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 군기반장’ 노영민 시한부 플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0.26 10:28:00
  • 호수 12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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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장이 사라졌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왕실장이 사라졌다. 취임 초기 ‘군기반장’으로 불리며 강력한 그립감을 보였던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지만, ‘똘똘한 한 채’ 논란 이후 그 모습이 자취를 감췄다. 사표가 반려되고 나서는 사실상 청와대에서의 존재감이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가 곳곳에서는 노 실장 교체설이 나돌며 후임 인사들의 이름까지 거론된다. <일요시사>는 용두사미에 그친 왕실장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성준 기자

청와대와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사이의 어정쩡한 동거가 곧 끝날 조짐이다. 정가에서는 청와대가 노 실장의 후임을 물색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돈다. 특정 인사의 인사 검증 동의서가 청와대에 제출됐다는 소문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현 정권 최초의 ‘불명예 제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 정권 최초
불명예 제대?

노 실장은 존재감을 급격히 상실했다. 국무회의, 수석·보좌관 회의 등 청와대의 주요 회의석상에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특별한 지시나 발언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똘똘한 한 채’ 사건이 분기점이었다. 당시 노 실장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서울 강남의 반포아파트와 충북 청주아파트 두 채를 소유하고 있었던 노 실장이 반포아파트 대신 청주아파트를 처분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자신이 3선을 한 지역구의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고, 강남의 아파트는 지키려는 모습에 여론은 급격히 냉각됐다. 청와대가 ‘강남 불패’ 신화를 재확인시킨 꼴이었다.


청와대 발표가 오락가락한 점도 여론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실장이 강남의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급매물로 내놨다고 밝혔지만, 40여분 뒤 청주아파트를 매물로 내놨다고 정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당에서조차 노 실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여과 없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당 대표 출마 선언 후 기자들과의 문답 중 “(노 실장의 청주 집 처분은)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합당한 처신과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김태년 원내대표 역시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여러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으며, 김남국 의원도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 보인다. 지역구 주민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이해찬 당시 대표는 불쾌한 심경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결국 노 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의도와 다르게 강남의 아파트를 지키려는 모습으로 비쳐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과였다. 그럼에도 논란은 지속됐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노 실장의 똘똘한 한 채 논란으로 인해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신뢰에 균열이 생겼다는 지적이 나왔다. 

존재감 어디로…강한 그립감 사라진 지 오래
결국 용두사미로? 해이해진 내부 개편 임박?

풍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감사원은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대통령경호처 등에 대한 기관 정기 감사결과를 9월 발표했다. 


감사원이 청와대의 부당한 업무 처리와 기강 해이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특히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을 도운 측근들이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에서 매월 수백만원의 자문료를 급여처럼 받은 사실을 적발해 주목받았다. 

국가균형발전위원장 출신의 민주당 송재호 의원은 2019년 1월부터 월 400만원씩 총 5200만원을 지급받았으며, 이용섭 광주시장은 지난 2017년 6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이목희 전 의원은 지난 2018년 4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송 의원과 같은 방식으로 각각 5513만원, 1억4099만원을 수령했다.
 

▲ ▲청와대

현행법상 비상임·비상근 위원장에게 자문료를 월급처럼 지급하는 일은 불법이다.

세 사람 모두 문 대통령의 측근이다. 송 의원은 지난 19대 대선 기간 문재인 후보 캠프의 자문기구인 국민성장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이 시장은 같은 대선에서 캠프 비상경제대책단장을, 이 전 의원은 18대 대선 기간 문재인 후보 캠프 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이 외에도 감사원은 청와대의 어린이날 기념 영상 용역 발주 과정에서 발생한 계약법 위반, 경호처 직원들의 무단 외부 강의, 청와대 내 미술품 관리 소홀 등 12건을 적발했다. 감사원은 6건에 대해서는 ‘주의’, 나머지 6건에는 ‘통보’ 조치를 내렸다. 

감사원은 “계약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노 실장에게 직접 주의를 줬다. 감사 결과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감사원이 대통령비서실 등 청와대에 대한 감사 결과를 공표하는 일은 이례적이다.

노 실장 입장에서 격세지감을 느낄만하다. 지난해 1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의 뒤를 이어 취임한 노 실장에게 붙은 별명은 ‘군기반장’이었다. 친문 좌장인 노 실장이라면 청와대 직원들을 강한 그립감으로 쥘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이 예상은 노 실장 취임 초기부터 들어맞았다. 

카리스마? 
힘 떨어져

노 실장은 빠르게 청와대 기강을 바로잡기 시작했다.

‘50·60세대 무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의 사표를 즉각 수리한 일이 대표적이다. 논란이 있고 하루 만에 단행된 문책성 인사였다. 현 정권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속전속결’ 조치에 청와대 직원들은 긴장했다. 이 같은 속전속결의 배경에는 노 실장의 강력한 건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노 실장은 취임 일성에서 ‘춘풍추상’을 강조했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에게는 가혹하라는 뜻으로 이는 청와대 직원들에게 날린 경고장이었다. 규율이 잡히면서 청와대 직원들 사이에서는 “회의장 공기부터 달라졌다”는 말이 나왔다. 
 

▲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성준 기자

노 실장은 청와대 직원들에게 여러 지시를 내리며 장악력을 높여갔다. 청와대 비서진·비서들에게 업무 내용이 외부로 새지 않도록 입단속을 시켰으며, 또 이들에게 대통령에 대한 대면보고를 줄이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에게 휴식을 주자는 의미도 있었지만, 실장급이 ‘전결’을 하는 상황을 늘려 비서진이 더욱 책임감을 갖고 업무를 처리하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뜻도 내포돼있었다.

청와대 밖에서는 활발한 활동으로 문 대통령의 국정을 지원했다. 문 대통령은 노 실장 취임 직후부터 그에게 재계와의 소통을 당부했다. 국회의원 시절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 신성장산업포럼 대표로 활동했던 노 실장은 민주당 내에서 ‘경제에 밝은 정치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노 실장은 시스템반도체, 미래차, 바이오헬스 등 현 정권 3대 핵심 신성장 동력을 추려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3대 산업 현장에서 문 대통령을 수행한 사람이 바로 노 실장이다. 

노 실장은 문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았던 지난해 11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스템반도체, 미래차, 바이오헬스 등 미래 먹거리에 전폭적인 투자·지원도 아끼지 않았다”며 문재인정부 전반기를 평가했다. 

똘똘한 한 채
역풍 제대로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의장을 지낸 정세균 국무총리에게 ‘VIP(대통령)의 뜻’이라며 민주당 이낙연 대표에 차기 국무총리직을 맡도록 설득한 사람도 바로 노 실장으로 알려져 있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이 행정부 2인자인 국무총리로 가는 일은 의전서열 상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야권은 정세균 당시 총리 후보자에게 “입법부의 권위를 실추시켰다”며 맹공을 퍼부은 바 있다. 이는 예상된 논란이었다. 노 실장이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12·16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노 실장은 즉각 대통령비서실과 안보실 비서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정책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바로 1주택 이외 처분 권고였다. 

청와대가 ‘솔선수범’하는 차원에서 수도권 내에 2채 이상 집을 보유한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의 경우, 불가피한 사유가 없다면 이른 시일 안에 1채를 제외한 나머지 주택을 처분하라는 것이 노 실장의 권고 내용이었다. 
 

▲ 우윤근 주중대사

그러나 이는 똘똘한 한 채 논란으로 이어지며 결국 노 실장의 발목을 잡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노 실장은 대국민 사과 이후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노 실장과 함께 강기정 정무수석,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김조원 민정수석, 김거성 시민사회수석, 김외숙 인사수석 등 5명도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는 총 6명의 실장·수석 인사가 일괄적으로 사의를 표명한 이유에 대해 “최근 상황에 대한 종합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청와대 다주택 참모진의 주택 매매 과정을 둘러싼 각종 논란에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노 실장과 김외숙 인사수석의 사표를 반려했다. 청와대와 노 실장 사이 ‘어정쩡한 동거’의 시작이었다.

청와대 개편이 곧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노 실장이 교체 대상으로 유력하게 거론된다. 어정쩡한 동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후임 하마평 솔솔∼
순장조 실장 누구?

우윤근 전 러시아 대사가 노 실장의 바통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전남 광양 출생인 그는 이 지역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내리 3선을 한 중진 의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원내대표였던 우 전 대사는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국회 사무총장과 러시아 대사를 역임했다.

우 전 대사는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잘 알려져 있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지난 2015년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가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이던 우 전 대사를 예방한 자리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반가움을 나타내던 중 우 전 대사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우 전 대사의 최대 강점으로 꼽기도 한다. 

문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다. 18대 대선 과정에서 우 전 대사는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 민주캠프 산하 ‘동행본부’본부장을 맡아 활동했다. 선대위 직능·조직을 총괄하는 중책이었다.
 

▲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도 차기 비서실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탕평 인사에 적임자인 까닭이다. 경북 상주 출생인 김 전 의원은 민주당을 대표하는 ‘영남 맹주’다. 비록 21대 총선과 지난 8·29 전당대회에서 낙선하며 부침을 겪고 있지만, 대권주자로 꼽힐 정도로 중량감이 있다. 

내부 승진 가능성도 존재한다. 수석을 실장으로 올리는 안이다. 만약 청와대가 내부 승진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이 승진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4선 국회의원 출신인 최 수석은 애초에 실장급이 더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 수석은 ‘친문 실세’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종합상황본부 제1상황실장을 맡았다. 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시절에는 사무총장, 총무본부장, 당무감사원 감사위원 등 당의 요직을 두루 겸하면서 친문으로 자리 잡았다. 친노·비노 간의 갈등이 격화됐던 당시에는 문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어정쩡한
동거 끝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후보로 자주 거론되지만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정가의 중론이다. 최초의 여성 비서실장이라는 상징성이 있지만, 부동산 시장이 혼돈에 빠져 있는 현 상황에서 당장 비서실장으로 가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해석이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도 문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 후보 중 한 명이지만, 본인이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어려울 것이라고 정가는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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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