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다시?’ 친일재산조사위 돌아온 진짜 이유

쫓다 말았는데 또 쫓는다고?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1기 조사위는 수천 필지의 친일 재산을 찾아 국가로 돌렸지만, 이미 팔리거나 상속된 재산까지 모두 환수하지는 못했다. 재산은 수십년 동안 팔리고, 상속되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끝내 남겨진 친일 재산을 다시 추적하기 위해 국가가 두 번째로 나선다.

오는 12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출범한다. 지난 2010년 1기 조사위가 활동을 종료한 지 무려 16년 만이다. 정부가 다시 조사위를 띄우는 이유는 지난 1기 조사에서 친일 재산 환수 작업을 모두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찾아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지만, 조사에 착수했을 때는 이미 광복 이후 수십 년이 흐른 상태였다.

흩어진 재산들
60년 늦은 추적

재산 상당 부분이 매각되거나 후손에게 상속됐고, 제3자에게 넘어간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1기 조사위가 사라진 이후였다. 조사위 활동 종료를 전후로 친일 재산의 국가 귀속 실적은 급격하게 줄었다. 국회가 제시한 친일 귀속 재산 수탁 현황을 보면 2009년 719필지, 2010년 663필지였던 수탁 재산은 2011년 3필지로 급감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한 필지도 없었으며, 2024년에도 1필지에 그쳤다.

그사이 일부 친일반민족행위자 후손들이 관련 재산을 제3자에게 매각해 현금화하거나 소유권을 여러 명에게 분산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재산의 흐름을 추적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재출범을 추진한 배경이다.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국회는 지난 5월 친일 재산 환수를 위한 새로운 특별법을 통과시켰고, 법은 지난 6월2일 공포됐다. 정부도 법 제정과 함께 16년 만의 조사위 재설치를 공식화했다. 조사위는 2005년 12월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한다.

법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에 협력하고 민족을 탄압한 반민족 행위자가 친일 행위로 축적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조사위는 대통령 소속의 독립적인 국가기구로 위원장과 상임위원 2명을 포함한 위원 9명으로 구성됐다. 실제 조사 업무를 위해 법무부와 경찰청, 재정경제부, 산림청, 국세청 등 관계기관에서 파견된 공무원과 별정·계약직 공무원까지 합쳐 모두 104명 규모의 조직이 꾸려졌다.

조사 대상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러일전쟁이 시작된 1904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한 재산과 이를 상속받은 재산, 친일 재산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유증이나 증여받은 재산을 친일 재산으로 규정했다.

특히 이 기간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은 원칙적으로 친일 행위의 대가로 얻은 것으로 추정하도록 했다. 실제 조사에서는 현재의 등기부만 확인해서는 친일 재산 여부를 가려내기 어려웠다.

수십년에 걸친 소유권 변동을 역으로 추적해야 했기 때문이다. 친일 재산 문제가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 것은 광복 이후 60년이 지나서였다.

이완용 1573만㎡ 필지 중 되찾은 토지는 1만928㎡
대대적 환수 작업에도 매각·상속·소송에 ‘미완’

광복 직후인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반민특위가 사실상 무력화되면서 친일 인사에 대한 처벌과 재산 문제 역시 제대로 매듭짓지 못했다. 이후에는 친일 행위로 형성된 재산을 국가가 환수할 별도의 법적 근거도 마련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친일 인사들이 보유했던 재산은 자연스럽게 후손들에게 상속됐다. 문제는 1980년대 말부터 일부 후손들이 국가나 제3자 명의로 넘어간 토지를 돌려달라며 이른바 ‘조상 땅 찾기’ 소송에 나서면서 불거졌다.

당시에는 해당 토지가 친일 행위의 대가로 얻은 재산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국가가 소유권을 주장할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완용 후손의 토지 반환 소송이었다. 이완용의 증손자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일대 토지 등을 놓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고, 1997년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당시에는 친일 행위로 얻은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킬 특별법이 마련되기 전이었고, 후손은 결국 토지를 되찾았다. 해당 토지는 약 2372㎡, 당시 시가 약 30억원 상당으로, 이후 매각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완용 후손의 승소 이후 소송이 잇따랐다.

송병준 후손의 재산 반환 소송은 규모부터 달랐다. 그의 증손자는 2002년 인천 부평구 산곡동 일대 부평 미군기지, 이른바 캠프마켓 부지 가운데 약 36만5000㎡를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공시지가만 약 2500억원에 달하는 땅으로, 미군기지 전체 면적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후손 측은 국가가 소유권의 근거로 제시한 옛 토지대장과 임야대장이 위조됐거나 나중에 허위로 작성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3년여간의 심리 끝에 2005년 1심에서 후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항소심에서도 패소했고, 대법원은 2011년 상고를 기각하면서 국가 소유가 최종적으로 유지됐다.

이 같은 이유로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핵심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일제에 협력한 대가로 얻은 재산을 특정해 국가로 돌려놓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재산을 취득한 제3자의 권리는 보호하도록 했다.

찾아놓고도
못 가져왔다

이 같은 논의를 거쳐 2005년 12월29일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법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친일 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켜 정의를 구현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했다. 친일 재산을 국가가 되찾을 수 있는 법적 틀이 광복 60년 만에 마련된 셈이다.

법이 만들어지면서 실제 재산을 찾아낼 조직도 필요해졌다. 이에 특별법을 근거로 2006년 7월13일 1기 조사위가 공식 출범했다. 수십년 동안 후손에게 상속되고 여러 차례 거래되면서 흩어진 친일 재산을 국가가 직접 추적하는 작업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조사위가 4년 동안 들여다본 범위는 상당했다.

당시 조사 대상에 오른 친일반민족행위자는 462명, 이들의 후손은 3만884명에 달했다. 전국에 흩어진 토지와 과거 소유 기록을 확인한 끝에 이 가운데 168명이 보유하거나 후손에게 넘어간 친일 재산 2359필지, 1113만9645㎡를 국가에 귀속시키기로 결정했다.

당시 공시지가로 약 959억원, 시가로는 약 2106억원에 달하는 규모였다. 여기에 이미 제3자에게 넘어가 바로 국가에 귀속시킬 수는 없었지만 친일 재산으로 확인한 116필지, 192만9758㎡가 추가된다. 이를 합하면 조사위가 친일 재산으로 찾아낸 토지는 모두 2475필지, 1306만9403㎡에 이른다.

조사위가 친일 재산임을 확인하면 국가가 이후 부당이득 반환청구 등의 방식으로 재산이나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되찾는 절차를 밟았다. 조사위 활동 종료를 앞둔 2010년 7월까지 이 같은 소송을 통해 돌려받은 금액만 약 13억원이었다.

환수 규모를 당시 시가로 환산하면 국가 귀속 결정과 제3자 처분 재산 등을 포함해 약 2373억원에 달했다. 수십년 동안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친일 재산을 처음으로 국가가 대규모로 찾아내고 귀속 절차에 들어갔다는 점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였다.

하지만 조사 대상 462명 가운데 실제 재산 환수나 친일 재산 확인으로 이어진 사람은 168명에 그쳤다. 단순 계산하면 전체 조사 대상의 약 36% 수준이다. 광복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관련 자료가 사라지고 재산이 여러 차례 매매·상속된 점 등이 조사 과정의 한계로 지적됐다.

조상 땅 찾기
줄줄이 소송

일부 수십만㎡에 달하는 토지는 국가로 넘어간 반면, 일제강점기 막대한 토지를 보유했던 것으로 확인된 인물을 대상으로 조사위가 실제 찾아낸 재산은 극히 일부에 그쳤다.

이 같은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인물이 이완용과 송병준이다. 두 사람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 인사인 동시에 전국에 막대한 토지를 보유한 대지주였다. 그러나 조사위가 실제 국가 귀속 결정을 내린 재산은 과거 보유 규모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조사위가 2010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1309필지, 약 1573만㎡의 토지를 소유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조사위 내부 보고서에서는 멸실된 토지대장 대신 지적 원도와 각종 사료까지 추가로 대조한 결과 이완용의 실제 보유 부동산이 1801필지, 2233만4954㎡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의도 면적의 7배가 넘는 규모다. 하지만 조사위가 이완용 재산으로 국가 귀속 결정을 내린 토지는 16필지, 1만928㎡에 불과했다. 공시지가 기준 약 7000만원 규모로, 내부 보고서에서 확인된 전체 부동산 면적을 기준으로 하면 약 0.05%에 그친다. 막대한 토지를 확인하고도 실제 국가가 되찾을 수 있었던 재산은 극히 일부였던 셈이다.

가장 큰 이유는 이완용이 생전에 이미 상당수 토지를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조사위 자료를 토대로 한 분석에 따르면 이완용은 토지를 취득한 뒤 장기간 보유하기보다 수년 안에 되파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렸다.

특히 전북지역 토지를 대거 확보한 뒤 일본인 지주들이 진출해 땅값이 오르면 다시 매각했고, 이런 식으로 보유 토지의 98~99%가 광복 이전에 처분된 것으로 조사됐다. 부동산을 팔아 확보한 돈의 흐름은 더욱 찾기 어려웠다.

조사위는 각종 사료를 토대로 1920년대 초 이완용이 보유했던 현금과 은행예금만 약 300만원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했다. 토지는 등기나 토지대장에라도 남지만 현금은 수십년 동안 상속·소비되거나 다른 자산으로 바뀌면 원래 친일 재산과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았다.

광복 이후까지 이완용 일가 명의로 남아 있던 땅도 있었다. 서울 종로구와 경기 용인, 충남 아산, 전북 익산 등에서 광복 이후에도 이완용 일가가 보유했던 것으로 확인된 토지만 16만6182㎡에 달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상당수 역시 1950~1970년대를 거치며 제3자에게 넘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이미 팔린 친일 재산 ‘처분 대가’까지 추적
최소 325억 추가 환수 전망…최대 5년간 조사

송병준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사위가 2010년 공개한 자료에서는 그가 일제강점기 570필지, 약 857만㎡의 토지를 보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조사위 내부 자료를 추가로 분석한 결과에서는 실제 보유 부동산이 약 1004만㎡까지 확인됐다.

여기에 일본 홋카이도에서도 약 1850만㎡의 토지를 일제로부터 받았다는 기록이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송병준의 재산 가운데 국가 귀속 결정이 내려진 것은 9필지, 2911㎡에 그쳤다. 공시지가로 약 4700만원 수준이었다. 송병준 역시 1930년대까지 국내에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상당수를 처분한 것으로 조사됐다.

광복 이후 송병준 일가 명의로 남아 있던 토지 6만7081㎡가 추가로 확인됐지만, 이 역시 1953년부터 1971년 사이 차례로 제3자에게 매각됐다.

이해승은 대한제국 황실 종친 출신으로, 한일병합 이후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은 인물이다. 조사위는 2007년 후손이 상속받은 경기도 포천 일대 토지 192필지, 당시 시가 300억원대 재산을 친일 재산으로 판단해 국가 귀속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후손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당시 특별법의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라는 문구가 쟁점이 됐고, 2010년 대법원은 후손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국회가 해당 요건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지만, 이미 확정 판결이 난 재산까지 다시 환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민영휘는 대한제국 고위 관료를 지낸 뒤 일제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대표적 친일 인사다. 조사위는 2007년 민영휘 소유 재산 31만여㎡, 당시 시가 약 57억원 상당을 국가 귀속 대상으로 결정했고 청주 상당산성 일대 토지도 실제 국가로 넘어갔다. 후손들은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조사위의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2024년 청주와 춘천에서 민영휘 후손 소유 토지 22필지, 21만여㎡가 다시 친일 재산으로 지목돼 국가 귀속 신청이 이뤄졌다. 조사위가 한 차례 대규모 환수에 나섰음에도 관련 재산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던 셈이다.

현재 친일 재산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보다 여러 차례 매매와 상속을 거치거나 현금으로 바뀐 경우가 늘어나면서 환수 작업의 난도 역시 1기 때보다 높아졌다. 2기 조사위는 위원장과 상임위원 2명을 포함해 모두 9명으로 구성되며, 기본 3년에 한 차례 2년을 연장해 최대 5년간 활동할 수 있다.

친일 재산
숨바꼭질

특히 1기와 달리 친일 재산이 이미 매각된 경우에도 그 처분 대가까지 추적해 환수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혔다. 정부가 기대하는 추가 환수 규모도 상당하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2기 조사위가 가동되면 “최소 325억원 이상의 친일 재산을 추가로 환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수된 재산은 순국선열·애국지사 사업 기금 등에 우선 활용될 예정이다. 16년 만에 다시 시작되는 조사에서 과거 미처 찾지 못했거나 이미 처분된 친일 재산의 흐름을 어디까지 되짚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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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단독] 설계사 발목 잡는 ‘포괄양수도’ 함정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자신이 모집·관리해 온 고객의 보험계약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이른바 ‘포괄양수도’. 한 대형 보험대리점 산하 조직이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퇴사 시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의 약정서를 작성했다. “나가도 기존 계약을 가져갈 수 있다”는 약속은 실제로 지켜질 수 있었을까. 보험설계사가 회사를 옮길 때 자신이 기존 회사에서 모집·관리하던 보험계약을 새 소속에서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넘겨받는 것을 업계에서는 흔히 ‘포괄양수도’라고 부른다. 설계사 입장에서는 이직 이후에도 기존 고객을 계속 관리할 수 있고, 계약 유지에 따라 발생하는 수수료 문제와도 연결될 수 있어 소속을 옮길 때 중요한 조건으로 꼽힌다. 양수도 약속 실행 미지수 다만 보험계약 자체가 설계사의 소유물인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의 당사자는 보험회사와 보험계약자이고, 보험설계사는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하고 계약 체결을 중개한 대가로 보험사나 법조인보험대리점(GA)으로부터 약정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따라서 설계사가 자신이 모집한 계약에 대해 법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어 회사를 옮길 때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설계사가 한 법인보험대리점에서 근무하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을 모집했다고 가정해 보자. 설계사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보험대리점으로 옮긴다고 해서 고객 100명의 보험계약이 자동으로 설계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보험계약 자체는 기존 보험사와 고객 사이에 그대로 유지되고, 설계사가 퇴사하면 기존 회사가 해당 계약을 관리하거나 다른 설계사를 담당자로 지정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회사와 설계사 사이에 계약 이관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설계사가 새 보험대리점으로 이동한 뒤에도 자신이 모집했던 계약을 계속 담당할 수 있도록 기존 회사에서 새 회사로 관리관계를 옮기는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기존·신규 보험대리점 간 협의와 수수료 정산, 보험사 전산상 담당자 변경 등 실무적인 절차가 뒤따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같은 계약 이관을 보험업법 등이 일률적으로 보장하거나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험설계사의 이직에 따른 계약 이관을 직접 규율하는 법령이 없어, 실제로 계약을 넘겨줄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보험대리점과 설계사 사이의 계약이나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영역으로 해석된다. 설계사 영입 ‘계약 이관’ 약정 본사는 양수도 불허…엇갈린 방침 이 때문에 보험대리점이 설계사를 영입할 당시 “향후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도 기존 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해당 약정이 중요해진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인카금융서비스 내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은 설계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향후 퇴사할 경우 기존 관리계약을 양수도 방식으로 이관해 주겠다는 내용을 약정서에 담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인카금융서비스(주) 사업단 부속 약정서’에는 인카다이렉트 사업단과 설계사 김모씨 사이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적혀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퇴사 이후의 계약 처리 방식이다. 약정서에는 “조직의 이동(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의 양수도 조건으로 원활한 계약 이관 조치한다”고 명시돼있다. 설계사가 향후 조직을 떠나더라도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계약 이관뿐 아니라 퇴사 이후 남아 있는 수수료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약정서에는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미정산 잔여 유지수수료는 월지급 또는 퇴사 시점부터 1년이 되는 시점에 정산해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영입 당시 지급 수수료율과 일부 시책 등 구체적인 보상 조건도 함께 약정됐다. 앞서 작성된 또 다른 부속 약정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해당 문서 역시 조직 이동 또는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양수도 조건으로 이관하고, 남은 유지 수수료를 별도로 정산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약정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설계사에게 계약 이관을 약속한 주체는 인카금융서비스 본사가 아니라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다. 인카다이렉트는 인카금융서비스 내에 편입된 영업 조직이다. 기존 다이렉트119가 인카금융서비스에 합병되면서 인카다이렉트라는 조직으로 편입됐고, 그 아래 다시 사업단과 본부 등 영업 조직이 구성돼있다. 계약 옮겨도 정산은 별개 앞서 김씨와 부속 약정을 체결한 사업단 역시 이 같은 인카다이렉트 산하 조직 중 하나다.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체결한 이 같은 약정이 인카금융서비스 본사의 방침과 맞아떨어졌느냐다. 인카금융서비스 본사는 지난 2024년 소속 조직에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방침을 전달했다. 김씨는 이후 본사의 방침과 자신이 체결한 약정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본사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포괄양수도를 사업단이 어떻게 약정할 수 있는 것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본사가 포괄양수도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었다면, 사업단이 설계사에게 향후 퇴사 시 전체 관리계약을 이관해 주겠다고 약정할 수 있었는지가 쟁점인 셈이다. 사업단 자체 판단만으로 계약 이관을 약속할 수 있었는지, 아니면 인카다이렉트나 인카금융서비스 차원의 권한이나 승인이 전제돼있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약정서에 ‘계약을 이관한다’고 적었다고 해서 실제 포괄양수도가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기존 소속 회사와 새로 옮길 회사, 보험사 등 여러 주체의 협의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한 설계사가 A법인보험대리점(GA)에서 B 대리점으로 옮기면서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함께 가져가려 한다면, 우선 기존 GA가 해당 계약을 내보내는 데 협조해야 하고, 새 GA 역시 이를 받아 관리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이후 실제 보험계약을 보유한 보험사 전산에서도 담당 조직이나 설계사 변경 등 필요한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근저당 걸고 3년 만 이관 계약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돈 문제도 함께 정리해야 한다. 설계사에게 지급되는 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지 기간에 따라 나눠 지급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자체 재원으로 일부 수수료를 먼저 지급했거나 정착 지원금·시상금 등을 지급했다면, 퇴사 시 이를 어떻게 정산할지를 두고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실제 보험업계에서는 설계사가 다른 GA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존 소속 회사가 계약 이관에 협조하지 않아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반복돼 왔다. 계약 이관 여부를 일률적으로 정한 법적 기준이 없는 만큼, 기존 GA가 계약을 내보내지 않겠다고 판단할 경우 설계사가 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는 쉽지 않은 구조다. 기존 GA 입장에서도 계약이 빠져나가면 향후 해당 계약에서 발생하는 수수료 등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 설계사의 이직과 함께 기존 고객 계약까지 다른 회사로 넘어갈 경우, 회사가 관리하던 계약과 수익 기반을 함께 내주는 셈이어서 계약 이관에 소극적일 유인이 있다는 설명이다.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해도 실제 진행은 쉽지만은 않다. 계약의 관리만 넘겨주는지, 남은 수수료까지 함께 정산하는지, 기존에 지급된 지원금이나 시상금에 환수 조건이 붙는지 등에 따라 설계사가 체감하는 조건은 크게 달라진다. 인카다이렉트 측 관리자들은 이와 관련해 포괄양수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지난 8월 김씨와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한 관리자는 “인카다이렉트 양수도 100% 된다”며 “W금융이 대표적이고, 개인이든 지점이든 자신들이 계속분을 받기 위해 안 한 거지 원하는 분들 다 해드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포괄양수도가 이뤄지지 않은 사례는 회사가 이를 거부해서가 아니라, 설계사나 조직이 기존 계약에서 계속 발생하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 스스로 계약 이관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라는 취지다. ‘100% 가능’ 철석같은 약속 실제 이관까지 절차 수두룩 하지만 <일요시사>가 확인한 W금융 측 설명은 달랐다. W금융 대표는 DM(다이렉트 메시지)에서 “포괄양수도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내가 과거 인카 측에서 해촉된 뒤 곧바로 포괄양수도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카다이렉트 측 설명처럼 퇴사와 동시에 기존 계약과 관련 권리가 한꺼번에 넘어온 것이 아니라, 해촉 이후 약 3년이 지나서야 기존에 관리하던 계약을 이관받았다는 것이다. 대표는 계약을 넘겨받는 과정에서도 별도의 조건이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계약 이관 과정에서 근저당 설정 등의 부담이 있었고, 기존 계약에서 발생하는 유지 수수료 역시 충분히 정산받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계약 이관을 어디까지 ‘포괄양수도’로 볼 것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퇴사 이후 기존 계약 일부 또는 전부가 다른 회사로 이관됐다고 하더라도, 영입 당시 약속한 조건에 따라 즉시 계약과 잔여 수수료 등이 함께 이전된 것인지,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별도의 협의와 조건을 거쳐 이관된 것인지는 성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양수도 사례로 W금융을 언급한 경위에 대해 당시 김씨와 대화를 나눴던 사업단 관리자에게도 확인을 요청했다. 해당 관리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회사에서 전해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했을 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자신이 포괄양수도 가능 여부나 과거 사례를 직접 확인해 안내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후 A씨는 인카다이렉트를 떠나 같은 인카금융서비스 내 다른 조직으로 소속을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포괄양수도 약정과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를 SNS에 제기했다. 해당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인카다이렉트 측은 A씨의 게시물 등을 문제 삼았고, 결국 A씨는 ‘허위 사실 유포 및 회사 평판 리스크’ 등을 이유로 해촉 통보를 받은 상태다. 결국 문제는 인카다이렉트 산하 사업단이 설계사들에게 약정한 포괄양수도가 실제 100% 가능한 조건이었는지다. 또 본사의 방침과는 달리 ‘포괄양수도’에 대해 사업단이 자체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도 쟁점이다. 방침 따로 약정 따로 인카다이렉트 측은 현재 회사 내부 규정상 설계사 퇴사에 따른 타사 계약 이관과 잔여 수수료 등을 일괄 이전하는 포괄양수도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소비자가 직접 요청하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개별 계약 이관을 허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산하 사업단에서 포괄양수도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거나 별도 약정을 체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그렇게 했다면 사업단에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하며, 잘못된 안내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내부 조사와 필요시 제재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