였던 철근 가격이 올해 상반기에는 2배(1031달러) 가까이 뛰었다. 2년 전 1t당 7만원대였던 시멘트값은 최근 12만원 안팎으로 올랐다.

원가절감을 위해 인력을 줄이고, 촉박하게 진행하면서 안전을 추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관예우 관행도 크게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인천 검단 아파트는 구조기술사도 없는 무자격 업체가 설계를 담당했다. 

LH가 전관 특혜로 지적을 받은 건 이번뿐이 아니다. 지난해 감사원 결과에 따르면 콘크리트 두께 미달 아파트도 LH가 눈감아줘 준공됐다.

또 LH는 2016년 1월부터 2021년 3월까지 1만4961건의 계약 중 3227건(21.6%)을 퇴직자가 재취업한 전관 업체와 맺었다. 계약 규모만 9조9억원에 달했다. 전관 업체와 맺은 계약 3건 중 1건(34.1%·6854억원)은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이었다. 같은 기간 퇴직자 604명(3급 이상) 중 LH 계약업체에 재취업한 퇴직자도 304명(50.3%)으로 절반이 넘었다.

당연히 전관 업체에 대한 감독은 느슨했고, 관리는 부실했다. 공사 시작 단계부터가 허술했다. LH는 아파트를 짓기 전 ‘건축설계 공모 및 용역심사’를 한다. 관련 법에 따라 심사위원과 참여 업체 관계자는 만날 수 없다. 그러나 퇴직자는 예외였다.

총체적
부실공사

감사원은 LH 내부 심사위원과 퇴직자 사이의 통화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발표 전 심사위원과 퇴직자 사이 2회 이상의 사전 접촉이 있었다. 그 어떤 심사위원도 ‘사전접촉 확인서’에 관련 사실을 명기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LH가 퇴직자가 재취업한 업체에 일감을 몰아준다는 불신을 초래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실에 따르면 LH 출신 퇴직자가 재취업한 용역업체 중 LH와 계약한 업체는 9곳이었다.
이들 업체에 재취업한 2급 이상 퇴직자는 총 10명이었다. 이들이 2019년부터 올해까지 LH와 계약한 설계·감리 건수는 204건(규모 2319억원) 수준이었다.


LH는 퇴직자의 규모가 커 관련 업계 재취업은 우연의 일치라는 입장이다.

전관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실 단지 15곳 중 LH가 직접 감리한 5곳은 법정 기준 절반 수준의 인원이 투입됐다. 일례로 충남 공주 현장에는 8명 이상을 둬야 하는데 실제론 2명뿐이었다. 이마저도 비상주 인력이었다.

정부서도 가장 큰 원인으로 ‘건설 카르텔’을 지목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서 “입주 아파트의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모두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오류, 부실시공, 부실 감리가 이뤄졌다”며 “근본 원인인 이권 카르텔은 반드시 깨부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의 무량판 시공이 문재인정부 첫해인 2017년 무렵부터 보편화했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책임자들에 대해 모든 책임과 인사조치를 물어갈 계획이다. 대통령실은 LH 퇴직자가 LH와 계약을 맺는 구조로 봤다. 이한준 LH 사장은 지난 2일 “전관 특혜 의혹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LH의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칼끝을 겨누자 LH는 쇄신에 나섰다. LH는 경기남부지역본부에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한다. 정부와 국토부는 직접 조사에 나서면서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 철근 누락 사태와 관련된 설계, 시공, 감리 업체를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다만, 국토부의 책임도 존재한다. 원희룡 장관도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원 장관은 지난달 LH 서울지역본부서 “이런 일이 벌어진 상황에 대해 국민께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며 “공공주택에 대한 사업감독 책임을 지는 국토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철저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은 문정부의 ‘LH 퇴직자 전관예우’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야당과 국정조사를 논의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태에 대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키로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2일 ‘무량판 공법 부실시공 관련 기자간담회’서 TF 가동을 예고했다.

TF위원장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정재 의원이 맡는다.

특히 문정부의 ‘LH 퇴직자 전관 업체’ 문제와 ‘이권 카르텔’에 무게를 뒀다. 윤 원내대표는 “LH 전·현직 직원들의 땅 투기가 드러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까지 터졌다. 문재인정부의 주택 건설 사업 관리 정책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정조사와 관련해 야당과 ‘거래’는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LH도 그런데 다른 건설사 오죽하겠냐”
전직자 모신 이합집산 세력 “부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대통령 일가 특혜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소집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은 국정조사 요구서를 통해 “변경한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일대에 대통령 처가가 소유한 토지가 다수 있어 특혜 의혹이 불거졌다”며 “원희룡 장관은 ‘거짓 선동’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해당 사업을 독단적으로 백지화시켜 큰 사회적 혼란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윤 원내대표는 “해당 사안은 국정조사 조건을 갖추지 않았고 정쟁의 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고속도로 관련 국정조사는 적절치 않다”고 했다.

LH 철근 누락 사태가 김건희 여사 특혜 의혹의 견제 카드로 변모한 순간이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관련 법안 논의가 시급한 상황이다.

21대 국회 들어 ‘부실공사 방지법’이 최소 13건 발의됐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8건, 주택법 개정안 2건, 건축법 2건, 건설산업특별법 제정안 1건 등이 국토위에 머물러 있다. 6개 법안은 지난해 1월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잇달아 발의됐지만 논의가 멈췄다. 여야가 철근 누락 사태를 예방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누락된 철근 수가 가장 많은 현장은 한신공영이 시공한 양주회천 A15다. 154개의 철근이 무량판 기둥서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 시공사 관계자는 “감리까지 거친 설계대로 진행했을 뿐”이라며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으면 또 다른 비판을 받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전문적인 구조 계산이 포함되는 설계상의 오류를 시공사가 찾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LH도 시공사가 설계상의 문제점을 발견해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필수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15개 단지 명단이 공개되면서 시공사들은 이미지 타격을 받고 있다. 일반인들은 철근을 빼먹은 파렴치한 건설사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요시사>와 통화한 건설사들은 책임 소지에 대해 말을 아꼈다. 한 건설사 측은 “LH는 중요한 발주처”라며 “회사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LH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는 부채비율 축소다. 이 사장은 현재 220% 수준에 달하는 부채를 임기 내 200%대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지난 18일 LH 본사에서 “LH가 보유한 일부 고가 토지를 매각해 민간이 효용성 있게 활용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누가 누굴?
정쟁 이슈로

매각이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부동산을 처분해 부채 부담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LH는 서울, 제주, 인천 영종도 등 전국 15조원대 자산을 현금화해 부채비율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말 LH의 부채비율은 218.7%다. 다만 고금리 여파로 자산 매각이 쉽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LH 오리사옥의 경우 10년째 매각이 지연되고 있다. 건설 카르텔에 산더미처럼 쌓인 부채를 LH가 감당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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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