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주년 특집> '코로나 대공황' 그래도 희망은 있다

암흑기에 비친 실낱같은 빛줄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이 만든 암흑 터널에 갇혔다. 우리나라도 1년 넘게 출구조차 잘 보이지 않는 미로를 헤매고 있다. 경제·사회·문화할 것 없이 모든 분야의 모든 지표가 바닥을 향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이제야 조금씩 터널 끝,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2019년 12월27일 중국 후베이성 의사 장지셴이 중국 보건당국에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을 보고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2019년 12월31일 중국은 후베이성 우한에서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알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창궐의 시작점이다. 

중국서 시작
전 세계 패닉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월20일 첫 확진자가 확인됐다. 정부는 ‘신종플루’ 이후 감염병 위기 경보를 ‘경계’로 격상하고 코로나19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설치하는 등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2월18일 신천지를 중심으로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1차 유행이 시작됐다. WHO는 3월11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집중적인 진단검사와 역학조사가 이뤄졌고 대면 접촉을 줄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시행됐다. 이태원 클럽이나 물류센터 등에서 소규모·산발적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8월 중순경 종교시설과 다중이용시설에서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2차 유행이 시작됐다.


고령층 감염의 증가로 중증 환자가 많이 발생한 시기다.

11월 중순부터 3차 대유행이 시작됐다. 하루 평균 100명 내외로 유지 중이던 확진자 수가 12월 말에 이르러서는 하루 평균 1000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사망자 역시 급증해 누적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현재는 하루 평균 확진자 수가 600~700명을 오가면서 4차 유행의 기로에 서있다.

더 이상 방역만으 코로나19의 확산을 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백신이 ‘게임 체인저’로 떠올랐다. 화이자·모더나·얀센·노바벡스·아스트라제네카·스푸트니크V 등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에서 백신 개발이 이뤄졌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백신 물량 확보를 위한 협상에 뛰어들었다. 

우리나라가 현재(지난 20일 기준)까지 확보한 코로나19 백신 물량은 총 9900만명분(1억9200만회분)이다. 미국과 영국, 이스라엘 등은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면서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에 한해 실내외 어디서든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밝혔다.

전 세계 최초의 ‘노 마스크’ 선언이다.

코로나19는 사람들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버렸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제2부본부장은 지난해 4월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며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생활 속에서 감염병 위험을 차단하고 예방하는 방역활동이 우리의 일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 코로나19 창궐 이후 경제·사회·문화·교육·복지·보건 등 모든 분야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났다. 대면접촉이 줄어들고 비대면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이른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 수준으로 사회가 바뀐 것이다. 모든 지표가 하향 곡선을 그렸고 국민들의 삶은 암흑 속으로 빠져 들었다.


지난해 2월 첫 확진자 이후
1년3개월만 사회 전반 파탄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도 전년보다 줄어든 3만100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로 집계됐다. 외환위기 당시 1998년(-5.1%) 이후 22년 만이다.

1980년(-1.6%)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역대 3번째 역성장이다. 

경제활동별 GDP 성장률을 보면 건설업(-0.8%) 감소폭은 줄었지만 서비스업(-1.2%)과 제조업(-1.0%)은 감소로 전환했다. 서비스업과 제조업은 각각 1998년(-2.4%)와 2009년(-2.3%) 이후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코로나19 충격이 1998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간다는 방증이다. 

특히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때 아닌 호황기를 맞은 택배나 배달 업계와는 달리 대면 영업을 하는 자영업의 타격이 컸다. 사회적 거리두기·5인 이상 집합금지 등의 시행으로 대면 모임이 대폭 줄어들면서 매출이 90% 이상 감소한 업종이 속출했다.

정부가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급한 불을 끄려 했으나 자영업자들의 줄폐업을 막진 못했다. 

지난 1월 통계청과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월평균 전국 자영업자는 553만1000명으로 전년보다 7만5000명 감소했다. 창업보다 폐업이 7만5000명 많았다는 뜻이다. 특히 수도권에서 자영업자의 수가 가장 많이 줄어들었다.

코로나19 2·3차 유행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른 지역보다 강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문만 열어둔 채 영업을 제대로 못하는 식당이 적지 않다"며 "임대기간이 남아 있어 폐업을 안 한 것뿐이지 사실상 폐업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식당은 통계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자영업자들 가운데는 빚으로 가게를 지탱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4차 유행 기로
언제까지 갈까

지난해 자영업자들이 받은 신규 대출액은 120조가량을 기록했다. 2019년 증가액의 2배 수준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받은 가계부채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말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803조5000억원이다. 2019년 말(684조9000억원)보다 118조6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자영업자 대출 차주는 238만4000명으로, 1년 전(191만4000명)보다 47만명 늘었다. 잔액 증가율과 차주 증가율 모두 최근 5년새 가장 높았다.


장 의원은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버팀목 자금 등을 지원했음에도 많은 자영업자들이 이례적으로 많은 부채를 동원해 코로나19 위기를 견뎌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의 여파는 청년층을 덮쳤다. 코로나19 2차 유행을 앞둔 지난해 7월 청년실업률(15~29세)은 10.7%까지 치솟았다. 21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정식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시기인 20대 후반(25~29세) 실업률도 10.2%로 1999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나빴다. 

잠재적 구직자까지 포함한 체감실업률을 의미하는 확장실업률은 26.8%로 2015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였다. 4명 중 1명 이상이 실업자인 셈이다.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1차 유행이 시작된 2월부터 전체 취업자 수 역시 꾸준히 줄어들었다.

정부의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으로 60세 이상 연령층만 선방했을 뿐, 전 연령층에서 타격을 받았다.

고용시장 한파는 혼인율·출산율에도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지난해 혼인 건수(21만4000건)는 전년 대비 10.7% 감소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와 집합금지 명령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취소한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또 집값 상승과 고용위기 등 경제적 요인의 영향으로 혼인 건수와 혼인율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대 이래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출산율은 재앙에 가까웠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7만2400명으로 전년 대비 10%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0.8명대로 떨어지면서 사상 최저 기록을 1년 만에 갈아치웠다. 반면 사망자 수는 30만5100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인구가 자연 감소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4명으로 전년보다 0.08명 하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63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은 물론 OECD 37개 회원국 중 유일하게 0명대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면 이 수치가 0.7명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경제부터
연쇄작용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문화예술계는 유례없는 타격을 입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수식이 달릴 정도였다. 특히 공연계는 지난해 괴멸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2015년 메르스 때 위기보다 심리적 타격이 더 컸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6일까지 공연 개막 편수는 5216편, 매출은 약 172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개막 편수는 9038편, 매출은 2293억원이었다. 지난해 대비 개막 편수는 40% 이상 감소했고, 매출 역시 25%가량 줄었다.

수기로 표를 발권하는 영세 극단, 극장의 작품은 집계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치로 추정된다.

영화계는 ‘붕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월 발표한 <2020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극장 관객 수는 5952만명으로 전년 대비 73.7% 감소했다. 2019년 5편의 1000만 영화를 배출하고 전체 극장 관객수 2억2668만명을 동원하며 호황기를 누렸던 극장가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매출액도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인구 1인당 연평균 극장 관람 횟수는 전년 대비 3.22회 감소한 1.15회로 조사됐다. 매출액은 전년 대비 73.3% 감소한 5104억원으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국영화 매출액은 2019년보다 63.9% 감소한 3504억원으로 집계됐다. 

박스오피스를 살펴보면 지난해 처참했던 영화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20년 박스오피스 1위는 <남산의 부장들>로 관객수는 475만명에 그쳤다. 제작사에서 라인업 중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우는 ‘텐트폴 영화’ 중 하나였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436만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실업 등 경제적 불안은 커지는 반면 이를 상쇄할 문화생활 등이 제한되면서 ‘코로나 블루’가 증가했다. OECD가 지난 12일 발표한 <코로나19 위기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이후 우울감을 느끼거나 우울증이 있는 비중이 36.8%로 조사대상 15개국 중 가장 높았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불과 1년 만에 사회 전반이 망가졌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백신 공급이 원활한 나라를 중심으로 경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방안 마련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것.

지난달 2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 1분기(1~3월) GDP는 민간소비 증가와 정부 지출에 힘입어 전분기 대비 1.6% 성장했다. 지난해 3분기부터 상승 흐름을 타기 시작한 게 이번 분기까지 이어졌다. 주요국의 경기부양책에 따른 글로벌 수요 확대 상황이 생산·수출·투자 등에 영향을 미쳤다. 

바닥 찍었던 지표들 회복세
자영업자 "바닥경제는 아직"

3월 산업생산은 서비스업 생산과 소비가 호조를 보이면서 0.8% 늘었다. 4월 수출은 511억9000만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41.1% 증가했다. 10년 3개월 만의 최대치다. 경제 지표가 회복 기미를 보이자 성장률 전망치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다. 올해 성장 목표치인 3.2%를 웃돌 기세다. 

고용시장에서도 미약하게나마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된다. 지난달 기준으로 최근 1년간 직장 폐업이나 정리해고, 사업 부진 등 비자발적인 이유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 수가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감소 전환했다. 가사·육아·심신장애·정년퇴직·급여 불만족 등 자발적 이유로 일을 그만둔 사람은 포함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실이 통계청 고용동향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비자발적으로 실직한 지 1년 이하인 사람은 170만112명이었다. 1년 전보다 21만9676명 줄어든 것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연령별로 30대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줄어들었다.

공연계도 대면 공연 부분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뮤지컬, 연극계 등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시기, 비대면 온라인 공연을 진행하는 등 활로 모색을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의 완화로 대면 공연이 재개되면서 대형 작품을 중심으로 매진 행렬을 기록하는 등 뚜렷한 회복세가 나타나는 중이다.

지난 2월 기준 공연 시장 매출액은 167억7407만원으로 전월(37억3090만원) 대비 4배 이상 늘어났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전인 지난해 11월 수준으로 회복했다. 공연 건수도 1월 351건에서 2월 431건으로 늘었다. <맨 오브 라만차> <위키드> 등 대형 뮤지컬들의 흥행이 공연 시장의 회복세를 이끌었다. 

대중들의 소비 심리도 폭발하고 있다. 이른바 보복소비의 현실화다.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가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

기획재정부가 최근 발표한 ‘5월 최근 경제동향’의 내수 지표를 보면, 지난달 백화점 매출액은 전년 대비 26.8% 늘었다. 같은 달 국내 카드 승인액의 전년 대비 증가율 또한 18.3%였다. 3개월 연속 증가세다. 소비자 심리지수도 지난해 3월부터 두 달 째 기준치(100)를 웃도는 등 올해 들어 꾸준히 상승 중이다. 

코로나 이전
더이상 없어

다만 전문가들은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소비 심리의 폭발은 ‘반짝 특수’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소득 계층별로 소비가 양극화되는 양상을 띠는 점도 불안하다. 명품 소비와 백화점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 등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 욕구가 분출되고 있다.

실제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여전히 한파에 가깝다. 코로나19 대응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7일에도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영업자들의 손실을 실질적으로 보상할 수 있는 보상안을 제안했다. 이들은 "손실 보상은 불쌍해서 은혜를 베푸는 '지원'이 아니라 응당히 해야 할 '의무'"라며 "빚을 내서 창업했고 피해도 일반 직장인들보다 훨씬 큰데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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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