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교과서 '짜깁기 교재' 유통 고발

"국민 세금이 학원으로 새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수년간 국가저작물을 이용하여 막대한 수입을 올린 스타강사와 출판업체가 있다. 국정교과서 등을 인용, 짜깁기 출판을 한 뒤 학생들에게 팔고, 이윤을 남기는 식이다. 그런데 이게 관행이라고 한다. 눈 먼 국가저작물이 아무 제제 없이 사교육시장을 살찌웠던 셈이다. 지금도 학원가를 가보면 영리를 목적으로 한 '저작권' 사용이 버젓이 계속되고 있다. '짜깁기 교재' 유통, 해법은 있을까.

지난달 감사원 앞으로 한 통의 민원이 접수됐다. 접수번호 '2014'로 시작한 민원은 감사원 측에서 민원인에게 확인 전화를 할 정도로 신빙성을 갖춘 제보였다. 민원인은 "감사원뿐만 아니라 교육부 쪽에도 관련한 내용을 질의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제보자를 직접 만났다.

국가 저작권 침해

전직 출판사 고위 임원 A씨는 "국가 세금으로 만든 교육물이 그동안 특정 저자와 출판업자의 영리를 위해 쓰였다"고 고발했다. 이어 그는 "한 개인이 수십억원의 돈을 챙겨갔는데도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조금 더 자세한 내막을 물었다.

A씨가 밝힌 쟁점은 크게 세 가지. 첫째, 초등학교 지도서가 학원가 등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한 출판물로 둔갑했다는 것. 둘째, 특정 저자나 출판업체가 지도서를 짜깁기 한 책으로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는 것, 셋째, 지도서 저작권을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는 정부가 이를 방기했다는 것이다. 관련한 사실을 하나하나 맞춰보자.

먼저 일반인에게 '초등학교 지도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에게 문의한 결과 "초등학교 지도서는 현장 교사가 아이(초등학생)들을 지도할 때 참고하는 책"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대다수 학교는 현장 교사들에게 지도서를 일괄 제공하고 있다.


때때로 교사 개인이 필요에 의해 지도서를 시중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정식 출고가는 0원이지만 인터넷 서점 등에서는 4000∼1만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현직 교사가 지도서를 찾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수요가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어·수학·사회·과학 등 모든 기초과목 지도서 저자는 교육부(교육인적자원부·교육과학기술부)다. 듣기말하기쓰기, 실험관찰, 즐거운생활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초등학교 교과서 대부분 역시 교육부가 집필하고 있다(단 예외적으로 예체능과 관련한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아닌 검정교과서로 운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편찬한 출판물의 저작권은 어디에 있을까. 얼핏 봐서는 교육부에 있을 법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저작권은 원저자에게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이다.

초등학교 지도서가 출판물로 둔갑
특정 저자·출판사 수십억원 챙겨
정부는 사실상 방치…알고도 뒷짐

교육부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교과서에 실린 콘텐츠는 원저자와 협의해 교육을 목적으로 허가를 받은 것이지 교과서에 실린 글·삽화·사진의 저작권이 국가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교과서나 지도서는 (초등)학교 수업에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기타 영리를 목적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그런데 A씨는 답답해했다. 그는 "학원가에서 지도서나 교과서가 통째로 인용돼 정식 출판물로 유통되고 있는데도 정부가 단속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대체 어느 정도를 베꼈다는 말일까.

몇 년 전 초등학교 임용시험을 준비했다가 현재는 교편을 잡은 한 교사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A씨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했다. 이 교사는 "시험을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임용교재는 지도서와 교과서를 짜깁기한 형태로 나왔다"고 회상했다. 또 그는 "만약 저작권을 문제 삼는다면 전국에 있는 모든 학원 강사가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방에서 근무 중인 한 교사도 관련한 증언을 뒷받침했다. 그는 "우리 때는 초등임용시장에 강사 '탑3'가 있었는데 지금은 판도가 바뀐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예나 지금이나 지도서를 인용하지 않고는 내용을 채우기 어렵고, '탑3' 역시 그렇게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출판사 전 사장 B씨도 관련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과거 탑3 중 1명인 C씨와 계약을 맺고 초등임용교재를 출판했던 인물이다. 각 출판물마다 계약 조건은 달랐지만 수익의 약 10% 정도가 C씨에게 지급됐다고 한다. 가령 2만원짜리 책을 1권 팔면 2000원이 저자에게 지급되는 식이다. 이는 업계 관행상 상당히 좋은 조건이라고 한다.

B씨는 'C씨가 저자로 등재된 출판물을 아느냐'고 묻자 "인쇄나 유통 등 실무를 처리했을 뿐 저작권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B씨는 "법적으로 다툴 부분이 있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내가 사업을 접었을 때(2008년)만 해도 교과서 인용은 별 문제가 아니었고, 이제와 따지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자문을 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저작권침해의 경우 친고죄인데 국가나 원저자가 문제 삼지 않으면 사실상 (제3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렇지만 그는 "국가저작물은 보호대상인데 (동의 없이) 누군가가 영리를 목적으로 이용했다면 (관련기관이) 저작권료를 징수할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그렇다면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는 정부 입장은 어떨까.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한 관계자와 통화했다. 그는 "업계 관행이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운을 떼었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일"이라며 말을 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에 따르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책을 만들려는 저자나 출판사가 원저자나 교과부의 승인을 맡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과부 입장에서 아무 개인에게나 허락을 내줄 리 없다는 게 해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자연히 출판사 측에선 원저자와 직접 협상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 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 만나고 다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그들이(C씨 등 유명저자)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제본 값만 받고 나눠줬다면 내가 왜 민원을 넣었겠냐"면서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교재값으로 수만원씩 내야 하고 국가저작물을 제 마음대로 쓴 사람들은 수십억원씩 버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냐"고 되물었다.

기자는 학원가가 밀집한 서울 노량진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한 임용고시 준비생은 "교재 없이 독학은 말이 안 된다"면서 "샘(강사)이 추천해주는 교재로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좋든 싫든 강사가 찝어준 책을 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와 관련해 한 학원 관계자는 "열이면 열, 교재 선정은 선생님이 한다"고 밝혔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서점. 기자는 전산을 이용해 C씨의 이름으로 된 책을 검색해봤다. 확인된 책 수는 정확히 120건. 2003년부터 2014년까지 나온 책들이다. 가격은 1만원대부터 3만원대까지 다양했다. 이중 2007년 이전에 나온 책들은 일부 절판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절판된 책들을 빼고 남은 책들이 전부 판매금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3월에 나온 3만원대의 책을 찾아봤으나 없었고, C씨의 책은 서점에 단 1권도 남아있지 않았다. C씨가 저자로 등재된 120권의 책(공저 포함) 대부분은 임용과 관련된 책으로 파악됐다.

징수 가능할까

지난 3일 기자는 C씨에게 전화를 걸어 '책을 살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C씨는 "온라인으로 책을 살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C씨는 저작권 얘기를 꺼내자 "말할 게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어 그는 기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수업도 해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하고, 바쁜 일이 많은데 어떻게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교육계에 정통한 한 언론관계자는 “많은 선생들이 교재로 돈을 번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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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